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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반려자와 친해지는 연습

나 다루기 매뉴얼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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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서 상대의 상태를 표정이나 행동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는 일만큼, 스스로의 상태를 알아채고 대처하는 일은 중요했다. 소중했다. 때를 놓치면 애먼 사람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2018. 06. 08)

꼭 때를 놓치고 만다. 내 체력으로 버틸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기 전에 멈추는 때. 기분의 저울이 한쪽으로 바닥 치지 않도록 추 하나 올리는 때. 불편한 사람이 내 공간에 올라타기 전 닫힘 버튼을 누르는 때. 그런 ‘때’들.

 

 

사진1.jpg

           pixabay

 

 

최근에도 그랬다. 더워서 땀이 나고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픈 줄 알았더니, 몸살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대가로 날 좋은 휴일, 초주검처럼 대자로 뻗어버렸다. 나를 질책하듯 입가가 찢어졌고 근육통이 한동안 이어졌다. 아직도 이십 년 넘도록 이고 살아온 몸이 보내는 신호 하나를 몰라보았다.

 

전에는 나 아닌 누군가가 내가 한계선을 넘기 전에 먼저 붙잡아주고, 추를 올려주고, 버튼을 눌러주리라 믿었다. 그런 누군가를 바랐다. 그게 꼭 동화 속 인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관계를 맺고 또 많은 관계를 목격하면서, 바람 그 자체가 동화임을 깨달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일은 노래에서만 가능했다. ‘이 나이 먹어도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이, 사실은 ‘이 나이 먹어도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라는 뜻임을, 그리고 그 ‘일’에는 나 자신도 포함됨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하루도 내 마음대로 흐른 적 없었으니까. 일도, 관계도.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주는 무게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책임을 묻는 숱한 질문을 마주하자, 불확실성은 촘촘하고 거대한 그물망처럼 느껴졌다. 어디든 갈 수 있던 마음이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여유를 잃어서 가지 못하는지 가지 못함을 여유 없다고 표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한 마음이, 감정이, 제 몸을 불릴 뿐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반에 따라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구성원이 쭉 그대로였다. 내가 속한 반이 그랬다. 서른 명 남짓의 우리는 앞으로 꼬박 3년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로 조심하느라 애썼다. 그러다 결국 입시가 코앞에 다가온 3학년 여름방학, 여기저기서 싸움이 났다. 시험 하나로 인생이 판가름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극도에 다다르자, 상대방을 밀치면서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보했다. 소위 말해 꼭지가 돌려고 할 때, 자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던 탓이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후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 모두 교과 문제만 풀어봤지, 나 자신의 문제를 풀어본 적 없었다.

 

3년을 함께한 친구와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기약 없는 날을 함께하는 자기 자신과 문제 없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고독을 두려워한다면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평생의 반려자는 결혼이나 그와 유사한 형태로 맺어지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말로 읽힌다. 사람 사이에서 상대의 상태를 표정이나 행동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는 일만큼, 스스로의 상태를 알아채고 대처하는 일은 중요했다. 소중했다. 때를 놓치면 애먼 사람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애먼 사람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와 친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나를 알아보고 ‘나 다루기 매뉴얼’을 정리해서 상대에게 알려주자고.

 

나와 친해지기는 나를 좋아하기, 내 기분 맞추기와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나를 좋아하기 위해 지향하는 가치를 파악하고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기호를 구성했다면,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징후를 살펴야 했다. 나는 마음에 여유를 잃으면 한숨을 쉬거나 손톱을 물어뜯거나 혼잣말을 했다. 일은 해결하고 봐야 하는 성격 탓에 소변을 참으면서 일하는 경우도 잦았다. 증상 별로 맞춤 해소법을 다이어리에 적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으니 그마저도 잊어버렸다. 다시 모니터 옆에 달았다.

 

 

사진2.jpg

 

 

보다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고, 자주 기지개를 폈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당장의 갑갑함이 해소되었다. 수많은 자극 속에서도 ‘때’를 놓치는 일이 적어졌다. 솔직히, 에너지가 소진되는 속도를 조금 지연시킬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고장나기 전에 잠시 멈춰 기름칠하고 보살피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도 타인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그렇다고 착각할 수 있다.

 

물론, 온갖 애를 써도 해소되지 않는 날도 있다. 징후가 심상치 않아 좋아하는 것들과 아끼는 사람, 그리고 최선의 태도로 하루를 꽉꽉 채워도 여전히 말할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날. 샤워하다가도 몇 초씩 가만히 골몰하게 되는 날. 그럴 땐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나 다루기 매뉴얼인 셈이다.) 노력해도 사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삼십 년도 안 되는 시간 중에서 고작 오 년 정도 맞춰 보았을 뿐이니까. 그럴 땐 자기 전에 나에게 다시 잘 살아보자고, 내가 놓치지 않고 잘 살피겠노라고 서약한다. 동행을 약속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어색하고 서툴 나에게.

 

누군가의 위치에서 나는 매일 경험을 했다.
나이와 습관을 외운 뒤 처음으로 애인의 이름을 불렀다.
화가 난 목소리로.
좋아하는 목소리로.

 

일용품들의 위치를 묻지 않고도 생활을 했다.
처음 보는 면도칼을 목에 대고 움직였다.
작은 개에 대해서 상상해보지 못한 애정을 느끼고
딱딱한 치아가 조금씩 어긋나고
바지가 몸에 안 맞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근무를 했다.
(중략)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운동장을 달렸다.
전속력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느려졌다.
틀니를 뺏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는 잠이 들었다.
목에서 피가 흘렀다.
이 모든 것을 동행이라 부르고 싶었다.

_이장욱, 「동행」 부분, 『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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