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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다윈에게 한 권을 선물한다면,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출간 기념 대담 리처드 도킨스가 들려주는 ‘나의 과학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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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무지개가 무엇인지, 무지개의 비밀을 밝혔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를 이해함으로써 우주와 세상, 그것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더 증진시킨다. 과학적 이해로 원리를 밝혀서 그것의 아름다움이 훼손되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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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로 보아, 내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만큼은 제법 있는 듯하다. 내가 설득하려는 주제가 다윈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말이다. 다만 다윈이 밝힌 진실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일이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 내가 오늘날 다윈의 분야에서 일하는 일꾼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는 내 일도 하찮지 않다.(『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376쪽)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이자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얼마 전 출간된 그의 자서전에는 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 시대의 과학자가 되는 놀라운 과정이 재치 있고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베스트셀러의 탄생과 연구 비화뿐 아니라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이 인연을 맺었던 여러 인사들과의 일화까지 세심하게 전하며 독자가 자서전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모두 선사했다.


지난 1월 25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도킨스가 고려대학교 KU시네마트랩에서 서울대학교 장대익 교수와 대담을 진행했다. 진화학자이자 『다윈의 서재』, 『다윈의 식탁』 등을 쓴 장대익 교수가 대담을 시작하며 “저도 너무 흥분되고 기대가 된다”고 했을 만큼 강연장은 설렘과 흥분으로 들썩였다. 리처드 도킨스는 먼저 “한국에 오게 되어 반갑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두 번의 강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잘 들어주었다. 책을 사보시길 바란다.(웃음)”며 편안한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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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하여


대담은 먼저 과학의 의미와 역할 탐색으로 시작되었다. 흔히 과학기술이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 즉,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원자력 등을 야기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이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과학이 발견했다. 답 또한 과학이 가지고 있다”고 항변했다. “진리를 향한 탐구를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과학과 가치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과학은 물질이나 생명, 우주와 인간에 대해 그 사실(fact)을 말해줄 수는 있지만 가치, 의미에 대해 침묵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어떨까. 리처드 도킨스는 “삶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오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과학이 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이 답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과학자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며 “과학적 원칙을 적용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한다면 결국 가치 판단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했다. 

 

“우주를 이해하고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태양 아래에서 잠시면 끝날 삶을 사는 경건한 생활방식이 아닌가?”(『무지개를 풀며』, 26쪽)

 

이와 관련한 리처드 도킨스의 대답은 그의 저서 『무지개를 풀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담에서 역시 리처드 도킨스는 『무지개를 풀며』를 언급하며 과학이 자연에 대한 “원리를 밝혔다고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이작 뉴턴이 무지개가 무엇인지, 무지개의 비밀을 밝혔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를 이해함으로써 우주와 세상, 그것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더 증진시킨다. 과학적 이해로 원리를 밝혀서 그것의 아름다움이 훼손되나? 아니다. 우주를 보라. 은하계를 보라. 우리가 보고 있는 빛은 몇 백 년 전에 존재했다. 그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온다. 화석으로 수백만 년 전 생물 연구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이 지난 과거의 동물을 공부함으로써 심오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과학이 인생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오히려 더 증진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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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그의 책과 삶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 리처드 도킨스. 장대익 교수는 그에게 자신의 책들이 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과학을 이해하는 건 로맨틱한 일이다. 이것을 들여다 볼 때 경이를 느낀다. 그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한 리처드 도킨스는 어린이에게는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을, 진화를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상 최대의 쇼』를 추천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저서 중 한 권을 다윈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를 권하겠다고 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편 과학과 대중과의 소통은 많은 과학자들의 고민이다. 학자로서의 역할과 커뮤니케이터로의 역할 사이의 긴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활발한 대중 과학서를 펴내며 대중과 소통해온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역할 갈등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그는 ‘칼 세이건 효과’를 언급했다. 칼 세이건 효과는 과학과 과학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긴장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과학을 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과학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대중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과학자에 대해서는 그의 학문적 성취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칼 세이건이었다. 전무후무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칼 세이건은 역시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1992년 미국 국립과학 아카데미 회원 선출 당시 기존 회원들은 칼 세이건이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것을 이례적으로 반대해 결국 탈락시킨 일이 있기도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칼 세이건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분명 긴장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더 과학자의 책임이 대중과의 소통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과학자들 스스로 자신의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중에게 감흥을 줄 정도로 과학을 설명하는 건 과학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과학을 우리의 일상,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야 한다.”

 

코뿔소도 잠재울 만큼 거대한 수의사용 주사기를 꺼낸 뒤, 아이들에게 실험에 참가할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왕립연구소 강연에 오는 아이들은 보통 시연을 돕고 싶어서 앞다퉈 손을 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원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었고, 그러면 나는 아이들에게 그냥 농담이었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청중 중에서도 제일 어린 축에 들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머뭇머뭇 손을 들었다.(중략) 내가 휘두르는 괴물 같은 주사기를 보고도 나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거두지 않았던 딸아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좀 목이 멘다. 줄리엣이 지금 유망한 젊은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 일화와 아무 상관이 없을까?(『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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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만들어진 신』, 『지상 최대의 쇼』 등 논쟁적이고 도발적인 책을 써온 리처드 도킨스에게 종교와의 논쟁에 대해서도 이어 질문했다. 그는 “살면서 종교와의 논쟁을 할 때 좋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웃음)”고 말하면서 종교에 대한 거침없는 생각을 전했다.

 

“나는 종교가 없어지는 것을 원한다. 종교가 악의적이고 인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종교가 바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쇠락은 스칸디나비아,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등 곳곳에서 서서히 진행 중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미국인의 25%가 종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손자 세대에는 종교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현대의 우리는 뚜렷한 21세기적 가치들을 품은 21세기의 도덕주의자들이다. 19세기에 누구보다 선진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사상가라도, 이를테면 T.H.헉슬리, 찰스 다윈,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이들이라도 오늘날의 저녁식사 자리나 인터넷 채팅방에서는 그의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로 우리를 경악시킬 것이다.(중략) 그런데 우리가 그 취사선택의 기준을 선호하고 그것에 합의하는 이상, 도덕 지침을 찾아서 구태여 성경으로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577쪽)

 

장대익 교수는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의 말을 전했다.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등은 악마가 출몰하는 암흑 같은 우리 세계를 비추는 촛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칼과 스티븐을 너무 일찍 잃었다. 그렇지만 행운과 건강한 DNA 덕분에 도킨스는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전 세계 회의주의자들의 영웅으로 우뚝 서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마지막으로 후대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묻는 질문에 “과학이 주는 영감, 매혹, 흥분을 다른 이에게 잘 전달한 과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며 아쉬운 인사를 건넸다.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세트리처드 도킨스 저/김명남 역 | 김영사
생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름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도킨스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똑똑하고, 열정적이고, 명료하고, 무례한’ 논쟁의 대명사이자,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은 그의 삶이 담긴 첫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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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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