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
엄마에겐 내 인생보다 결혼이 더 중요할까?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
엄마의 탄식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고등학생 때는 하굣길에 내가 남학생이랑 같이 걸어오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자 갑자기 남자는 언제 만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성화를 해댔으니 말이다.
엄마는 예전에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면 “엄마가 챙겨줄 때는 건강했는데” 하면서 마치 내 생활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열을 올리곤 했다. 모든 일을 혼자 사는 탓으로 돌리는 엄마의 말은 내게 회사 이상으로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나는 위 부근을 지그시 누르면서 가냘픈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니야. 일이 바빠서가 아니라 백화점에 들렀다 오느라 늦은거야.”
“어머 그래? 쇼핑이라도 했니?”
엄마는 기쁜 기색으로 질문을 더해갔다.
“음, 그러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현명할지 한참 망설였지만 왠지 오늘은 무난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옷이라고 대답하면 어떤 옷을 샀는지 물을 거고, 그러면 또 얘기가 길어진다. 책이라고 대답했다가는 책만 읽는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둥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망설이다 결국 사키에게 줄 출산 축하 선물을 사러 갔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꾸며낸 티가 나는 커다란 한숨 소리와 탄식이 들려왔다.
“사키는 이제 곧 엄마가 되는데 너는 왜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니? 내가 기껏 정성을 들여 키워놨더니 엄마한테 반항이나 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오늘 통화도 꽤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엄마의 탄식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고등학생 때는 하굣길에 내가 남학생이랑 같이 걸어오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자 갑자기 남자는 언제 만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성화를 해댔으니 말이다. 엄마는 언제나 남들의 말과 상식을 좋을 대로 교묘히 바꿔가며 자신의 의견을 내게 강요했다.
‘아! 또다시 여느 때처럼 의미 없는 대화가 시작됐네.’
이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 들고 마개를 땄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를 거느라 옷을 갈아입기는커녕 갈증이 나는데도 목조차 축이지 못했던 탓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탄산수로 기운을 약간 되찾은 후, 나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최대한 공손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 나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야. 단지 지금은 꼭 해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어서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고. 물론 멋진 사람이 있으면 사귀고 싶지만 지금은 연애가 최우선이 아니거든.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나대로 찬찬히 잘 해나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완벽해! 이만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엄마도 내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귓 속으로 파고들었다.
“너 지금 무슨 느긋한 소릴 하는 거야? 서른이 한참 넘도록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 창피하지도 않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제대로 어른이 되고 온전히 한 사람 몫을 하는 거야. 그런데 일, 일, 주제넘은 소리에 잘난 척이나 하고 대체 뭐하는 거니! 엄마는 네 장래가 걱정돼 죽겠는데 말이야.”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답하려고 최대한 침착하고 공손하게 설명했는데 이렇게 모질게 반응하다니. 엄마는 언제나 내 상황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여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고 되풀이한다. 마치 결혼과 출산만이 미혼인 나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애초에 엄마가 하는 걱정은 내 인생에 대한 걱정이 아니지 않을까? 그보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렇게 효심이 지극한 딸과 귀여운 손자가 있어 행복하다’고 자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조바심이 더 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엄마가 상상하는 행복을 실현해드릴 수 없어 죄송한 마음과 그렇다고는 해도 내 인생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길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위 부근이 한층 꽉 조여왔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공저/김윤경 역 | 북라이프
지금껏 딸이라는 호칭 앞에는 ‘친구 같은’, ‘착한’과 같은 단어들이 당연한 듯 따라붙었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수많은 착한 딸, 아니 가족에게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싶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다.
임상심리사이며 하라주쿠 상담소 소장인 노부타 사요코와 프리랜서 작가인 아사쿠라 마유미가 만나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를 집필했다. 가족, 특히 엄마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공저/<김윤경> 역11,700원(10% + 5%)
“여자의 진정한 자유는 엄마와의 적정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된다!” 완벽히 이기적으로 살 것, 착한 딸에게 주는 일곱 가지 메시지 엄마는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페미니즘이었다. 여성들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