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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부모가 건강하지 않아도 자식은 행복해질 수 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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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다툼일 뿐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고집을 피우면 안 됩니다. 상황을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 따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미움받을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행복해질 용기』 등에서 삶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살펴온 기시미 이치로가 색다른 질문,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를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나이가 들어 점점 약해지고 병이 들기도 하는 부모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가능한지를 따지는 것이 꽤나 도발적이라고 생각한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기시미 이치로의 글은 시종 침착하고 편안했다. 저자는 실제 20대 대학원 시절에 어머니를, 50대에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병든 부모를 간호하는 일의 어려움과 관계를 회복하는 놀라움,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치매를 앓았던 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하고, 함께 간호하는 아내로부터 건강한 태도에 대한 통찰을 발견하기도 했던 것.


그는 “과거를 버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건강하고 든든했던 부모였든 대화도 없고 싸움만 잦았던 부모였든 “지금은 그리로 눈을 돌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이 오늘의 행복을 찾고 살아갈 용기를 갖는 하나의 길잡이별이 될 것이다.

 

벚꽃 피는 계절에 벚꽃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벚꽃이 보고 싶어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꽃놀이를 부모님을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부모님도 같이 가서 즐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혹여 부모님이 나중에 꽃놀이 간 사실을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그 일로 낙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꽃놀이를 함께 간 것을 기억하든 잊어버리든 상관없이, 그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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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수명은 길어지는 반면 가족이라는 틀은 헐거워지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일본과 한국 사회가 비슷할 텐데요. 이런 현실에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꽤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20대에 어머니를, 50대에 아버지를 간병한 적이 있습니다. 힘이 들었지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조언할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실제 저자의 체험을 많이 담았는데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 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강조했던 ‘지금, 여기’라는 부분을 이번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이 관계 개선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과거를 버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앞으로의 관계를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를 극복하는 것인데요. 아버지께서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요. 치매에 걸린 분들은 늘 의식이 몽롱한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맑아진 것처럼 의식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과거가 있다고 해도 잊어버리는 아버지인데 아버지 스스로가 과거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던 것이지요. 아버지는 가능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결국 부모나 자식이나 모두가 지금까지의 관계는 지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부모 자식 간의 간호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이것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와 닿는 이야기지만 실제 생활 안에서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많잖아요. 매 순간 감정을 통제하기도 쉽지가 않고요. 실천을 방해하는, 가장 경계해야 할 생각이 있다면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알고 있다면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지, 하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도 항상 침착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낀 적도 있어요. 그러나 바꾸려는 생각을 가져야만 현실도 바꿀 수 있습니다.

 

저자가 부모님을 간호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어려움을 느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구체적인 장면을 들려주세요.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거의 하루 종일 주무셨어요. 아침 드시고 주무셨다가 점심 전에 일어나셨죠. 어느 날은 일어나셨는데 오전 11시 50분이었어요. 점심시간까지는 10분이 남았고, 저는 곁에서 원고 작업 중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얘기를 드리자 그 순간 아버지가 굉장히 분노하셨습니다. 그런 작은 것에 신경이나 쓰는 너는 나쁜 놈이다, 하시면서 말이에요. 저는 그때 남은 10분을 아버지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주무실 때 다시 일을 하면 되는 건데 그 10분 때문에 아버지와 안 좋아지고 저도 마음이 안 좋았던 거니까요. 서로 분노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게 상황을 바꾸는 좋은 장치가 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다툼일 뿐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고집을 피우면 안 됩니다. 상황을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 따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라고 한 부분이요. 내가 한 만큼 상대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거였어요.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간호나 육아가 굉장히 괴로운 일이지요. 저희 아이가 어렸을 때 7년 동안 유치원 등하원을 맡아 한 적이 있습니다. 후에 아이에게 아빠가 데려다주던 기억이 나느냐 물었어요. 전혀 기억을 못 하더군요.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앉힌 채 자전거가 넘어져서 아이가 다친 적이 있는데 그것만 기억하더라고요.(웃음) 나이 든 부모와의 관계는 더 힘들죠. 방금 한 것도 잊어버리니까요. 어느 날 아버지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던 때였어요. 다 드신 후 식기를 가져가려고 했더니 그때 다시 “고맙다”고 하셨죠.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밥 아직 안 주냐”고 하셨어요.(웃음)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런 말을 안 하시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공헌감을 가지면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즉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걸세.(중략) 이미 자네도 눈치 채 지 않았나? 바로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라네.(『미움받을 용기 1』, 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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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는 노력


부모와 자식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비교적 수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한쪽이 노력한다고 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요. 이런 불균형 속에서 변화를 위한 실천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버지가 어느 날 저에게 카운슬링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 카운슬링을 했죠. 카운슬링을 할 때 저희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었어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수평적 관계였습니다. 그 관계가 정말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걸 서로가 경험했습니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지요. 라틴어로는 ‘가면’이라는 의미로 영어 ‘person’ 즉, 사람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라는 가면을 벗는, 자식이 자식이라는 가면을 벗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관계는 달라질 겁니다. 저도 올해 서른이 되는 아들이 있는데요.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처럼 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민이나 약점을 보여주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아직 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는 없습니다.(웃음)

 

카운슬링이 아주 좋은 계기가 됐네요. 반드시 카운슬링이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서로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줄 계기가 필요하겠군요.


카운슬링으로 관계가 달라지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하는 말에 악의가 있다고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카레를 만들어드렸는데요. 세 시간이 걸렸어요. 밀가루를 볶는 일부터 시작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아버지가 카레를 드시자마자 “다시는 만들지 마라”라는 거예요. 맛이 없어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이후 관계가 변하고 보니 그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씀은 “넌 학생이니까 공부에 집중해라, 나 때문에 이렇게 손이 가는 일은 만들지 말아라”라는 의미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관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쪽이라도 용기를 가진다면 말입니다. 제 경우 아버지께서 훨씬 더 용기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간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텐데 그때 간호하는 일을 부모와의 관계를 변화시킬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10년 전 심근경색으로 3년 투병을 했습니다. 병이 낫고 나니 전처럼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마침 아버지가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모처럼 사회에 복귀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아픈 직후였기 때문에 일 자체는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처럼 어제는 도쿄, 오늘은 서울에 있는 생활을 했다면 모르지만 말이에요. 일을 적게 했기 때문에 간병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만년의 아버지를 간호할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도 제가 25살에 돌아가셨는데요.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라 매일 간호할 수 있었습니다. 반 년 휴학을 하고 간호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행복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싫어하거나 피하지 말고 즐거워하는 게 좋겠죠.

 

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요.


육아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예측이 되지만 간병은 아닙니다. 굉장히 오래 사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간병이 앞으로 몇 년이나 계속될까 생각하면 간병 자체가 괴로운 일이 되어버리겠지요. 지금 이 순간 부모와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을지에 집중하면 훨씬 좋을 겁니다. 간호 자체는 굉장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긴 한데요. 앞으로를 생각하면 더 힘들어요. 오늘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쪽이 낫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은 한 번밖에 죽지 않아!’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제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 침실 문을 열어보면 아버지가 평온하게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고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감정적이 되어 화를 내셔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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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으로 남을 용기


여러 번 생산성을 기준 삼는 것을 경계했어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해 생산성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에겐 일할 수 있는 젊음이 있기 때문에 일에 가치관을 둘 수 있지요. 그러나 젊은 사람도 병에 걸리면 일을 못합니다. 저도 10년 전 심근경색 때문에 일을 다 잃었는데요. 전혀 미동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가족한테 해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렇게 쓰러진 사람이 가족이나 친한 친구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건강이 안 좋다 하더라도 그가 살아있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생각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도 괜찮았던 거지요. 살아있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 하더라도 나의 가치 자체는 저하되지 않는 것이지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하면 됩니다. 정신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60명 정도의 환자가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요리를 만드는 시간이라 식재료를 사러 가자고 했는데 5명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왔더니 요리를 돕겠다는 분이 15명이 되었습니다. 요리가 다 돼서 먹을 때가 되자 대부분의 환자들이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장 보러 가거나 요리 만들 때 도움주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암묵적으로 이해를 하는 거죠.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일할 수 없는 사람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생산성을 보고 사람의 가치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자신의 생산성을 따지느라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죠. 그런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 또는 세상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는데요.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 나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나 자신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입시에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부모, 사회의 기대에 못 미친 사람은 도리어 나빠지고자 생각을 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문제 행위를 일으키기도 하죠. 소극적인 사람은 마음의 병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특별히 좋아지지도, 특별히 나빠지지도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보통으로 남을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시작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경쟁이 아니어도,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노력 자체는 중요하지요. 지금의 문제는 경쟁을 시키는 거예요.

 

경쟁이 문제인 이유는 뭔가요?


이기려고만 생각하죠.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사회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생산성을 생각해서 나는 가치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생산성에 가치를 두지 말고, 경쟁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죠. 나이 든 부모는 이제 경쟁하지 않죠. 생산성에 있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방금 있었던 일도 잊어버리고요.(웃음) 젊은 자식은 그런 부모가 불쌍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러나 어찌보면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 좋을 겁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 누군가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하신 앞의 말씀과 같군요.

 

공헌감을 가지면 자기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죠. 스스로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용기를 가질 수 있고요. 그것은 대인관계를 만드는 용기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간호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간호를 할 때 지금 간호 하지 않고 강연을 하면 돈을 많이 벌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한 번은 아버지께 물어봤어요. 매일 간호를 하지만 아버지는 주무시기만 하니까요. 제가 오는 의미가 별로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아니, 네가 와주니까 안심하고 잘 수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저의 가치는 아버지 곁에 있는 것 자체에 있었던 것이죠. 그걸 인정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한 거예요. 밖에서 일하고 돈 버는 것만이 인생의 가치는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바꿀 순 없지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달린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은 다르다’는 말이 무척 의미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진지해지는 게 중요하죠. 엉터리로 사는 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관계에도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대단한 거죠. 간호를 받는 부모가 괴로워하는 자식을 볼 때 절대 좋을 리는 없습니다. 나 때문에 자식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불행한 거죠. 자식도 부모를 헌신적으로 간호했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에요. 자식이 행복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공헌하고 좋은 간호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식은 부모를 간호하면서도 행복해져도 됩니다. 간호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들러가 말하는 ‘원인론’이거든요. 무슨 일이 있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자식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행복해져도 되는 것이죠. 자식이 행복하면 행복이 부모에게 전염됩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말이겠죠.


어느 날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언제 장가갈 생각이냐고요.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웃음) 아버지는 제 아내를 인지하지 못하신 거죠. 나중에 아버지가 요양 시설에 들어가게 되셔서 아내와 함께 시설에 다녔는데요. 아버지가 아내에게 “당신은 오늘 당번이십니까”하셨어요. 그곳 직원인 줄 아셨던 거죠. 그런데 아내는 그 말에 서운해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직원으로 오인 받아 좋다고 할 뿐이었습니다.(웃음) 매 순간 화를 내고 있으면 간호는 못해요.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부모가 언제까지 살 거란 보장은 없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간호를 할 때 후회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고요.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한테 완벽한 간호를 하지 못해도 자신은 괴로워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 육아, 일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오셨는데요. 다음 책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준비하고 계신 책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살아갈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죽음에 초점을 맞춰 쓰고 있습니다. 불교에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죠. 이 네 가지 괴로움 중 첫째는 태어나는 것(生) 혹은 사는 것입니다. 살아가고 있을 때 고생도 있지만 좋은 일도 있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는 대인관계가 살아갈 즐거움이 될 수 있어요. 고통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死)을 가장 큰 고통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를 바꾸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기시미 이치로 저/박진희 역 | 인플루엔셜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이번에는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실제 저자가 20대에 어머니를 뇌경색으로 잃고, 50대부터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깊이와 참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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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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