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아이가 어려운 질문할 때 고민하지 마세요”
『어린이 대학 - 생물』 펴내
부모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질문하면, 나를 괴롭히려고 얘가 그러나? 착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에요. 내가 정답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버려야 대화가 진전돼요. (2017.08.08)
“동물도 말을 하나요?”, “동물에게도 지능과 감정이 있을까요?”, “동물원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좋은 일인가요?” 동물원에 함께 간 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쏟아낸다. 잠시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답이 당연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선뜻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인터넷을 찾거나 백과사전을 뒤진다. 친절하게 설명이 돼있는 것 같지만 아이한테 설명해주려니 갑갑하다. 이럴 때 읽으면 좋을 책이 출간됐다. 어린이가 묻고 석학이 답한 책 『어린이 대학』이다.
『어린이 대학』을 기획한 창비 출판사는 초등학교 5, 6학년 어린이 150명에게 생물학, 역사학, 물리학, 경제학에 대해 무엇이 궁금한지 설문조사를 했다.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각 학문과 관련된 현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엉뚱한 호기심이 느껴지는 질문, 핵심을 꿰뚫는 질문 등 다채로운 400여 개의 질문이 모인 중에 높은 순위를 기록한 질문, 학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주효한 질문 등을 추려 석학에게 물었다. 생물학자 최재천, 역사학자 이만열, 물리학자 오세정, 경제학자 이정전, 4명의 석학이 질문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답했다. 『어린이 대학』시리즈는 어린이와 석학 사이에 오고간 대화이자 지적 교류의 결과물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은희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생물 편을 썼다. 최재천 교수는 아이들의 소박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들으며,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한 생물학자의 탄생을 기대했다.
아이들이 물어줘서 고마운 질문
그간 60여 권의 책을 집필, 번역하셨는데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처음 쓰셨어요.
평소 제가 책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성인 독자를 위해 쓴 책을 나이 어린 친구들도 제법 많이 읽어요. 과학책을 쓸 때 출판사에서 늘 중학교 3학년생 수준을 목표로 해서 쓰라는 조언을 해주시는데요. 『어린이 대학』은 창비 출판사에서 직접 기획해 제안해주신 책이라서 작업하기가 아주 편했어요. 이은희 선생님이 탁월한 저술가라서 책이 정말 깔끔하게 나왔어요.
‘생명의 탄생과 진화, 생명의 노화와 죽음, 동식물의 이모저모, 생명 사랑의 길’ 등 4부로 나눠 총 20개의 질문을 선별했습니다. ‘최초의 생명체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요?’, ‘왜 공룡은 멸종했나요?’, ‘동물도 말을 하나요?’ 등 흥미진진한 질문이 많아요.
아이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질문이 쏟아져요. 어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과는 정말 다르죠. 그런데 이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은 없거든요. 모든 질문이 다 소중해요. 아이들이 때때로 답하기 민망한 질문도 하지만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도 해요.
특히 인상 깊었던 질문이 있나요?
늘 어렵다고 생각하는 질문과 물어줘서 고마운 질문을 이야기할게요. 하나는 “최초의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라는 질문인데요. 저는 답을 몰라요. 사실 모를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저만 없었나요? 아무도 없었죠. 대학에서 생물학 강의를 하면, 학기 중간쯤 생명의 기원을 다뤄요. 교수니까 답을 말해줘야 하지만 저는 말해요. “솔직히 나는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챕터 만큼은 각자 읽기로 하자. 각자 생각해보자”라고 하고 넘어가요.
학생들이 이 답변을 받아들이나요?
학교에서는 받아줘요.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이 대답을 받아주질 않죠. 그리고 굳세게 물어보시죠. (웃음)
『어린이 대학 : 생물』 편에서는 두 번째 질문으로 등장해요.
화석 등 여러 증거를 통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최초의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약 38억 년 전에 바다에서 생겨났을 거라 짐작해요. 하지만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바닷속에서 생물이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죠. 중요한 건 수십억 년 전에 태어난 최초의 생명체가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 중 하나일 것 같은 데요.
확률의 개념을 아이들이 이해할까 걱정했지만, 용어만 어렵게 느껴질 뿐 이해하기 힘든 건 아니지 않아 싶어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 광활한 우주에 지구 빼고는 생물이 사는 행성은 절대 없어, 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물론 지구 바깥에 생명체가 있을 확률은 높지만, 그 외계 생명체가 꼭 지구의 생물과 닮았거나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번식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요.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자기 복제를 하는 방식이 인간과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질문해줘서 고마웠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세 번째 장이 ‘동식물의 이모저모’인데, “동물도 말을 하나요?”, “동물에게도 지능과 감정이 있을까요?”에 대한 답이 나와요. 제가 생명의 기원을 특별히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동물행동학자니까요. 이런 질문에 저에게도 가장 재밌는 질문이죠. 동물이 말을 하진 않지만 분명 서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삶을 영위하니까요. 정말 신기하고 정교한 방법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생물들도 많거든요. 특히 곤충은 냄새, 즉 화학 물질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해요. 암컷 누에나방은 짝짓기 철이 되면 봄비콜이라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데, 수컷 누에나방들 사이에서 사랑의 신호로 통하죠.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봄비콜의 냄새를 맡고 날아올 정도니까요. 또 개미가 의사소통 하는 방식도 유명해요. 외분비샘이라는 곳에서 나오는 화학 물질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섞어서 신호를 보내는데, 여러 물질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최종 혼합물의 종류는 거의 무한대로 가까워요. 개미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인간의 언어가 답답할지도 모르죠.
마지막 장의 주제는 ‘생명 사랑의 길’입니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법, 생물학자가 되는 법 등 진로에 관한 질문도 있어서 고학년 친구들이 눈여겨볼 것 같아요.
한편 걱정도 들었어요. 왜냐면 이 책은 주로 초등학생들이 읽을 텐데, 생물에 관심을 갖다가도 중고등학교에 가면 생물과 멀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거든요. 입시 위주로 공부하다 보면 물리나 화학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전략적으로 생물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교육이 생물은 외워야 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놓아서 막상 대학 생물학과에 오는 친구들을 보면, 성적에 맞춰 대충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굉장히 속상하고 화가 나는 부분이죠.
2018년도부터 문과, 이과가 사라지고 통합형 교육과정을 실시합니다. 교수님께서 오래 전부터 문, 이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변화를 기대하시나요?
기대는 전혀 없어요. 요즘 제가 새롭게 시작한 운동이 문과, 이과 통합 반대예요. 이유인즉 통합과정을 만들면서 교육부가 학부모들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는 거예요. 내 아이가 반쪽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왜 양쪽을 다 해야 하냐는 거죠. 문과 아이들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쳐주겠다고 해놓고 문과 아이들의 부모가 우리 아이들 힘들다고 하니, 과학에 물을 잔뜩 타는 거예요.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 과학 냄새만 풍기는 거죠. 요즘 제가 돌아다니면서 대놓고 말해요. “문과, 이과 통합은 이과로 통합이다. 모든 학생이 이과 공부를 하자고 통합하는 거지, 이과 공부를 쉽게 해주겠다고 통합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요. 지금 4차산업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서비스산업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반도체, TV, 배, 자동차를 잘 만드는 제조업 국가예요. 그런데 마치 제조업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이공계를 제대로 키워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어요. 통합과정 만들어놓고 어중이떠중이를 만드는 건 옳지 않아요. 이과를 전공할 학생을 골라서 확실하게 키우는 게 오히려 덜 위험한 일이죠. 지금은 100세 시대라 누구나 과학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가져야 하는 시대예요. 모든 게 다 과학으로 이뤄진 시대니까 제대로 된 통합 교육이 필요해요.
같이 질문하고 같이 답을 찾아가는 사실이 중요해요
『어린이 대학』을 부모가 먼저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크면서 부모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데 선뜻 대답이 안 나와서 곤란한 경우도 많으니까요.
부모들이 질문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질문을 하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그런 질문을 못 했으니 대답하기가 어려운 거죠. 최근 신문 칼럼에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제임스 라이언 학장이 『Wait, What?』이라는 책을 썼는데 무척 인상 깊었어요. 이 학장님이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하는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유튜브에 검색하면 영상이 나오는데요. “Wait, What?”은 미국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에요. 부모가 쓰레기를 좀 버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뭐요? 왜 그걸 내가 해야 되는데요?”라고 물어요. 제임스 라이언 학장은 이 질문을 아이들이 하게 하지 말고, 우리가 늘 하자고 말해요. 왜 이래야 하는지, 세상에 의문을 갖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하라는 거예요. 질문 다섯 개가 아주 멋있었어요. 한글판이 나온다고 해서 추천사를 썼는데요. 사람이 살면서 질문을 잘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책을 깊이 읽었다면 새로운 질문이 나와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렇죠. 아이랑 책을 읽다 보면 아이가 반드시 질문해요. 부모는 답해줘야 하는데 그게 꼭 정답이 아니어도 돼요. “글쎄, 이건 왜 이럴까?”하고 같이 고민해 보는 거죠. 아이의 질문에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 칠 수도 있으니까요. 아까 제가 말씀 드렸지만 저도 최초의 생명체가 어디서 왔는지 몰라요. 같이 질문하고 같이 답을 찾아가는 사실이 중요해요. 부모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질문하면, 나를 괴롭히려고 얘가 그러나? 착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에요. 내가 정답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버려야 대화가 진전돼요.
“무식한 질문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것도 몰라? 창피해서 질문을 안 하는데 분명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창피하더라도 질문을 하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거예요.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예전에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연세대에서 출강을 해달라고 했어요. 너무 설득해주셔서 3학기를 진행했는데 서울대에서는 그렇게 안 되던 토론수업이 연세대에서는 되더라고요. 왜냐, 애들이 질문을 막 던지는 거예요. 그 때가 정운찬 전 총리가 총장을 할 때였는데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왜 서울대는 안 되냐고 하면서 교육개발연구에서 토론수업을 개발하고 했어요. 이제는 서울대도 토론 수업이 좀 되는데,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연세대 학생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게 좀 덜 해요. 서울대 학생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고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으니 항상 주목을 받아서 이게 잘 안 되는 거예요.
하버드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요. 어떻게 다르던가요?
하버드대에서는 시끄러워서 토론을 못해요. 워낙 말을 잘하는 애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서로 얘기를 하려고 난리가 나죠. 또 학생들이 몇 번 입을 열었느냐를 체크해서 점수를 매겨요. 그러니 더 아이들이 말을 많이 하죠. 그런데 제가 쭉 보니까 이게 그다지 효과가 없어요. 책도 안 읽고 떠드는 애들도 있고. 그래서 나는 횟수로 카운트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편안하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지침을 바꿨죠. 이게 애들한테는 신선했나 봐요. 학기 말에 수업 평가를 하는데 “정말 토론다운 토론을 했다. 교수가 전혀 압력을 안 줘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수업을 하고 계신데, 좋은 학점을 받기가 어려운 과목이라고 들었어요. 굉장히 빡빡하게 진행된다고요.
그래서 학생들이 잘 안 와요. 왜 이렇게 안 오냐고 조교한테 물었더니, 3학점인데 30학점으로 소문이 났대요. 각오하지 않으면 학점을 못 받는다는 거죠. 하지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너무 좋아했어요. 제가 강의는 별로 안 하거든요. 대신 엄청나게 떠들어야 하고 글도 많이 써야 하고 현장도 뛰어야 해요. 힘들 수밖에 없지만 또 그만큼 얻는 게 많죠. 성적만 잘 받으려고 쉬운 수업만 들으면 그건 진짜 공부가 아니에요. 입사원서 쓸 때 학점 좋은지를 그렇게들 보는데, 성실하게 공부해서 학점을 잘 받은 아이들도 있지만, 쉬운 과목만 골라 들어서 학점 좋은 애들도 많아요. 그건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려는 얌체죠. 회사에 좋은 인재를 뽑겠다고 하면서 그런 얌체들만 뽑으면 회사는 발전 가능성이 없어요.
책에 “알면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와요. 평소 교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이에요.
어쩌다 만든 말인데, 대학원생들은 싫어해요. 너무 권위가 없어 보인다고요. (웃음) 그런데 이게 사실 언젠가 한번 내뱉었다가, 곱씹을수록 괜찮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 좌우명이 됐어요. 안다는 말이 알아간다는 뜻이잖아요. 학문한다는 뜻도 되고요. 저 같은 사람은 평생 앎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가 작년에 내한했는데 그 분이 주장하는 게 “우리 인간사회에서 폭력성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거든요. 왜 줄었냐? 이건 결과적으로 학문의 영향이에요. 많이 알게 되면 옛날 같은 무모한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거예요. 결국 나에게 손해니까요. 사실 그 분 책(『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요. 하지만 전 굉장히 고마웠어요. 우리가 학문을 왜 해야 하고, 서로를 왜 알아가야 하는지를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1주일 전에 일을 마치면 마음의 평화가 있어요
다독가로 유명하세요. 책을 권해달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실 텐데요.
종종 듣죠. 굉장히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분도 계시고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추천한 책은 『총,균,쇠』예요. 인류의 역사를 총과 균, 쇠로 다시 분석한 책이죠.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문명 발달의 차이가 있다는 거죠. 역사학 책인가 하면, 지리학, 경제학도 들어 있어요. 완벽한 의미의 통섭학자죠.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시대에 공부를 왜 두루 해야 하는지가 보여요. 『총,균,쇠』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1년 넘게 10위 안에 있었어요. 돈도 무지 벌었죠.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으리으리하더라고요. 그런데 대화가 진전이 안 돼요. 몇 마디 하다가 새가 우니까 “이 새는 남미에서 날아와서” 어쩌고저쩌고. (웃음)
『총,균,쇠』가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꼭 읽는 책으로 유명하잖아요.
대출 순위로 뜬 책이잖아요? 『총,균,쇠』가 국내에서 유명해진 게,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1위 때문이었는데요. 얼마나 많이 빌렸냐 따져보면 18회였어요. 다른 책은 17회, 16회. 워낙 책을 안 빌리니까 1등을 한 거예요. 그런데 어떤 신문에서 1위로 이 책을 공개해서 사람들이 우르르 관심을 갖게 됐죠.
요즘은 주로 어떤 책을 읽으세요?
참 서러운 게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정작 내 독서를 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제 서가에 책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물어요. 이 책을 다 읽었냐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많지 않아요. 저는 주로 공격형 책 읽기를 해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은 후에 다시 서가에 꼽아 놓죠. 오래 전에 <조선일보>에 서평을 쓴 적이 있어요. 네 명이 번갈아 가면서 쓰는 코너였는데, 중국 소설가 위화의 『인생』을 소개했어요. 원제는 ‘활착(活着)’이었는데, '활착'이란 원래 "옮겨 심거나 접목한 나무가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는 뜻이죠. 저는 이 원제가 훨씬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서평을 썼을 때가 아마 2008년이었을 거예요. 위화 작가가 국내에서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분들이 많죠.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작가예요.
2003년에 출간됐던가요?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 책을 아동 도서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어요. 아이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생물학자가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먼저 이해하면 페미니즘이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요청 받은 곳이 있는데요.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최근 10여 년 동안 학계에서는 백과사전 열풍이 불고 있어요.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에서 동물행동학 총괄 편집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 작품을 하고 있어요. 외국 출판사들 무섭거든요. 수락하자마자 사흘이 멀다 하고 메일을 보내 와요. 섹션 에디터도 나눠야 하고 아주 정신이 없어요.
시간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마감도 칼같이 지키신다고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시간관리에 대한 책을 내자는 출판사가 여러 곳 있어서요. 바빠서 좀 시간을 두고 있는데 쓰긴 써야겠네요. 언젠가 성공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당신이 약간의 성공을 했다면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 같냐고. 생각해보니 제가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니에요. 그래도 하나 있다면 부지런한 것, 시간관리에요. 제가 하버드대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기숙사 사감을 7년을 했는데, 다음주까지 내면 될 숙제를 한 주 전부터 해요. 친구가 맥주를 마시자고 불러도 “NO”예요. 모든 걸 일주일을 앞당겨서 해요. 뭐 이런 애들이 다 있나 싶었는데 7년을 보니까, 얘네들이 왜 똑똑한지를 알겠더라고요. 1주일 전에 일을 마치면 마음의 평화가 있어요. 갑작스런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아요. 또 천천히 일을 다듬을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가끔 제게 물어요. “교수님은 하는 일이 엄청 많으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여유만만하냐”고요. 실제로 여유로워요. 이번 주는 놀아도 그만이에요. 이미 다 끝내놓아서.
글도 여러 번 퇴고하신다고요.
만약 김훈 선생님과 제가 글짓기대회를 한다면 누가 이길까요? 3시간을 준다면 당연히 김훈 선생님이 이기겠지만, 1주일을 준다면 그래도 붙어볼 수준만큼은 갈 수 있어요. (웃음) 지금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는데 글자수가 1,000자밖에 안 돼요. 짧은 글이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50번을 고쳐요. 편하게 읽힐 때까지 고치는 거예요. 중복된 단어가 있으면 동의어를 찾아서 고치고요. 글의 재미가 떨어지면 뒷 문단을 통째로 가져와 앞에 넣어 봐요. 그러면 긴장감이 확 살아요.
평소 “아름답게 방황하라”는 말도 자주 하세요. 일찍 진로를 결정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경험한 후에 결정하라고 말씀이세요.
촛불을 한 번 들고 싶어요. 광화문에서 학부모들을 다 모이게 해서, “내일부터 우리 아이 학원을 다 끊고 무조건 팽팽 놀리자”고 선언하는 거예요. 이 의견에 찬성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어요. 문제는 옆집 아이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다 안 보내면 끝나는 거예요. 완전히 놀리면 죽냐? 안 죽어요. 방목해야 아이가 창의적으로 커요. 물론 이게 불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진짜 하고 싶어요. 제대로 된 공부는 대학에 와서 해도 돼요. 미국에 괜찮은 대학 아이들은 잠이 부족해요. 그래서 여름방학이 되면 며칠 동안을 잠만 자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을 한 번 봐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싸매어 살아서 대학에 오면 팽팽 놀아요. 우리는 거꾸로 됐어요. 이러면 미래는 없어요.
“10살까지 놀았던 경험과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 맘놓고 놀기가 어렵죠.
제가 기가 막히게 성공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거겠네요. 10살까지 저보다 더 잘 논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 나가서 노니까 통행금지를 어겨 경찰서에 가기도 했어요. 열심히 논 덕분인지 아직까지 공부가 재밌어요.
어린이 대학 : 생물
최재천, 이은희 글 / 김소희 그림 | 창비
초등학교 5, 6학년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벌여 어린이들이 각 학문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받고, 해당 학문을 평생 연구해 온 석학이 어린이의 질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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