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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트위터 사용자가 더 많을까?
『일본인 심리상자』를 읽고 가깝지만 먼 이웃, 일본인 심리
비슷한 듯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른 면이 있는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과 판단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인의 심리와 문화에 대해 다룬 책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보았다.
얼마 전 SNS에서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한 학생이 일본인 교수에게 “일본에서 점심에 '식사 맛있게 드세요?'는 일본어로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인가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일본인은 타인의 식사에 관여하지 않습니다”였다.
설명인즉 일본인은 인사말을 할 때, ‘날씨’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한국에서 흔히 “점심 드셨나요?”라고 말하거나,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니스벳과 같은 학자는 인류학이나 문화심리학적으로 서양인과 동양인 심리의 특성을 『생각의 지도』에서 밝힌 바 있다. 책에서는 서양인과 비교할 때 한국인과 일본인은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또다시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면이 많다. 일본 여행을 하는 한국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음식도 문화도 친숙해서 마음의 장벽이 많이 낮아졌지만,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으로 일본인과 관계를 가질 때에는 이런 미묘한 차이점으로 인해 서로 오해와 긴장을 할 일이 왕왕 생길 듯하다. 실제 일본 유학을 한 학생들 중 동료 학생들과 관계를 풀어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비슷한 듯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른 면이 있는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과 판단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인의 심리와 문화에 대해 다룬 책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보았다.
유영수 SBS 기자가 쓴 『일본인 심리상자』. 저자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나와 일본 특파원을 수년간 지냈고, 게이오 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로서 일본에 대해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한국과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소개한다.
먼저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는 약간 저물어가는 SNS인 트위터 이용자가 페이스북 이용자보다 많다. 세계적으로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페이스북은 부동의 1위의 SNS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페이스북은 2,500만 명인데 반해 트위터 이용자는 3.500만 명으로 더 많다. 트위터가 페이스북에 비해 익명성의 보장이 용이하고, 쉽게 리트윗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눌러서 친구가 내 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단 것에 매번 보답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트위터를 선호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에 예민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흔히 우리 나라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미담 뉴스’가 미담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면 선배나 윗사람, 혹은 밥을 먹자고 한 사람이 계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또,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오늘은 내가 한 턱 낸다!”라고 말하면 동석자들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즐긴다. 그렇지만 일본인은 이런 한턱내기를 나쁜 짓으로까지 본다고 한다. 평등한 관계에서 한턱을 낸 것은 일종의 공갈이나 협박일 수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이다.
그래서 대부분 정확하게 나눠서 계산을 하는 와리칸을 선호하는데, 그 안에는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온가에시(恩返し)’ 가치관이 반영되어있다. 온가에시란 마음의 부채를 지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즉 뭔가를 신세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식에 와준 하객에게는 꼭 답례품을 주고, 여행을 다녀오면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사서 돌리는 것이고, 이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절대, 반드시, 꼭’ 해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 한국인도 매 번 얻어먹기만 하는 것을 기분 좋게 여기지는 않는다. 흔히 거지근성이라고 여기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형편이 좋은 친구가 부담을 조금 더 하거나, 좋은 밥을 사면 자신은 커피라도 한 잔 사는 것으로 적당히 형편에 맞게 균형감각을 갖는 식으로 한국인은 관계의 부채의식을 정리해가고 있다. 그에 반해 일본인은 훨씬 정확하고 사안별로 매번 정리를 해나가는 방법이라는 것이 다른 면이다.
남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도 그런 맥락에서 매우 예민하다. 사회공포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있다. 이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 타인 앞에서 대화를 하는 것, 발표를 하는 것과 같은 다중 앞에 서는 행위에 매우 강한 긴장과 불안을 가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아서, 내가 못난 것을 알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발표를 망쳐버릴 까봐 무서워서’ 불안해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회공포증의 이유다. 그런데, 일본에서 문화적 정신질환으로 세상에 알린 대인공포증(對人恐怖症이란 한문을 일본어로 읽은 Taijin Kyohuso)은 환자들이 느끼는 공포의 방향이 사뭇 다르다. 일본인의 대인공포는 자신의 외모, 냄새, 표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줘서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증상 자체는 일반적 사회공포증과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떨리고, 긴장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인데, 그 이유가 정반대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인관계에 예민하고, 쉽게 긴장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이유는 아니다. 세상과 자신을 인식하고 위치짓는 것, 그리고 문제가 되는 지점이 매우 다른 면이었다.
이런 차이점은 기자로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하루 아침에 집과 모든 것을 잃은 피해 주민들을 인터뷰하러 갔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피해 주민들이 담담하고 또 어떤 이는 웃고 있었다. 한국에서 볼 때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인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울고 있거나,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예측할 수 있는 반응이지만, 일본인은 ‘괴로워도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분노를 표현을 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일본인도 분노를 표현하지만 직접적 말보다 우회적 표정이나 말투로 전달한다. 그러니, 한국인이 일본인을 친구로 사귈 때 그가 화가 났는지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더욱이 일본인은 한국인이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낯설고 긴장을 유발하는 일이다. 일본에서 분노의 직접 표출은 집단에서 퇴출되는 가장 빠른 길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일본인은 한국인이 너무 직접적으로 본심을 표현하는 걸 보고 품격이 없다고 비난을 한다고 전한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일본인의 맞장구 치는 소통법, 유모차의 지하철 승차가 민폐가 되는 이유, 아무로 나미에와 오키나와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동안 비슷하다고 여겼던 일본인의 심리의 다른 면을 보고나니 어떤 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정상’, 혹은 ‘상식’이라고 여기면서 하던 행동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한 쪽으로 과도하거나, 반대로 결핍되어있는 면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같은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미국에서 하면 테러와 음모가 시작되고, 일본에서는 교훈을 주려고 하고, 한국에서는 연애를 한다는 우스개가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소 과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무심하게 정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