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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체어샷, 진일보한 음악적 내구성
아시안 체어샷 『Ignite』
다양성을 매개했던 인디 생태계가 연성화될 동안 본인들의 뿌리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아시안 체어샷은 인디씬의 과거와 현재를 사는 역사로 분하고 있다. (2018. 05. 23)
여전히 강렬하고 묵직하다. 아니, 첫 정규작 <Horizon>보다 더 거칠고 직선적인 힘이 느껴진다. <TOP 밴드 3> 이후 승승장구할 것 같던 밴드의 앞날에 멤버의 탈퇴와 교체로 인한 지난 시간은 인고의 칼을 가는 시간이었다. 묵은장이 더 깊은 맛을 내듯 그들이 들고 나온 5년 만의 신보는 숙성으로 빚어낸 숙련의 스킬과 욕심껏 눌러 담은 감정적 울림이 흘러넘친다.
제12회 한국대중음악 시상식 최우수 록 노래 부문 수상을 거머쥔 「해야」를 비롯해 평단의 고른 인정을 받았던 <Horizon>은 밴드 사상 가장 매끄러운 사운드와 비교적 온화한 진행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의 프로듀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빗댄 음반은 전반적으로 거친 퍼즈톤의 기타를 유지하되 보컬 앞으로 튀어 나가지 않았고, 트레이드마크였던 변주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입체감을 만들어나가되 한 곡 안에 시작과 끝을 모두 담아냈다. 「해를 거르고」가 강렬한 드럼 연주로 텐션을 바짝 올렸다가 잔잔하게 마무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용솟음친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던 지난날의 고민, 고뇌 등 다난했던 심정적 결핍이 음반의 에너지원이 되어 한 면의 질주로, 박진감으로 터져 나온다. 기타를 태평소 질감처럼 잡아낸 첫 곡 「뛰놀자」는 엠비언트와 모스부호 같은 전자음으로 쫄깃한 몰입감의 시작을 알리고 이어지는 타이틀 「빙글뱅글」은 드럼을 꽹과리처럼 사용하며 같은 구조를 자그마치 3번 반복해 초반의 기세를 잡는다. 한국의 색이란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챙겼다.
동시에 7분이 넘어가는 대곡 「친구여」를 비롯해 「무감각」 「꿈」은 완결적인 구성과 더불어 갈팡질팡하는 내면의 순간이 잘 담겨있다. 1집의 「자장가」와 같이 드림 팝/사이키델릭 발라드 「꿈」은 「꿈, 떠나 보냈네/ 세상은 꿈 너를/ 원치 않아」라는 가사처럼 떠나보내자는 심경을 풀었고, 현으로 긴장감을 쌓아 올리고 에코 가득한 건반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덧댄 훌륭한 선율의 「무감각」은 이별의 정서를 더할 나위 없이 동양적으로 품었다. 그중 「꿈」과 이어지며 메탈의 하드함과 셔플리듬, 블루스를 거쳐 여성과 남성의 혁명가 같은 보컬로 마무리되는 「친구여」는 단연 음반의 백미다. 긴 러닝타임이 무색할 정도의 탄탄함과 합 좋은 파괴성이 무아지경의 어우러짐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음반은 어느 트랙 하나 쉽게 버릴 게 없다. 굿판에서 영감을 받은 「산,새 그리고 나」는 지극히 아시안 체어샷스러우며 「무감각」에 이어지는 「각성」은 그 에너지에 손발이 저릿할 정도로 짜릿하다. 밴드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박수 받아야 한다. 2011년 펑크(Punk) 성향의 첫 곡 「Chairshot」, 지금과는 거리가 먼 비음의 「응어리」 등이 수록된 첫 EP <체어샷>이 허술했다면 2013년의 <탈>은 조금씩 동양적인 그룹의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정규 1집을 거쳐 두 번째 EP <소나기>는 타령 스타일의 랩 「완전한 사육」과 전자 드럼, 멜로 트론을 사용한 트립합 「Butterfly」로 장르적 실험을 강행했으며 강원도 평창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이번 정규 2집은 진일보한 음악적 내구성까지 보여준다. 이렇듯 밴드는 멈추지 않고 성장했다. 다양성을 매개했던 인디 생태계가 연성화될 동안 본인들의 뿌리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아시안 체어샷은 인디씬의 과거와 현재를 사는 역사로 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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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