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택용의 책과 마주치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
리영희 선생을 처음 직접 본 것은 십 년이 지난 뒤였다
수상 소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들고 나온 책의 표지부터 내지까지 빽빽이 붙인 메모지들만 눈에 들어왔다.
군 복무 중 부대 안 도서관에서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을 발견하고 읽은 적이 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라는 구절이 담긴 머리말부터 답답한 군 생활의 숨통을 틔워 줬다. ‘현대의 충효사상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불효자의 변>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강조하던 충과 효의 의미와 이를 어떻게 유신 체제 아래 민중의 도덕과 윤리 의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군에서 지겹도록 ‘충효예 교육’을 강조하고 있던 때였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글이었다.
리영희 선생을 처음 직접 본 것은 십 년이 지난 뒤였다. 한겨레 통일문화상을 받는 자리였다. 이미 지팡이가 없으면 걸음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도 노학자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까지 책을 들고 나왔다. 수상 소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들고 나온 책의 표지부터 내지까지 빽빽이 붙인 메모지들만 눈에 들어왔다. 한때에 붙인 종이들이 아니었다. 수십 년 된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여러 시기에 걸쳐 붙인 종이들이었다. 우상에 갇히지 않고 진실만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학자의 한 면을 엿본 기억이 다시 십 년이 지나 새삼 떠오른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배운 뒤 불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관뒀다. 사진이 가장 쉽겠거니 지레짐작하고 덤볐다가 여태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개인 사진집으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와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찍은 《외박》이 있다.
<리영희> 저19,800원(10% + 5%)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펜의 힘으로 '반세기의 신화'를 일군 우리 시대의 참지식인 리영희선생의 저작을 모은 책이다. 19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1990년대 이후 리영희는 "내가 할 역할은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