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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돈으로 빚은 인간의 초상

이 영화에서 그는 연출자라기보다는 조각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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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는 폴 게티의 두상 조각 그 한 장면을 위해 달려온 인상을 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올 더 머니>를 대하는 리들리 스콧의 자세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8.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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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 더 머니>의 한장면

 

(* 이 영화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 더 머니>의 원제는 ‘All the Money in the World’다. 직역하면 ‘세상의 모든 부(富)’ 정도가 될 텐데 이는 일차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장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원래 캐스팅은 케빈 스페이시였지만, 성추행 파문에 연루되면서 리들리 스콧은 그의 촬영분을 전면 폐기하고 재촬영했다!)를 수식한다. 폴 게티는 석유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196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인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던 갑부 중의 갑부였다. 그에게 세상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교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돈에 관한 확고한 철학은 피를 나눈 가족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와 관련해 악명을 떨친 사건이 있다. <올 더 머니>가 다루는 게티 3세 유괴 사건이다. 게티 3세는 폴 게티가 많은 손자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게 여긴 손자였다. 하지만 게티 3세의 아버지이자 폴 게티의 아들이었던 게티 2세가 마약에 중독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며 이혼당하자 양육권은 엄마 게일(미셀 윌리엄스)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게티 3세는 게일과 이탈리아 로마에 살다가 1973년 7월 10일 새벽 3시에 유괴를 당한다.

 

유괴범이 게티 3세를 풀어주는 대가로 요구하는 액수는 1,700만 달러(한화 약 186억 원). 게일은 그 즉시 전(前) 시아버지였던 폴 게티에게 연락해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몸값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한다. 게일에게 양육권을 넘기면서 단 한 푼의 위자료도 허락하지 않았던 폴 게티가 거액의 몸값을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다.

 

이들 언론이 판단하는 기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도 ‘돈’과 관련한 것이었다. 게티 3세의 안전 여부와 상관없이 과연 폴 게티는 몸값을 낼 것인지, 지급한다면 얼마가 될 것인지, 심지어 유괴범들이 폴 게티에게 전하는 최후 통첩처럼 게티 3세의 귀 한쪽을 신문사로 보내니, 이에 관한 사실을 보도하고 싶다며 편집국장은 게일에게 섭섭하지 않은 대가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모든 쟁점이 돈으로 향하다 보니 유괴 사건의 악랄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러 종류의 탐욕이 대신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제는 이차적으로 ‘돈에만 혹하는 세간의 관심’이라고 할 만하다.

 

<올 더 머니>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손자의 유괴 사건마저 돈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폴 게티의 물질만능주의에만 있지 않다. 리들리 스콧의 말을 들어보자. “돈이 많은 것과 없는 것, 그 사이의 공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손자의 목숨값에 재물 쓰기를 망설였던, 게일의 표현을 빌자면, ‘악의 제국’과도 같은 폴 게티. 아들과 함께 사는 것만 한 가치가 없어 게티 가문과 이혼하면서도 단 한 푼의 위자료도 챙기지 않았던 게일. 유괴 사건이 아니었으면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에 게티 3세의 의미를 두고 조성되는 공허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리들리 스콧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물질의 가치를 신봉하는 폴 게티의 일면은 손자의 몸값은 거절하면서도 거액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 구매에는 주저함이 없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폴 게티는 살아생전 매우 많은 예술품을 수집한 거로 유명하다. LA의 명소 폴 게티 센터에 위치한 폴 게티 미술관은 폴 게티가 가지고 있었던 작품을 토대로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폴 게티의 남다른 예술 사랑은 이 영화가 묘사하는 입장에 의하면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라기보다는 소유욕이 작용한 결과다. 그의 사전에는 돈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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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 더 머니>의 한장면

 

어떤 면에서 보면 폴 게티에게 손자 게티 3세는 좀 더 특별한 물건(?)이다. 심장에서 달러 마크가 박동할 것 같은 장사꾼의 입장에서 돈의 액수를 어떻게든 최소화할 때까지 기다린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귀가 잘리는 등 물건의 가치가 손상을 입자 결국 몸값을 내어주는 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추격을 눈치챈 유괴범들에 의해 게티 3세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때 이 영화는 불길한 예감에 잠에서 깬 폴 게티가 사경을 헤매는 장면을 교차 편집한다. 폴 게티가 마지막 숨을 쉬기 전 손에 쥐는 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이다. 그러면서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 “아가야...” 단발마와 같은 짧은 부름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몸값 지급을 늦춰 손자의 목숨을 위협받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 혹은 자책감? 개인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구입해 애지중지하는 그림을 놔두고 저세상에 갈 것을 생각하니 밀려오는 진한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어쨌든, 폴 게티의 죽음과 궤를 함께해 목숨을 부지한 게티 3세는 상속자가 되지만, 아직은 법적 미성년인 관계로 대리인의 자격을 얻은 게일이 재산 처분의 당사자가 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시아버지의 재산이라면 치가 떨리는 게일은 사회 환원을 결정하고 방안에 둘러보다 폴 게티의 두상 조각을 발견한다. 돈으로 물건을 지배하는 입장에서 이제는 물건의 처지가 되어버린 폴 게티의 신세. 돈만이 존재 이유였던 폴 게티에게 죽음 이후 남은 건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를 물질로 채운 공허다. 그런 폴 게티의 조각상을 게일은 측은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본다.

 

<올 더 머니>는 폴 게티의 두상 조각 그 한 장면을 위해 달려온 인상을 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올 더 머니>를 대하는 리들리 스콧의 자세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연출자라기보다는 조각가에 가깝다. 희대의 유괴 사건을 재료 삼아 리들리 스콧은 폴 게티 가문의 역사를 자세히 살피고 게티 3세의 유괴를 전후한 정황을 정확한 날짜까지 기재하며 섬세하게 꾸려나간다. 그리고 폴 게티와 게일을 비롯하여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물론 언론과 대중의 관심까지 놓치지 않는 리들리 스콧의 손길이 끝내 완성하는 조각은 돈으로 빚은 인간의 초상이다. <올 더 머니>의 각본을 쓴 데이빗 스카피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돈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조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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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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