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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스피커를 사며 꺼내 든 음반

‘Maurizio Pollini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Brahms: Piano Concertos) 폴리니, 아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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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주자들의 음반을 들어 보아도 폴리니의 브람스 피아노 피아노 협주곡은 단연 최고이다. 사실 이 곡은 서정적인 동시에 굉장히 힘있고 남성적인 면이 짙은 곡인데, 폴리니의 부드럽고 절제된 연주가 이 곡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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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말 우아하고 감각있어.”


동네의 부인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그녀, 그리고 그녀가 고른 음악,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 속 장면에서였다. 대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세 부인에게 보낸 편지A Letter To Three Wives> 라는 영화였는데, 줄거리는 모두 잊혀졌지만 이 곡만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장르를 불문하고 한 곡에 매료되면 며칠이고 음악이 전부 소화될 때까지 그 곡만 듣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내 음악의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런 의미에서 대학 생활 내내 내게 뼈와 살이 되어 주었던 곡 중 하나였다. 사실 클래식 음악과 영화 음악은 똑같은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작곡이 되었다 하더라도 출발점부터 다르다. 클래식은 음악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 작곡된 음악이고, 영화음악은 줄거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장면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작곡된 ‘목적성이 짙은’ 음악이다. 그래서 영화 음악은 코드 진행이 조금 더 낭만적이거나, 감정에 충실하거나, 스토리텔링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내가 느꼈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클래식 곡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장면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기승전결의 줄거리가 뚜렷한 곡이었다. 그만큼 서정적이고 압도적이며 또 유유히 흘러가는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다. 이 곡은 브람스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여행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며 작곡을 시작한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곡을 시작한 이후 3년이 지나서야 곡을 완성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50대였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이 1번을 작곡한 지 23년 만에 완성된 곡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이 곡이 어떻게 그토록 사색적이고 견고하며 탄탄한 구성을 이루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브람스는 천재로 타고난 작곡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시절 작곡한 곡들은 대부분이 파기되었을 정도로,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대기만성형 작곡가였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에 그의 인생과 노력이 어우러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풍부하고 견고해져 갔다. 어쩌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며 막연히 서사적인 스토리가 떠올랐던 것은,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한 이후 23년이라는 시간이 이 음악에 담겨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곡을 쓸 때에 곡에 ‘스토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떠한 장면들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사실 곡을 쓰는 사람이 곡에 감정을 담아내기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곡을 듣는 사람이 작곡가가 의도한 감정을 똑같이 상상하면서 듣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곡은 클래식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줄거리가 담겨있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사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곡을 듣고 나면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금까지도 내게 귀감이 되는 곡이다.

 

특히 이 음반은 쇼팽 연주의 거장이라고 칭송받는 폴리니의 협연으로 녹음된 음반이다. (폴리니는 1960년, 18살의 나이로 쇼팽 콩쿨에 우승했다. 이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했으나, 개인적으로 나는 폴리니의 브람스 연주를 더 좋아한다.) 영화에서 처음 접했던 브람스의 곡을 이 음반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폴리니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인지 잘 알지 못했으나, 개인적으로 다른 연주자들의 음반을 들어 보아도 폴리니의 브람스 피아노 피아노 협주곡은 단연 최고이다. 사실 이 곡은 서정적인 동시에 굉장히 힘 있고 남성적인 면이 짙은 곡인데, 폴리니의 부드럽고 절제된 연주가 이 곡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음반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최근 새로운 스피커를 사면서였다. 빨간색의 굉장히 모던한 외형의 스피커인데, 오래전부터 꼭 사고 싶었던 것이었다. 스피커가 배송된 날, 첫 곡으로 왠지 모르게 옛날에 즐겨 들었던 음반을 틀어보고 싶었는데, 그중 고르고 고른 것이 폴리니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그리고 역시, 늘 그랬듯이 1주일 내내 이 곡만 틀어 놓았었다. 마치 좋아하는 소설 속 대사를 달달 외우는 것처럼 곡의 선율과 화성을 하나 하나 기억하며,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주제로 한 나만의 영화를 써 가며 말이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면, 다른 일을 잠시 접어두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라는 영화에 꼭 빠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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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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