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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의 눈물 :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 이의 결승점
“너무도 수고했고 길고 긴 여정도 잘 참아”낸 이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만감
이상화는 메달 색깔과 상관 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제 자신의 약점을, 슬럼프를, 단점을 이겨내고 여전히 얼음을 지치는 자신을 지켜봐 달라고. (2018. 02. 19)
금메달이 아쉬워서 운 게 아니라 이제 다 끝났다는 후련함 때문에 울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딴 후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보인 이상화는, 눈물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럴 것이다. 이상화는 그가 금메달을 거머쥐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순간에도 완성이란 단어를 단호하게 거절하던 선수다. 아무리 기록이 잘 나오고 메달을 거머쥔다 해도 자신의 스케이팅엔 여전히 더 보완해야 할 곳이 있다고, 자신은 스케이팅의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늘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던 사람이니까. 그러니 그 눈물의 의미는 제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리라. 울먹이던 그를 안아 주기 위해 곁으로 온 이가 다름 아닌 친구이자 라이벌인 고다이라 나오라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제 자신의 단점과 끊임없이 싸우는 삶의 중압감은, 오로지 같은 처지에 놓여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는 위만 바라보면 되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자신의 이름이 그 종목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면 더더욱 그렇다. 동계스포츠를 국제대회에서 국위선양하기 좋은 효자 종목 정도로나 생각할 뿐 생활체육으로 성장시킨다거나 안정적인 국내리그를 만들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상화는 오랫동안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버텨야 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 은퇴를 고민했지만, 고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3연패라는 대기록에 도전 해주길 바라는 팬들의 바람을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종아리 통증은 그에게서 경기감각을 앗아갔고, 다시 최전성기에 준하는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은 그가 당연히 금메달을 타낼 것이라는 듯 그의 이름을 포함시켜 “금메달 8개, 종합 4위”라는 목표를 공공연히 이야기했지만, 이상화는 메달 색깔과 상관 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제 자신의 약점을, 슬럼프를, 단점을 이겨내고 여전히 얼음을 지치는 자신을 지켜봐 달라고.
“나는 너무나 수고했고 길고 긴 여정도 잘 참아냈다!” 경기가 끝난 뒤 SNS에 올린 글에서, 이상화는 자신을 칭찬해 주었다.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으랴. 이상화는 평창을 통해 동계올림픽 역사상 세 번째이자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 수상의 대기록을 세웠고, 2016-2017 시즌 그를 괴롭힌 부상과 통증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어떤 이는 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또 어떤 이는 벌써부터 베이징을 거론하며 리턴 매치를 부르짖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 사실만을 오래 음미했으면 한다. 이상화가 제 스케이팅의 완성을 위해 또 한번 자기 자신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언제나 그랬듯 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SNS에 올린 글을 마무리하던 해시태그 “#그리고나는나였다”가 말해주듯, 이상화가 이상화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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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