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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집] ‘해님 달님’이 똥겨 주는 글쓰기 방법 - 한성우 교수

<월간 채널예스>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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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보다는 ‘글’이 먼저다. 주제에 집중되지 않은 문장의 나열은 ‘글’이 아닌 ‘글씨’일 뿐이다. 글이 완성이 되어야 비로소 맞춤법 검사, 문장 오류 수정 등의 ‘퇴고’를 할 수 있다. (2018.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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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맞다. 국어선생의 눈으로 글을 보면 맞춤법, 띄어쓰기, 엉터리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국어운동가의 눈에는 남용되는 외래어와 외국어, 그리고 정체불명의 신조어들도 꼴불견이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의 글을 보면 할 말이 참 많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질’ 때문에 국어선생들이 가르치는 글쓰기는 인기가 없기도 하다. 글은 규범과 어법의 결정체가 아니라 표현, 설명, 주장 등을 통한 소통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규범과 어법의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쉽고도 명쾌한 글쓰기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다. 뜬금없지만 오래된 동화 하나를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옛날이야기에서 동물들이 말을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인데 이 동화 속의 호랑이가 한 가장 유명한 대사는 바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이다. 그런데 이 호랑이는 참으로 이상하다. 육식 동물인 호랑이가 군침을 흘린 것은 떡이 아닌 엄마일 텐데 떡을 탐내는 것으로 나온다. 이상한 것은 호랑이만은 아니다. 글쓰기를 가르칠 때마다 접하게 되는 아주 많은 글들이 그렇다.

 

대학교 4학년이 돼어 보니 ‘취업난’이니 ‘청년실업’이니 하는 말이 비로소 실감한다. 취업이 않 되니 청년 백수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대학생이 낮다 싶어 졸업을 미루게 된다. 어쩌다 이 상황이 되었는가? 더 낳은 청년 대책을 만들어내야 할 정치권은 쌈박질에 날을 세운다. 이런 이들이 국회와 정부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발전은 요원하다. 어떤 이들은 이들의 인성이 문제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성이 아닌 가정교육의 문제다. ......

 

밑줄 친 부분을 보면 한글을 가르친 부모님과 국어선생님 모두가 욕을 먹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정작 이 글을 쓰는 이의 고민은 다른 데 있다. 틀림없이 대학 4학년이 피부로 겪는 청년실업 문제를 주제로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글이 정치권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다 인성을 거쳐 가정교육에 대한 문제 지적으로 확장된다. 그대로 두면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고 중국을 거쳐 시베리아로 갈 판이다. 이 글을 쓴 학생은 누군가 자신을 제발 말려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규범과 어법이 아닌 글의 기준으로 볼 때 이 글은 ‘떡 하나’가 주는 교훈을 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떡’이었으면 오로지 떡에만 집중해야 한다. 즉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쓰고자 했으면 시종일관 이것을 끌고 갔어야 한다. 원하는 것이 인성이나 가정교육의 문제였으면 이리 먼 길을 돌아서 들어갈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인성 또는 가정교육 문제로 시작해 시종일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글쓴이가 가야할 길, 혹은 가고자 하는 길을 글 전체에서는 ‘주제’라고 하고 한 단락 내에서는 ‘소주제’라고 한다. 이 친구는 규범과 어법 이전에 주제와 소주제에 집중하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맞춤법이나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을 보면 눈살이 찌푸리며 보면 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글은 아예 읽기를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는 글을 통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떡 하나’ 혹은 ‘주제 하나’에 천착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굵은 동아줄과 썩은 동아줄


욕심 많은 호랑이는 떡과 엄마는 물론 오누이까지 욕심을 내며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슬기로운 아이들은 도망쳐서 하늘을 향해 외친다. ‘우리를 살리시려거든 굵은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라고. 하늘에서 동아줄 두 줄이 내려오자 오누이는 굵은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결국 해와 달이 된다. 그리고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오르던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죽고 만다. 생과 사가 갈리는 줄타기는 글 속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청년백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이상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졸업장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졸업을 몇 학기 째 미루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 허리가 더 휠지도 모른다. 학교 졸업장만으로 안 된다면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아가 진출하고자 하는 공모전 등의 수상경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남들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대학 5학년으로 살고 있다면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바늘구멍도 구멍은 구멍이니 미리 준비하는 낙타에게는 길이 있다.

 

규범이나 어법에 어긋나는 것도 딱히 보이지 않고 청년백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떡 하나’에도 잘 집중하는 괜찮은 글이다. 그런데 이 글 속에는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이 있다. 졸업 유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장이 시도 때도 없이 글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 글속에서는 ‘미리 준비하는 청년백수 시대’가 굵은 동아줄이라면 ‘졸업 유예의 문제점’은 썩은 동아줄이다. 붙잡으면 끊어질 그 줄로 잠시 잠깐 외도하는 것만 아니라면 이 글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다.

 

굵은 동아줄 역시 주제 또는 소주제에 해당된다. 한눈을 팔지 않고 주제를 일관되게 끌고 나갈 때 비로소 한 편의 글이 된다. ‘떡 하나’와 ‘굵은 동아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좋은 글을 완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글’보다는 ‘글’이 먼저다. 주제에 집중되지 않은 문장의 나열은 ‘글’이 아닌 ‘글씨’일 뿐이다. 글이 완성이 되어야 비로소 맞춤법 검사, 오탈자 검사, 문장 오류 수정 등의 ‘퇴고’를 할 수 있다. 동화 <해님 달님>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글쓰기의 근본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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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2007년에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전공 교수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전공 분야는 한국어음운론과 방언학이지만 일찍부터 글쓰기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 많은 경력을 쌓았다. 글쓰기 및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저서로는 『경계를 넘는 글쓰기』 (2006), 『보도가치를 높이는 TV뉴스 문장쓰기』 (2006, 공저), 『방송발음』 (2008, 공저)이 있고, 논문으로는 『...텔레비전 자막의 작성과 활용에 대한 연구』 (2004), 『자막의 효율적 이용 방안에 대한 연구』 (2004), 『텔레비전 자막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 연구』 (2005), 『대중매체 언어와 국어음운론 연구』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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