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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젊음의 행진>의 왕경태, 배우 강동호
의외라서 더 매력적인 강동호 배우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편인데, 이제는 제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완성도가 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8. 04. 18)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지누션의 ‘말해줘’, 핑클의 ‘영원한 사랑’ 등 1980-90년대 인기 가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이 있습니다. 올해로 11년째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 <젊음의 행진> 인데요. 90년대 인기 만화 ‘영심이’의 주인공 오영심과 왕경태가 30대에 우연히 다시 만나 빚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과정에 30여 곡의 당대 인기 가요들이 녹아들며 관객들의 추억까지 제대로 되살리는데요. 이번 시즌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바로 왕경태 역의 강동호 씨가 아닐까 합니다. 훤칠한 키에 어울리는 멀끔한 슈트 차림이 아니라, 동그란 뿔테 안경에 어눌한 말투가 웬일인가 싶은데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동호 씨를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봤습니다.
“처음에는 매 순간이 힘들었어요. 연습할 때도 도저히 못하겠어서 몇 번을 끊었어요(웃음).”
그러게요. 제대 직후 <쓰릴 미> 때 인터뷰했으니 꼭 2년 만인데, <쓰릴 미>의 리처드와 <젊음의 행진> 의 경태는 달라도 너무 다른 거 아닌가요(웃음)?
“그렇죠(웃음)? <쓰릴 미> 다음에 <키다리 아저씨>, <이블데드>를 하고, 다시 <키다리 아저씨> 재연에 참여한 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했어요. <이블데드>는 코드가 명확한 작품이었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는 사랑 한 번 못 받고 자란 뼛속까지 어두운 야쿠자 역할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팬분들이 ‘갭이 커서 좋아요!’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많이 당황하시더라고요(웃음).”
문제는 왕경태가 잘 어울린다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웃음).
“사실 처음에는 사양했는데, <이블데드> 배우들이 이번에 많이 참여했어요. 그때 재밌게 작업해서 한 번 더 같이 하고픈 생각도 있었고, 작품이 탄탄하기도 해서 도전하기로 했죠. 시간상 고등학생으로 돌아갈 때가 있지만 성격이 순한 경태를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연습 첫 날 연출님이 ‘경태나 영심이는 고등학생이지만 5살 정도로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만화처럼 극단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고요. 너무 당황스럽고 낯간지러워서 괜한 선택을 했나 싶었어요.”
과거 무대에서 봤던 강동호 씨를 생각하면 이런 성향이 있기도 하지만,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어릴 때는 이런 성향이 더 강했는데, 나이가 더해지면서 바뀐 면도 있어서 거부감도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지금은 남성적인 연기가 더 자연스럽거든요. 전작들은 대부분 소극장에서 표현을 인위적으로 할 필요도 없고, 내추럴 보이스로 하면 됐는데, 경태는 극단적으로 가공된 인물이다 보니 자꾸 자아가 들어온다고 할까요. ‘내가 뭐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목소리도 일부러 하이톤으로 만들어서 하다 보니까 목이 좀 아파요.”
결국 강동호 씨가 만든 왕경태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하긴 <쓰릴 미>에 참여했던 역대 배우들 중에 <젊음의 행진> 경태를 했던 배우는 없지 않나요? 그만큼 강동호 씨의 이미지와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는 얘기네요.
“경태가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는 이런 성향이 강해서 더 편하게 연기했어요. 반면 그때는 남성적인 연기가 잘 안 돼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경태를 하다가도 다른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상남이도 할 수 있나요? <젊음의 행진> 에서 가장 인기 많은 캐릭터잖아요(웃음).
“상남이 역할에 욕심을 가져본 적은 한 순간도 없어요. 경태가 제 연기 스펙트럼의 가장 끝자락에 있지 않을까(웃음).”
아무래도 마니아 관객이 많은 소극장 공연과는 객석 분위기도 다를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과는 좀 달라요. 배우로서 임하는 자세는 같지만, 관객들의 박수나 리액션이 후하다 보니 마음이 좀 더 편해요.”
넘버도 디테일하게는 연습할 부분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따로 익힐 필요가 없었겠어요.
“그렇죠, 다 익숙한 노래니까. 그래서 이 작품은 제 또래나 저보다 윗세대 관객들이 보시면 확실히 더 재밌을 거예요. 저희 음악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 음악이라는 게 반주가 나오면 저절로 그 노래를 듣던 시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잖아요. 공연을 본 제 친구들도 노래 반주만 들어도 흥분된다고 하더라고요.”
넘버 중에 강동호 씨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어떤 건가요?
“H.O.T의 ‘캔디’요. 초등학교 때 장갑 끼고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러고 보면 제대 이후 쉬지 않고 작업하셨네요? 그때는 남성미 물씬 나는 이미지로 변신을 꾀하셨던 것 같은데, 생각한 대로 잘 됐나요?
“작품은 쉬지 않고 했는데, 그때 욕심에는 좀 못 미치는 부분이 있죠. 나이에서 오는 혼란도 있고요. 나이가 많다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 간다고 할까요(웃음). <젊음의 행진> 대본만 봐도 ‘80-90년대 하이틴 뮤지컬’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음에는 잘한 선택인가 싶더라고요. 하이틴 뮤지컬은 이제 거의 커트라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배우들은 외모나 생각이 나이보다 젊어서 30대 내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웃음).
“그래요(웃음)? 사실 배우는 스스로 빛이 나야 하는 직업이라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데, 요즘은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좋게 생각하면 좀 더 주변을 보게 되고, 나 잘난 맛에 살다가 겸손해지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내려놓게 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은 혼란스러운 게 문득 ‘이게 맞나, 더 열정적으로 해야 하나’ 생각되기도 해요.”
그럼 작품 선택할 때는 어떤 면에 좀 더 신경 쓰나요?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편인데, 이제는 제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완성도가 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 후 참여했던 작품들만 봐도 밀도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었거든요. <키다리 아저씨>는 드라마적으로 예쁘게 잘 만들어져서 누가 해도 빛이 날 거예요. 물론 거기서도 제 나름의 색깔을 만들어야 하지만 훨씬 수월하죠. <젊음의 행진> 도 뮤지컬 마니아들이 보시는 공연은 아니지만,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보셔도 재밌는 안정감 있는 작품이죠. 그래서 롱런할 수 있고. 다음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전형적인 쇼뮤지컬이에요. 선택하기까지 고민도 있었지만, 작품은 짜임새 있고 탄탄해요. 저에게는 또 한 번의 도전이지만, 완성되면 뿌듯할 것 같아요.”
뮤지컬 <젊음의 행진> 은 배우도 관객도 지난날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 작품인데, 시간이 흘러 <젊음의 행진> , 왕경태를 떠올리면 어떨까요?
“무척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고. 아주 밝고 재밌는 작품이지만 제가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공연이기도 해요. 졸업식 장면이 있는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엉엉 울었어요. 그만큼 따뜻하고 힘이 있는 작품이거든요. 관객분들도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배우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이렇게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무대 위에서는 저렇게 돌변하다니’ 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강동호 씨가 연기하는 왕경태가 더 매력적인 이유도 무대 밖의 그가 얼마나 점잖은지 봐왔기 때문이겠죠. 제작사 측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아서 강동호 씨의 차기작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후에도 굉장히 파격적인 캐릭터로, 또 익숙한 캐릭터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그의 변신에 너무 놀라지 않으려면 뮤지컬 <젊음의 행진> 부터 봐두시는 게 어떨까요? 5월 2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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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