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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화 – 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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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일기를 시작한지 일 년이 됐다. 피츠 제럴드에 대해 더 감탄할 의지는 충분하나, 지난 일 년간의 독서일기에 관한 소회를 쓰는 게 독자에 대한 더 마땅한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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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오늘은 생일이라서 책을 읽지 않았다.

 

 

1. 3.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을 읽었다. 몇몇 단편은 흥미로운 도입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나머지 단편들은 말하려는 바가 명확하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소설을 한 편 읽었는지 실감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표지가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부러울 만큼 선명하게 심플하고, 우아했다.

 

1.9.

 

스콧 피츠제럴드의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읽었다. 이것이 태국으로 가져온 마지막 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단편집에 실린 표제작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와 ‘분별 있는 일’은 실로,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예전에 <채널예스>에 도대체 왜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피츠제럴드가 대문호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썼으나, ‘분별 있는 일’과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이 두 편의 단편 소설만으로 그의 재능과 심미안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는 충분히 훌륭했다.

 

그나저나, 이제 절도일기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됐다. 피츠제럴드에 대해 더 감탄할 의지는 충분하나, 지난 일 년간의 독서일기에 관한 소회를 쓰는 게 독자에 대한 더 마땅한 예의일 것이다. 내일은 이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한 편 쓸 것이다.

 

 

1.10.


2016년 1월 11일에 이 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10일에 마지막 일기를 쓰므로, 정확히 만 1년간 독서일기를 쓴 것이다.


어떤 독자는 내가 이 독서일기를 ‘좋은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의 즐길 대목을 독자와 함께 나누기 위해’ 쓴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말 그대로, 내가 ‘다른 책과 저자의 기법을 어떻게 절도했는지’ 용기 있게 공개하려고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칼럼은 내가 독서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쓴 것이다.

 

나는 작가이면서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못했다. 독서의 근육이 약해, 쉽게 책장을 덮어버렸고, 독서에서 많은 것을 얻고자 했기에 역시 쉽게 덮어버렸다. 이래서는 도저히 작가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나는 지면을 통해 선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 해 동안 꾸준히 독서하고, 그 일기를 쓰겠노라고.’ 그 결심의 산물이 바로 ‘절도 일기’다. 애초에 내가 선언한 것은 1년간 25권을 완독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고군분투에 가까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심을 지켜내지 못했다. 비록 스무 권은 넘겼지만, 목표치에는 이르지 못했다. 물론, 읽다가 그만둔 책까지 합하면 숫자는 훨씬 높아지지만, 기록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므로 솔직히 시인했다.

 

독서를 하면서 든 생각은 두 가지다. 첫째, 여전히 독서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독자에 대한 예의를 더욱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달리 말해, 독자들이 ‘쉽게 독서할 수 있도록’ 더욱 흥미롭고, 읽기 편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달리 말해, 그만큼 작가가 ‘어렵게 써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 년간의 독서를 통해, 나는 작가로서 ‘좀 더 내가 어렵게, 고생하며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하다 보면 ‘근육’이 붙는다는 것이다. 비록 25권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 자신의 취향’을 확인했다. 끝까지 읽어낸 책의 목록들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아, 나는 결국 이러한 책들을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런 점에서, 한 편으로 ‘버텨 낸다’는 것은 ‘좋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만큼 독서의 여정은 험난하고,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일 년간 꾹 참고 읽어내고 나니,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랫동안 걸은 기분이다. 초행길은 항상 멀게 느껴지고, 배낭은 무겁고, 어깨는 아파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풍경에 설레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 걷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날, 아침 같은 길을 걸어보면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 어젯밤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독서의 여정이 이렇다. 일독을 할 때는 온갖 유혹에 흔들려 고생하지만, 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결국, 남는 것은 끊임없이 길을 걷는 습관이다. 낯선 길에 대해 흥미롭게, 호기심을 품고 한 걸음씩 내딛는 습관. 말하자면, 지적 호기심으로, 이야기에 대한 열망으로,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습관이다. 독서하는 습관이 일상에 착륙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절도일기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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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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