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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수업의 마지막은 늘 질문이었어요”

라틴어를 토대로 펼치는 유럽의 인문 교양
『라틴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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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듣고 그 답에 확인과 확신을 주는 게 수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이거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을 겪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요.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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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초급 라틴어’ 수업을 가르쳤다. 24명으로 시작한 수업은 그다음 학기에 67명, 이후 학기마다 200명이 넘는 학생이 듣는 인기 수업이 되었다.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히고, 공통어로 채택한 국가가 없는 사어(死語)를 배우려는 학생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동일 저자의 글은 어학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오늘날의 이탈리아 등 종합적 인문 교양 지식을 넘나든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고 라틴어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연 사람이라면 라틴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동사 변화표가 앞에 나오지 않는 걸 보고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라틴어를 유창하게 쓰기 위한 문제집이 아니다. 공부는 공부로서 족하다는, ‘공부 노동자’의 고백이자 나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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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시작한 계기


6년간의 강의가 책으로 엮여 나왔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이 책은 수업 시간에 라틴어를 설명하고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조금씩 나누고 공유했던 이야기예요. 어떻게 보면 내가 공부하면서, 일상을 살면서 실패하고 무너지고 느꼈던 게 오히려 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가오는구나 싶었어요. 처음에 이 수업이 알려지고 취재 요청이 왔을 때 제 전제조건이 제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주가 되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 인터뷰도 똑같이,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던 학생들 덕에 있었던 거예요. 학생들 덕분에 제가 이야기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고, 내가 준비했던 단계를 넘어서 다른 단계로 넘어간 기분이 들었어요.


강의와 책은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책을 쓰면서 도대체 내가 강의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싶었어요. (웃음) 한 학기 강의가 끝나면 어떤 학생이 수업 노트를 정리해서 보내줄 때가 있어요. 공부를 시작했던 제 미천함과 약함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강의를 끝나고 이 책을 쓰게 됐을 때 예전에 학생이 보내준 파일을 보니까 놀랍게도 6년간 이야기했던 것들이 파노라마 지나가듯이 연결이 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 덕분에 저를 정리하는 기회가 됐어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제 마음의 결을 보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공유하면서 많은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이시기도 하시죠. 로타 로마나는 뭐고, 교회법이란 무엇인가요?


교회법을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천주교 관계자도 교회법이 종교적인 내부 규율 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아요. 유럽 법의 원천을 로마법으로 아는데, 그다음에 있는 게 교회법이에요. 예를 들어 기판력이나 상소, 항고, 이런 개념이 다 교회법에서 나왔어요. 결과적으로 우리 민법도 교회법의 영향 아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로타 로마나는 단순히 교회 재판소가 아니라, 유럽 중세 시대의 국제 재판소라고 봐야 합니다. 구교와 신교가 부딪치면서 가장 먼저 쟁점이 되었던 게 종교의 자유였죠.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양심에 관한 문제, 신념에 관한 문제, 양심과 신념을 표현하려다 보니 출판 및 표현의 자유, 그걸 더 나아가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필요해요. 바로 종교 자유 문제에서 헌법의 기본권이 나온 거예요. 지금도 정교조약에 의해서 교회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면 국가 법원에서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로타 로마나 내에서는 라틴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저희는 라틴어 공부가 의무였어요. 일단 외우기부터 시작하는 수업이라 의무적으로 1년이 끝나면 다들 해방이라고 기뻐하는데 저는 이 언어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라틴어, 영어, 독일어 등 외국어를 매일 한 시간씩 공부했어요. 그렇게 쭉 이어지다 유학을 가서 대법원 준비를 하자 그때부터 라틴어로 시험 보고 강의하고 과제물 내는 생활이었어요. 라틴어 교수님을 섭외해서 이탈리아 문장을 들려주면 그 자리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수업을 받았어요.


첫 의뢰인은 동양인이라는 걸 보고 실망하고 그대로 나갔다고요. 요새는 어떤가요?


요새는 로타 로마나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바로 받기 때문에 장기 미제 사건을 주로 담당해요. 로타 로마나 안에서는 유명해졌죠.


강의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아주 우연한 계기였어요. 저에게 양어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제가 신부로서 제단에 서는 게 아니라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셔서 서강대의 아는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마침 강의가 비어 있었고, 첫 번째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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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초급 라틴어’는 언어 수업이라기보다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다는 평이 있었어요.


약을 친 거죠(웃음). 곧이곧대로 라틴어 문법만 가르쳤다면 아마 계속 24명으로 수업했을 겁니다. 대개 관련된 문헌이나 명문을 뽑아서 문장에 대한 문법적 설명을 하고, 수업 말미가 되면 제가 느꼈던 어려움을 학생들과 공유했어요. 처음에 강의할 때는 수업 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라틴어 외 다른 이야기를 곁들이는 걸 주저하고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시험 답안지에 어떤 학생이 덕분에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를 보고 문화를 보게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적어주었더라고요. 그래서 소극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을 넘어서니 수업시간이 더 풍부해졌어요. 유럽에서 찍었던 사진도 같이 보여주고요. 라틴어와 관련된 걸 사진과 함께 설명하니 학생들이 거기에 귀를 쫑긋쫑긋 세우더라고요.


선생님이 느꼈던 어려움이라는 건 뭐였나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제가 공부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학창 시절에 공부 못 했어요. 그저 공부를 놓지 않고 계속했어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공부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적하고 아픈 거예요. 하나의 책이나 작업이 끝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 쉬는 게 제일 괴로워요. 그 사이 저와 관련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빨리 다른 작업을 들어가고는 했어요.


하지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하고 따라 하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학생이 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찾아오면 이미 그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방법과, 나름 세웠던 결론도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내린 결론에 확신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질문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듣고 그 답에 확인과 확신을 주는 게 수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이거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을 겪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요. 수업의 마지막은 늘 질문이었어요.


라틴어는 부수적이고 젊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수업의 주가 된 것 같아요.


1시간 15분 수업이면 한 시간은 라틴어 공부했어요. (웃음) 다만 새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 단어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나씩 했죠. 예를 들어 장점과 단점(defectus et meritum)을 설명하면서 제 경험을 곁들이는 거예요. 저는 심장 혈관이 선천적으로 기형이에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공부를 몰아쳐서 하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항상 시간을 나눠서 공부하고, 대인관계는 꽝이 되었어요. 신체적 약점이 공부하는 데는 장점이 됐는데, 이 장점이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하고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미성숙했기 때문에 단점이 된 거죠. 장점이 장점으로만, 단점이 단점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고, 결론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유럽에서는 ‘남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나의 전보다 잘하는 것’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실제 강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상대 평가로 점수를 매겨야 합니다.


우리나라 성적 평가 방식처럼 비교육적인 건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30%는 A, 40%는 B, 나머지는 C나 D 이렇게 주잖아요. 학생들에게 팀플레이 정신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늘 경쟁 상대로만 보게 돼요. 그래서 강의할 때 중간고사는 고학년부터 A를 주기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학년이 높으면 취업이다 뭐다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은데, 혹시 그들 가운데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A 를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받으면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대신 진짜 학점은 기말고사에 공정하게 주겠다고 했죠.


학생들이 억울해하진 않았나요?


한 번에 결정되는 게 억울하다는 이의 제기도 있었어요. 그 말도 맞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점수를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획득하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그랬더니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틴어 문구 중 ‘합의가 법을 만든다(Consensus regem facit)’는 문구가 있어요. 비록 현재 시스템 안에서는 상대평가밖에 할 수 없지만, 잠시만 경쟁자들 말고 합의하면서 다른 걸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교육으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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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공부


공부를 ‘틀을 만드는 작업’으로 비유해 주셨어요.


공부하면 좋은 성과보다 항상 나쁜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요. 준비한 만큼 결과가 똑같이 나오는 게 아니라 더 적게 나오기도 하잖아요. 항상 결과를 요구하는 공부는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다 무용지물이죠. 그런 식의 공부는 우리에게 실패감밖에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틀을 만드는 작업은 실패감만 주는 공부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작업인 거죠. 삶이 죽음을 선택하라고 할 때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하는 게 희망인데, 그런 힘이 생기려면 사고의 틀이 필요해요. 사고의 틀은 한번 좋은 걸 보고 맛있는 걸 먹는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끊임없이 내 마음의 결을 보는 게 틀이에요. 그 틀을 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무언가 놓고 싶은 감정에도 패턴이 보여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무조건 외우고 집어넣는 고문을 놔두고 내 마음의 결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게 제가 말한 틀이에요. 틀이 만들어지면 똑같이 시험 통과하려고, 취직하려고 공부해도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공부해서 남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왜 힘든지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공부를 남 주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자기와 가장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만 연구했잖아요. 우리가 조금만 더 나아갔더라면, 우리 젊은이들이 힘든 걸 다른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사고의 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보다 ‘왜’를 더 고민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데요. 지금 생각하는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요? ‘배워서 남 주자’인가요?


답이라고 하긴 좀 부끄럽죠. 저는 사실 공부가 도피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환경이 힘들어서 공부했어요. 조그마한 단칸방에 책상 하나, 그 옆에는 TV가 있고 모든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시험 기간이니까 조용히 해주고 그런 건 없었어요. 환경을 잊으려고 공부를 했었죠. 서강대학교 왔으면 사실 얼마나 다들 공부 열심히 했겠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다 스스로 낙오자 같다고 생각을 하는 게 저를 자극했던 것 같아요.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이유 중에는 ‘있어 보여서’라는 것도 있습니다. 뭔가 배우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경험에 비추었을 때 나온 이야기인가요?


우리가 어떤 일을 왜 했냐고 질문받으면 사실 왜 했는지 몰라요. 시작은 유치할 수도 있어요. 우리 친구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건, 공부는 기억하고 암기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선생님 저 공부 안 했어요’ ‘어제 놀았어요’ 이거예요. 저는 그게 순수하게 정말 놀아서 그랬다고 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도 어떤 날은 내일이 시험인 줄 알면서도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러 가서 망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 마음을 돌이켜 보면 공부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이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떤 걸 아파하는지 보지 않고 물리적으로 왜 공부를 안 하는지만 보는 거죠. 여기서부터 방향이 잘못됐어요.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줬다면 작은 것을 보고서도 대단하다고 말해줄 수 있어요. 미천하게, 미약하게 보는 것들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실질적인 이용이 될 수 있는 것만 가르치지 막상 내가 왜 이걸 하는지 근본 질문을 사고하고 훈련하는 걸 가르치지 않아요. 그게 아쉬웠는데 아마도 이 수업이 조그만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라틴어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라틴어는 절대 쉬운 언어가 아니에요. 유럽에서 왜 이걸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그것도 대학을 가려는 아이들에게 시킬까 생각해 봤는데, 벼락치기가 안 되는 언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책에 하비투스(habitus)라는 단어가 나와요. 영어의 habit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습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옷이라는 뜻도 있어요. 수도승들이 입던 옷을 하비투스라고 불렀어요. 서양의 수도승은 일어나 기도하고 밥 먹고 같은 시간에 일하는 생활을 매일 같은 시간에 하잖아요. 아마도 라틴어는 아이들에게 습관이라는 옷을 만들어줄 수 있는 언어인 것 같아요.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법학전문대학원에 가도, 의대에 가도 덜 어려운 훈련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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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기를


아무래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라틴어라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붙잡아라’라는 의미)’이 떠오를 것 같아요. 최근 유행어 ‘YOLO(You Only Live Once)’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요. 원뜻과 다르게 소비를 촉구하고 현재의 즐거움을 좇는 어구로 사용되는데, 한국만의 특성일까요?


한국만의 정서에 편승한 상업적인 이유도 있겠죠. 그걸 제가 평가하기는 어려워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한국은 갈라파고스처럼 별난 사람들 같아요. 택시 타고 가면 기사분이 정치 이야기를 하고, 모든 문제에 관심이 많잖아요. 하지만 한꺼풀 벗겨 놓고 정말 전문가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저는 의문이 들어요. 보통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정치와 경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은 걸 신경 써야 하는 사회인 거죠. 결국은 우리가 서로를 신경 쓰고 사회를 신경 쓰면서 느끼는 피곤감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우리 공부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다른 사회를 부러워만 할 줄 알지 그 사회가 어떻게 그것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언어 차이도 흥미로웠어요. 다른 언어를 듣다 한국어를 들으면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서울에 오면, 공항부터 경쟁이에요. 우리 말이 너무 거친 것 같아요. 다른 언어에서는 나이 때문에 ‘너’라고 부르는 게 아닌데, 우리는 같은 나이만 친구로서 말을 트는 게 너무 제한적이에요. 라틴어가 좋은 언어고 한국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인식하고 발전시켜갈까 하는 숙제가 남았다고 생각해요. 로마인들은 로마의 속국이었던 스페인이나 프랑스를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공동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로마는 명령하기보다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존중의 언어였기 때문이죠. 이 어렵고 힘든 언어를 통해서 지배받는 사람도 지배받는 생각을 안 했던 거예요. 우리가 회사에서 부장과 팀장 등의 직책 이름을 없앤다고 해서 존중할 수 있을까요? 결국 서로 존중하는 언어가 됐을 때 자유롭게 자기 사고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천주교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보수적인 종교계와는 다른 발언을 하시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성경에 예수의 본 의도가 온전히 담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든지, 동성애 관련해 언급하시기도 하고요.


신이 있다면 신학과 법학이 인간 존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도구가 되길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게 진짜 신이잖아요. 신이 없다면 인간의 이성으로 하면 되겠죠. 크고 작음을 떠나 종교는 정원일 수밖에 없어요. 정원은 우리가 계획하고 원하는 수목과 수종만 있을 수 있고 나머지는 잡목과 잡풀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자연에는 잡목과 잡풀이 있을 수 없죠. 시시콜콜하게 대답하기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은 믿음에 의해서 할례가 된 게 중요하지 유대인인지가 중요한지 물었어요. 그때는 됐는데 왜 지금은 안 될까요?


『교회 법률용어사전』도 올해 3월에 내셨어요.


『교회 법률용어사전』은 2005년부터 작업해서 2015년에 초역이 끝나고 2년간 윤문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윤문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라틴어 수업』 작업을 한 거죠. 전에 냈던 책 『유럽법의 기원』과 『카르페 라틴어』가 모두 교회 법률용어사전 때문에 나왔어요. 맨 처음에 사전 원문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저만의 이탈리아 어 사전을 만들었다가, 이번에는 라틴어 문법이 어려워서 라틴어 문법을 종합해보자는 생각에 책을 냈어요. 또 작업하다가 중세 유럽법이 너무 어려우니까 『유럽법의 기원』도 쓰고요. 이런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교회 법률용어사전을 쓰게 됐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초보자를 위한 유럽 수준의 라틴어 책과, 라틴어 한국어 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초급 라틴어’를 강의하면서 가장 큰 성과라면 일을 공유해주는 많은 사람이 생겼어요. 현지 법조인들, 라틴어 사전을 협조해주는 친구 등이요. 처음 한국에 와서 힘들게 작업할 때보다는 시간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 흐름출판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 교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책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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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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