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수, 강아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임태수x강아솔 북 토크
기존에 있던 것에서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게 어려운 거죠. 브랜드다움이나 나다움을 지키면서 새로운 악기나 작법을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게 쉽지 않죠. (2018. 05. 29)
지난 5월 25일 성수동 오르에르에서는 임태수 작가의 신간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에 관한 소규모 북 토크가 열렸다. 브랜드 기획자로 일하며 겪은 일상과 생각을 첫 번째 책『날마다, 브랜드』 로 정리했다면, 두 번째 책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은 임태수 작가가 좋은 브랜드를 꼬집어 보던 시선으로 선별한 여덟 개의 ‘브랜드’ 이야기가 담겼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늘 처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26쪽
임태수 작가는 10년 동안 다른 사람의 브랜드를 컨설팅하는 역할을 했다. 고객이 요구하는 것과 기획자로서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어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보람 있었으나, 10년을 반복하자 공허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브랜드를 찾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은 뭘까.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의 일을 하며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드는 게 힘들었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찾기 전에 10년 동안 일 한 걸 포트폴리오로 정리하면, 다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보니까 마땅히 기록할 게 없는 거예요. 디자이너와 달리 기획 일은 이력서 한두 줄에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들어가는 게 다예요. 열심히, 오랫동안 일했는데 아깝더라고요.”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과정으로 구축했으며, 고민한 지점과 고민 끝에 했던 생각이 무엇인지, 어쩌면 결과물보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생각이 전부일 수 있는 기획자의 일을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해 쓴 책이 『날마다, 브랜드』 였다. 첫 번째 책을 내고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쉬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좀 더 고민하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던 제주를 생각하게 되었고, 6개월살이를 계획하고 제주에 내려갔다.
“6개월 동안 살 숙소를 계약하고, 제주에서 지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질문에 답을 구할 방법을 생각했어요. 그러다 좋아하는 제주에서 소소하게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저도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요소는 주체나 구성원이 소신 있게 제 생각을 브랜드로 내보이는지, 그들이 제공하는 것이 타인에게 독특한 경험이나 행복을 선물해 주는지, 아름다운지. 이렇게 세 개가 부합하는 곳을 찾았어요. 제주에서 이름이 알려진 곳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다니기 시작했어요.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리스트를 만들었을 땐 적어도 스무 개 이상 해야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덟 개 정도로 줄여지더라고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싱어송라이터 강아솔 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도 제주에 오면 언제나처럼” 찾게 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여느 때처럼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며 음악을 듣다가 문득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어져” 소속사에 장문의 편지가 담긴 책을 보냈다. 그렇게 둘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임태수 작가의 두 번째 책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에 강아솔 씨의 이야기가 담겼다. 임태수 작가가 책에 관한 간략한 이야기를 마치고 강아솔 씨가 무대에 나왔다. 두 사람의 대화와 강아솔 씨의 음악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다.
임태수 작가
바다가 선곡한 음악 - 바다의 플레이리스트, 강아솔
임태수 : 제주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브랜드가 꼭 서비스나 제품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강아솔 씨 음악의 감성이나 여백이 제주에서 느낀 편안함 같았어요. 책을 기획하면서 강아솔이라는 뮤지션의 삶을 브랜드에 비유해서 책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무턱대고 책을 보내서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다행히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됐죠.
강아솔 : 처음에 책을 회사로 보내 주셨을 때 책 앞에 편지가 있었어요. 그런 경우 편지 길이가 아무리 길어도 서너 줄인데, 정말 빼곡하게 글씨가 있었어요. 내용을 읽는데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쓴 것 같았고, 정말 정성스러운 청이 있는 편지였어요. 그런 걸 받으니까 제가 이분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감사하다.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도 나오게 되었네요. (웃음)
임태수 : 이번 책 비판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신랄하게 비판해 주세요.
강아솔 : 아, 그래서 열심히 읽었는데…. 비판할 내용이 없었어요. 여러분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책에 소개된 장소에 가서 주인분들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푸셨어요.
임태수 : 아솔 씨가 소개된 바다의 플레이리스트라는 장의 제목은 어떠세요?
강아솔 : 문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바다를 보면서 듣는다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걸 하나의 알맞은 말로 정리해 주신 것 같아서 감사했어요.
임태수 : 저도 항상 바다에서 들었거든요. 아솔 씨는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신 거예요?
강아솔 : 전 사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꿈을 꿔본 적이 없어요. 뒤에서 보는 걸 더 좋아해요. 그냥 그때 제 주변에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 친구들 무리에 껴서 놀고 싶은데 제가 할 게 없는 거예요. 작곡해야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진짜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학원에서 밤새우면서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임태수 : 그런데 안 해야겠다고 하고 다시 제주로 가셨잖아요.
강아솔 : 밤새워서 한 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반전이죠. (웃음)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까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았어요. 고민하다가 편입을 목표로 삼았어요. 그런데 편입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떨어질 거 같은 거예요.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고, 당일에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어요. 시험에 떨어진 나를 마주 보기 싫어서 도망친 거예요. 그렇게 도망치고 나니까 나 자신에게 정말 크게 실망했어요.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니 시험도 안 보고, 나는 음악 할 자격이 없다. 울면서 제주에 갔어요. 그때 제게는 음악 하고 싶다는 꿈 자체가 프라이드였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라는 게 자부심이었죠. 제주도에 가서 음악 한다는 꿈 없이 살면, 나는 불행할 거고, 도망친 대가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걸,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냥 친구들 만나서 놀면서 편하게 지내니까 행복하더라고요. 음악을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음악이 다르게 보였어요.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었어요.
임태수 : 처음 1집이 나온 건 제주에서였잖아요.
강아솔 : 그때 만들어두었던 노래가 몇 곡 있었어요. 그걸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스튜디오에 갔어요. 녹음해서 간직하려고 했어요. 특별히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기보다 누구한테 부탁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제가 불렀어요. 그런데 우연히 핑크문 레이블 대표님이 녹음한 걸 듣고, 음반으로 제작해 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때까지 저한테 누구도 노래를 잘 한다고 해 준 적이 없었는데 낯선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해서 얼떨결에 앨범을 냈던 것 같아요.
임태수 : 그래서 1집을 들으면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가 느껴져요.
강아솔 : 맞아요. 그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편안하게 부른 거였어요.
싱어송라이터 강아솔
“그녀는 음악을 대할 때 변하지 않으면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158쪽
임태수 : 음악을 대할 때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고, 변해야 하는 게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강아솔 : 그 말을 떠올린 게 2집을 냈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강아솔인데 다른 강아솔을 원해요. 저도 누군가의 팬으로서 그 사람 고유의 것은 변하지 않으면서 다시 나올 때마다 무언가 변해있기를 바라거든요. 도대체 그게 뭘까? 생각했어요.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는지, 음악 만드는 마음이나 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대하는 나의 시선은 성장해야 하는 거죠.
임태수 : 브랜드로 말하면, 브랜드마다 리뉴얼할 때 새로운 캠페인을 하는데, 아무리 새로운 콘셉트를 내세워도 브랜드 자체의 고유함은 바꾸지 않잖아요. 지향하는 가치나 편의가 있는 상태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는 거죠. 기업이 리뉴얼 할 때 송두리째 바꾸는데 그건 쉬운 방법이에요. 기존에 있던 것에서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게 어려운 거죠. 브랜드다움이나 나다움을 지키면서 새로운 악기나 작법을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아솔 씨 말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그럼 정규앨범만 나오는 이유도 따로 있는 건가요?
강아솔 : 특별한 주장은 아니에요. 그냥 제가 열 곡짜리 앨범을 듣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음악 외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어떤 방법을 고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만약 정규 앨범이 음악을 듣기 불편한 방식이고, 다른 방식으로 자주 접하는 게 좋다면 그렇게 할 의향이 있어요.
임태수 : 가사를 쓸 때는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요.
강아솔 : 곡을 써야겠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텍스트를 많이 읽어요. 그 감정 상태에서 이상하게 툭 하고 걸리는 단어가 있어요. 평소에 많이 쓰는 평범한 단어인데 갑자기 치이는 느낌인 거죠. 그렇게 단어가 쌓이면 멜로디에 놓고, 사전을 많이 봐요. 부르다가 걸리면 사전을 찾아보고, 그렇게 만들어지면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덜어내죠. 덜어내는 게 오래 가는 노래가 있고, 짧은 시간에 되는 노래가 있어요.
임태수 : 최근에 이유 없이 걸린 단어가 있나요?
강아솔 : 여전히, 단련되다, 단련되지 않다, 특히 단련되지 않다는 말은 <섬>이라는 곡에 쓸까 했는데 걸러진 거예요. 언젠가 단련되지 않은 것들에 관해 쓸 것 같아요.
임태수 : 곡 만드는 건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강아솔 : 딱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써놓고도 이것보다 더 나은 게 있다고 느껴지면 나올 때까지 계속 찾아요. 안 나올 때는 울기도 하고…. (웃음) 그럴 때 주로 산책을 해요. 산책하면서 즐겁게 했던 기억 떠올리면 음악을 대하는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쓸데없이 부리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음악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걸 다시 알게 되는 거죠.
왼쪽 임태수 오른쪽 강아솔
“그녀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실감이 나기 때문이다.” -159쪽
임태수 : 알맞은 것을 찾기 위해 괴로워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그 과정이 쉽지 않잖아요. 그렇게까지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강아솔 : 음악 하면서 만난 장소나 사람들에게 많은 걸 얻고 배웠어요. 주위를 보면서 배우고, 시선이 확장되는 걸 느껴요. 음악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음악을 통해서 제가 바라는 인간상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요. 주위에서도 음악 해서 사람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웃음)
임태수 :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말, 공감했어요. 저 역시 우연한 기회로 책 두 권이 나왔고,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거든요. 회사에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겪었고, 책을 매개로 만나지 못했던 분들을 만날 수도 있었어요. 매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우는 점이 있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아솔 씨의 <매일의 고백>이라는 곡을 들으면서는 어떤 자아 성찰 같은 게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강아솔 :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나를 견뎌주는 친구들이나 음악을 들어주는 팬 여러분에게 드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2집에 담긴 곡이라기엔 거창한 느낌이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웃음)
임태수 : 최근의 고민거리나 관심사는 뭔가요?
강아솔 :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요. 언젠가 피아노 치면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임태수 : 그때 다시 만나요. 저도 그렇고, 아솔 씨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직장이나 삶의 모습,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많이 고민하실 것 같아요. 강아솔 씨의 「언제든 내게」는 그럼에도 묵묵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음악인 것 같아요. 청해 듣고 오늘 이 자리를 마칩니다.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임태수 저 | 안그라픽스
좋아하는 브랜드를 하나둘 떠올려보자. 그리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그렇게 작게 천천히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때 비로소 우리는 각자의 브랜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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