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유재석의 담담한 얼굴 : 위대한 항해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13년간 <무한도전>호의 선장이었던 그의 무사입항을 축하하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563회의 기나긴 항해 동안 <무한도전> 호의 선장이었던 유재석만큼은 녹화가 끝날 때까지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2018. 04. 02)
300회를 기념해 멤버들의 속마음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던 2012년 MBC <무한도전> ‘쉼표’ 특집, 정형돈과 유재석은 텐트 안에 앉아 이런 대화를 나눴다. “<무도>가 없어지면 왠지 나도 없어질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나도 그럴 거 같아. 왠지 모르게 <무도>와 함께 나의 예능인생도 함께 하지 않을까?” 사람 마음이 그렇다. 한 트랙 위에서 오래 달리며 이름과 커리어를 얻으며 나이를 먹다 보면, 트랙에서 내려오는 순간 제 삶이 의미를 잃을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 불안은 오직 트랙에서 내려왔을 때에만 극복할 수 있다. <무한도전>의 끝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사라질 것 같다던 정형돈은 <무한도전>을 그만 둔 지금 JTBC <뭉쳐야 뜬다>, tvN <김무명을 찾아라>, KBS <건반 위의 하이에나>를 진행 중이다. <무한도전>을 떠나고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온 노홍철은 MBC 금요 오전 시사교양 <아침발전소>를 진행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무한도전> 이후에도, 삶은 계속 된다.
정형돈이나 노홍철과 달리 <무한도전> 그 자체와 같았던 유재석은 프로그램에서 쉽사리 내려올 수 없었다. 그는 <무한도전>이 영광을 누리던 날들뿐 아니라, <무한도전>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비판을 받고 기존 멤버들의 뜻하지 않은 하차로 전에 없던 하중이 걸리던 시기에도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어 그 모든 비판과 하중을 제일 앞에서 견뎌야 했던 사람이니까. 그는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두 기둥 중 하나였던 김태호 PD가 하차를 고민할 때서야 비로소 “그렇다면 나도 그만 두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태호와 그가 없는 <무한도전>은 더 이상 같은 <무한도전>이 아닐 것이기에, 13년의 항해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무한도전>이 스스로 ‘시즌1’이라 이름 붙인 13년을 마무리하던 날, 눈물 많은 정준하는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고, 하하와 조세호, 양세형도 목이 메어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멤버들 중 가장 감정표현이 서툰 편인 박명수조차 눈시울이 붉어졌으니, 종영이 아쉬운 건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유재석만큼은 울지 않았다. 시즌 1이 자신과 멤버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하고 시즌 2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힘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리라. 선장은 다른 승무원들이 무사히 하선하는 걸 확인할 때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563회의 기나긴 항해 동안 <무한도전> 호의 선장이었던 유재석만큼은 녹화가 끝날 때까지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 호의 무사 입항을 축하하며, 유재석이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음 항해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위대한 항해가 끝난 뒤에도 의외로 삶은 계속 되고, 새로운 항로의 가능성은 늘 그런 순간에 열리곤 하니까.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