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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그렇게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아버지가 되지 못한 남자들의 과시적인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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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년의 밤>은 소설과는 결이 다르게 마초적인 남성성을 근사한 폭력 이미지로 전시하는 일련의 남성영화들과 흡사한 맥락 위에 자리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영제가 쫓는 건 아버지고 현수가 쫓기는 것 또한 아버지이다. (2018.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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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7년의 밤>의 한 장면

 


* 관람을 방해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 을 두고 영화화 판권 경쟁이 치열했던 건 유명하다. 영화가 완성된 후 바로 개봉에 이르지 못하고 속칭 ‘창고’에서 몇 년간 개봉 대기 중이었던 건 안 유명하다. 극 중 세령호에서 숨진 소녀의 설정이 세월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고, 영화가 지나치게 어두워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진다는 소문 혹은 억측이 돌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제작사나 배급사 쪽에서 다른 걱정을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7년의 밤> 은 두 남자의 사연에서 비치는 핏빛으로 로르샤흐 테스트를 하는 것만 같은 이야기다. 최현수(류승룡)와 오영제(장동건)는 다른 듯 같아 보인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지극한 현수와 다르게 영제는 하나뿐인 딸에게 지독하게 군다. 아빠를 아빠라 부르길 꺼리는 영제의 딸이 아빠를 찾는 일이 발생한다. 댐의 관리팀장 부임을 앞둔 현수는 사택을 살펴보기 위해 세령호 주변을 지나다 갑자기 도로에 튀어나온 영제의 딸을 차로 치는 ‘사고’를 낸다. 실은 영제의 손찌검을 피해 도망가다 변을 당한 소녀는 그래도 보호자라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빠를 부른다. 이를 본 현수는 어찌 된 영문일까, 소녀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호수에 유기, ‘사건’의 가해자가 된다.

 

딸에게 손을 든 ‘가해자’에서 자식 잃은 ‘피해자’ 아빠가 된 영제의 사건 후 위세는 대단하다. “어떤 놈이 그랬는지 찾아서 똑같이 갚아 줘야지” 사생결단하는 그의 속내는 딸을 잃은 아빠의 복수심보다는 제어하지 못하는 폭력성을 펼칠 좋은 먹잇감을 찾은 것 같은 인상이다. 소녀의 죽음으로 맺어진 두 남자의 인연, 7년의 세월을 창살로 두르고 자수하여 감옥에 들어간 현수의 ‘마지막 숨통을 끊’겠다며 영제는 현수의 아들을 볼모로 삼는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남자와 잃을 것이 없는 남자의 비극이 전제된 마지막은 다른 듯 같아 보인다.  

 

결국 (실제로든, 상징적으로든) 아버지가 되지 못한 남자들의 과시적인 몸부림, 정도로 갈무리할 수 있는 영화 <7년의 밤> 은 소설과는 결이 다르게 마초적인 남성성을 근사한 폭력 이미지로 전시하는 일련의 남성영화들과 흡사한 맥락 위에 자리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영제가 쫓는 건 아버지고 현수가 쫓기는 것 또한 아버지이다. 더 정확히 영제는 아버지라는 허상을 좇고 현수는 아버지의 유령에 쫓긴다. 현수는 베트남전 참전 후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지금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 자신은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지 않겠다며 유령을 떨치기 위해 밤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몸부림쳐도 돌아가는 꼴이 예사롭지 않다.

 

분풀이(?)할 유일한 대상인 딸이 사라지고 뒤이어 도망간 아내마저 자살하자 이제 영제가 아버지임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현수에 대한 복수다. 그에게 가족이란 전리품 같은 것이다. 한국에서 지배 계급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 가족에 더해 멋진 집에, 근사한 집에, 치과의사라는 명성까지 - 을 손에 넣으려고 영제가 짓밟았을 주변인하며 그로 인해 조성된 감옥 같은 분위기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떻게 쌓아 올린 폐쇄된 요새인데 한낱 관리팀장에 불과한 현수가 지반을 흔들다니, 영제가 품었을 상실감을 대체한 분노의 감정은 당연한 순서처럼 제물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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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7년의 밤>의 한 장면

 

 

한국영화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은 대체로 제의적이고 무엇보다 과시적이다.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 외에 내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아버지의 소양이 없는 영제나 현수 같은 이들에게 폭력은 전가의 보도다. 누구는 마음속에 쌓아둔 심리적 폭력으로 가족을 불편하게 하고 누구는 물리적 폭력으로 가족을 죽음의 우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물이라는 유사 거울 이미지, 혹은 우물의 위와 아래를 뒤집어 마주하는 수면 위 그 자신의 얼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운명은 아버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갈림길을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인 미래로 일방 주행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7년의 밤’은 쫓기는 자 현수와 쫓는 자 영제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도 원을 그리며 충돌하는 시간이면서 실패한 아버지의 시간이다. 이 영화에 따르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대결 속에 승리의 징표로 획득하는 것이고 이 게임에서 패배하면 그 벌로 받아야 하는 죽음이다. 죽음을 두고 아버지가 되기 위해 대결을 펼치는 이미지야말로 <7년의 밤> 의 가장 큰 폭력이다. 이를 마치 남성성의 대표 격인 아버지의 초상인 양 크게 나타내어 보이는 이 영화는 그래서 보는 이에게 7년 치의 피로감을 2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축적한다. 최근 1~2년 동안 폭력 남성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관객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7년의 밤> 의 개봉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 영화 <왓치맨>(2009)에는 로르샤흐 테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캐릭터 로어셰크(잭키 얼 헤일리)가 등장한다. 아무 뜻도 없는 잉크의 얼룩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인격 장애를 진단하는 이 검사에 관해 로어셰크는 종이 위에 번진 검은 잉크일 뿐인 그림에 사람들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한다고 냉소한다. <7년의 밤> 을 포함하여 계속되는 한국의 남성영화들이 꼭 로어셰크가 말하는 로르샤흐 테스트 같다. 자신들 영화는 다르다고 항변하는 것 같아도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폭력과 남성성의 과시에 그친다. 끊임없이 얼룩이 바뀌는 것 같아도 주제는 그대로인 영화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날로 피곤해진다. 


 


 

 

7년의 밤정유정 저 | 은행나무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각기 다른 면면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 인간의 본질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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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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