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수 교수 “‘붉은악마’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색채의 연상』 색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
지금도 주변에 한 번 물어보세요. 2002년 ‘붉은악마’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대부분은 정열적인,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해요. 열에 아홉은 그렇게 느낄 텐데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빨강을 보고 과히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2017.07.19)
우리는 같은 색깔을 보고 있는가?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언어에서 그 나라의 영혼을 거의 모두 추론해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 따르면 각 나라의 언어가 같은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따지는 것은 그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엿볼 수 있는 배율 좋은 현미경과 같다. 언어가 동일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각 나라의 문화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색채는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가령 색채는 어떨까. 경기대 독문과 조영수 명예교수는 일찍이 여기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1970년대에 미국인들과 자신이 같은 색을 보고 얼마나 다른 연상을 해내는가를 발견하고 색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색채 연구는 그야말로 ‘색달랐다.’ 조영수 교수는 『색채의 연상』에서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 색채 언어의 어원을 찾고, 각 나라에서 같은 색채를 어떻게 다른 이미지로 연상하는지 살핀다. 이것은 다른 세상에 다가가는 특별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감각적인, 한국어
처음 색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회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차이 때문이었는데요.
그 전에는 몰랐어요. 미국 대학원 재학 시절인데요. 40명 정도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브레히트 시에 있는 “회색”의 의미를 질문하셨어요.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로 충격이었어요. 그들과 내가 그 정도로 같은 색을 다르게 보는지 몰랐어요.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죠. 그때처럼 적나라하게 느낀 적이 드물었어요.
동료 대학원생들은 회색을 ‘세련된’, ‘우울한’, ‘도회적인’ 등으로 표현했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면서 우리 세대가 회색에 대해 일률적으로 느꼈던 ‘애매한’, ‘회색분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이라는 답은 한 명도 없었다.(6쪽)
본격적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셨을 때는 언제였나요?
2001년에 연구원으로 1년 간 미국에서 머물면서 색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그때 자료를 많이 수집했어요.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를 비교해보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고요. 마침 안식년을 가니까 연구를 해보겠다고 생각했지요.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색채에 관한 논문을 두 편 썼습니다. 색채가 필요한 여러분야 옷감의 염색재료, 유화물감, 천연염료, 화학염료, 페인트 색깔 등 참으로 연구하고 알아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다 연구할 수가 없었음으로 범위를 축소하였습니다.
내용을 크게 두 부분, 색에 대한 나라별 인식차이와 한국어의 색채언어 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요. 쓰시면서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어떤 건가요?
우리가 여태껏 한국어 색채언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연두’, ‘분홍’이 다 순수한 한국어인줄 아는데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저도 놀랐어요. 책을 쓰면서 느낀 게 우리말, 한국어에서 중국어를 빼면 절대 안 되는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한문을 전혀 모르는 세대가 자라면 우리 문화의 상당한 부분이 사라지지 않을 가하는 우려도 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단어의 기원을 많이 살펴보셨어요.
그것은 전공이 독어학이기 때문인데요. 한국어는 독어와 완전히 다른 ‘우랄알타이어’고, 독어와 영어는 같은 어족이잖아요. 게르만어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게르만어거든요. 2차 자음 변화 등으로 갈라지죠. 예를 들어 영어의 ‘eat’이 독일어에서는 ‘essen’이고요. 공통적인 부분이 많아서 이 두 언어가 상당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숙어나 여러 부분에서 두 언어가 완전히 다른 현상을 나타내더라고요. 어족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 완전히 다른 언어로써 각자의 특색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죠. 공통적인 두 언어의 특징으로 관용어와 숙어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통용되는 문화적 특성이 혹시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한국어의 색채 언어를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도 있었겠죠?
순수한 우리말로된 색채 언어는 다섯 개밖에 안 돼요. ‘빨강’, ‘노랑’, ‘하양’, ‘파랑’, ‘검정’. 나머지는 다 중국어예요. 이 단어 특히 ‘빨강’에서 파생된 변화형은 불그스럼하다, 불그죽죽하다 등 거의 80개의 달합니다. 그러나 한국전통표준색으로 꼽은 색 90개는 전부 한자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색채의 의미가 결국 언어와 문화, 개인의 경험과 사고, 역사적 상황의 총체라고 말씀하셨죠. 이 내용을 이해하고 보면 흥미롭게 읽히는 면이 많아요.
‘검정’이라는 말과 ‘그믐’, ‘그늘’과 다 연결되거든요. 또 ‘벽색’, ‘옥색’, ‘곤색’, ‘청색’ 등의 단어가 다 ‘파랑’의 범주에 해당하는 말들이에요. 단어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해할 부분이 훨씬 많죠. 한편 특별히 발견한 것은 우리말에 상당히 개념어가 적다는 점이에요. ‘무엇에 대해 논하라’고 할 때 ‘논하라’의 부분에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대체하기가 힘들죠. 반면 감각적인 언어나 부사 등이 굉장히 발달해있는 언어고요.
깊이 들어가면 언어의 특성과 그 사회의 문화 혹은 사고 특성과의 연관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연구를 해야겠죠. 이 책은 전문학술서적이 아니니까요. 원래는 이 책에도 일일이 각주를 넣었었어요. 그러다 다 뺐어요. 긴 내용을 많이 줄인 부분도 있고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죠.
once in a blue moon?
‘빨강’에 대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정열적인”,”아름다운 기쁨” 등의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각자 다른 대답을 한다고요.
지금도 주변에 한 번 물어보세요. 2002년 ‘붉은악마’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대부분은 정열적인,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해요. 열에 아홉은 그렇게 느낄 텐데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빨강을 보고 과히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위험이나 분노 등 다른 느낌을 연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빨강이 또한 흥미로운 것은 책에 소개된 프랑스의 한 연구에요. 종업원에게 빨간색 티를 입혔더니 팁을 30%나 더 받았다고요.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에게도 빨간 옷을 입히면 결과가 더 좋다는 내용도 있어요. 최근에는 부산에 있는 한 매장에서 개업식에 빨간색 속옷을 사면 좋은 일이 있다면서 이벤트를 했는데 큰 매출을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색채와 관련해서 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아요.
‘파랑’도 재미있어요. 한국은 신조어를 만들 때 ‘블루’를 많이 사용한다고, 의문이라고도 하셨잖아요.
영어에서 ‘I feel blue’라고 하면 우울하다는 말이잖아요. 또 음담패설을 ‘blue joke’라고 표현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블루’를 좋아해서 뭐든지 그 이름을 붙여요.(웃음) 한 번은 이태원 근처 식당의 간판에 ‘once in a blue moon’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봤어요. ‘blue moon’은 굉장히 드문 때를 말하거든요. 식당에 그 이름을 붙였기에 가끔 오라는 의미인가(웃음) 생각하며 웃었죠. 아마 ‘청춘’처럼 파랑을 좋은 의미로 많이 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민족에 대해 ‘백의민족’이라는 수식이 실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하셨거든요. ‘흰색’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았습니다.
흰 색에 대한 여러 가지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색>에서는 조선 건국 초기에 세종대왕께서 “고려 사람이 흰 옷 입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불가하다” 는 말로 흰 옷 사용을 금지 했다는 말이 전래되고 있지만,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서 우리 민족이 흰색을 많이 입어서 풍속이 되었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이 때 흰색은 해를 상징하는 하얀색과 염색하지 않은 무명, 명주등의 누른 색이 약간 있는 소색(素色)을- 합쳐서 사용한 것으로 압니다. 상복을 소복이라고 하는데 이 소색을 말합니다.
각 색을 다루고 설문조사 결과를 붙여두셨잖아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독일어 사용자에 비해 한국어 사용자들이 색채에 좀 더 편향적인 결과를 보이더라고요.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면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나 ‘기타’ 항목에 따로 내용을 적지 않아요. 귀찮아서일까요.(웃음) 미국 사람들은 기타에 여러 내용을 적는데 한국 사람들은 거의 적지 않더라고요. 의견도 많이 쏠리는 편이고요. 바깥에서 보기에는 의아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요.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색채에 대해 이제는 마케팅 영역에서도 많이 관심 두고 있어요. 책에서 국내 출판사들이 책 표지에 어떤 색을 사용하는가에 관해서도 살짝 엿보았거든요.
‘노랑’은 주로 ‘위로’, ‘따뜻함’에 관한 책에 사용하고요. ‘빨강’을 표지에 사용하면 더 많이 팔리는 경향이 있어요. 색채를 연구하는 분들 중에는 기업에 색채 컨설팅을 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가령 음료 신제품을 출시할 때 빨간색이 나을 것인가 노란색이 나을 것인가를 연구하는 거죠. 다양한 분야에서 색채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음악치료와 함께 색채치료(미술치료)를 하기도 하잖아요. 이미지 컨설팅에서 당신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도 다루고요. 이렇듯 점점 색채에 관한 관심이 확대되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면 해외에 수출할 때 현지에서 선호하는 색채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방식도 가능할 거예요. 빨간색도 똑같은 빨간색이 아니니까요.
이 책을 만날 독자가 꼭 하나 가져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을까요?
이 분야에 더 관심을 갖고 여기서 다룬 책을 더 읽어주면 좋겠어요.(웃음) 질문을 많이 던진 책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더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죠. 우리가 어떤 색채에서 떠올리는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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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나라마다 특정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을까? 저자 조영수 교수는 1970년대 초 미국 대학원에 재학하던 당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에 쓰인 동사가(Valenz)를 분석하는 수업에서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다. 담당 교수가 시에서 표현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