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제 책은 이뻐요
『고슴도치의 소원』편집 후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슴도치에게 공감하는 걸 보고는 정작 내가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이제 이 소심하고, 망설임으로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고슴도치를 모두의 품으로 떠나보낼 때가 됐다. 모두의 품으로 보낸 도치를 각자의 품 안에서 따뜻하게 꼭 안아주시길 바라며.
한동안 월요병에서 벗어났다. 『고슴도치의 소원』 원고에 더할 일러스트 미팅을 마친 후부터다. 월요일마다 고슴도치 다섯 마리가 회사 메일로 도착했다. 월요일마다 도착하는 고슴도치를 얼른 보고 싶어서 어느새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희미한 스케치 윤곽만으로도 귀염을 뽐내던 도치는 1주, 2주가 지나면서 점점 생기가 돌더니 나중엔 자기보다 더 귀여운 거북이, 달팽이 친구들도 달고 나타났다.
침대 모서리에 기대 멍 때리는 일러스트를 봤을 땐 탄성이 나왔다. “꺆! 귀여워!” 하는 환호가 아니라 “아아아……” 하는 낮은 탄성. 모두가 비슷한 반응으로, 귀엽긴 한데 어딘가 짠하고 안쓰럽고 내 모습 같아 그런 오묘한 탄성을 내뱉곤 했다. 그런 ‘도치앓이’는 번지듯 전염되어서 어느새 우리 모두가 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고슴도치의 팬이 되어 있었다.
아마 이 그림에 대한 반응이 이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아닐까, 그런 짐작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이 소설은 긴장감이 넘쳐서 빨리 다음 내용을 알고 싶은 그런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시간 조용히,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페이지에선 오래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그런 소설이다. 덮고 나면 “아아아……” 하고 앓을 소설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좋은 부분이 달랐다. 각자 귀여워하는 동물들도 달랐다. 편집팀, 마케팅팀에서 뽑는 명문장이 달랐다. 누구는 이 부분에 꽂히고, 누구는 저 부분에 꽂혔다. 독자들도 누군가는 ‘귀여운 고슴도치!’ 하면서 동화책 읽듯 쉽게 넘길 테고, 누군가는 먹먹한 마음에 천천히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고슴도치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이거 무슨 책이야?” 하면 간단히, 또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다.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는데 얘기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자, 얘는 원래 ‘혼자’를 좋아하는 애야. 그래서 맨날 혼자 있었어. 근데 어느 날 문득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진 거야, 그래서 초대장을 쓰기 시작하지. 근데 그때부터 온갖 걱정이 시작돼. 이 책은 그냥 고슴도치의 망상이야, 고슴도치의 소원 말고 고슴도치의 망상이라고 하면 딱인데 그럼 안 팔려서 안 되겠지, 여하튼 그런데 얘는 예민, 소심의 끝판왕이야, 곰이 오면 자기 꿀을 다 먹어치워 버릴 것 같고, 고래나 메기가 오면 온 방에 물을 몰고 올 것 같아서 걱정되고, 코끼리는 파티를 좋아하는 애라 춤을 추고 ‘난리부르스’를 떨 거라고 걱정하지. 여기서 얜 걱정과 망설임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해. 아마 거의 침대 밑에 누워 있을걸? 가장 활동적인 게 ‘앉아’서 『방문의 장단점』이라는 책을 읽는 정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상상과 걱정으로만 온갖 걸 다 겪는 애한테 우연히 누가 찾아오지. 그 뒤엔 스포니까 직접 읽어야 돼. 그런 얘기야.”
고슴도치 딜레마. 가까이하면 찔려죽고, 멀리하면 얼어죽는 고슴도치의 특성에 빗대 쇼펜하우어가 적절한 거리에 대하여 만든 용어다. 난 항상 혼자이고 싶으면서, 동시에 함께이고 싶었다. 혼자이든 함께이든 외로웠고, 그런 외로움이 골치 아팠다. 처음엔 나를 꼭 닮은 고슴도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골치 아픈 애가 또 있구나, 이것은 운명적 만남인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슴도치에게 공감하는 걸 보고는 정작 내가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이제 이 소심하고, 망설임으로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고슴도치를 모두의 품으로 떠나보낼 때가 됐다. 모두의 품으로 보낸 도치를 각자의 품 안에서 따뜻하게 꼭 안아주시길 바라며.
고슴도치가 깼을 땐 아직 어둑어둑했다.
고슴도치는 침대 밑에서 자기 방을 바라보았다.
내 방. 그는 생각했다. 나만의 방이야.
가끔 그의 방은 온 세상만큼 크게 느껴졌다.
어쩌면 온 세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고슴도치는 문을 바라보았다. 문은 세상의 가장자리였다. 문으로 나가면 우주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주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단 편집자
<톤 텔레헨> 저/<유동익> 역/<김소라> 그림15,300원(10% + 5%)
“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모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안 와도 괜찮아." 외로움, 예민함, 소심함, 걱정 가득한 당신을 위한 이야기 네덜란드 국민 작가 톤 텔레헨이 전하는 어른을 위한 특별한 동화 소설! 가까이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얼어 죽는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빗대어 관계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