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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 해야 할 일은 책장을 넘기는 것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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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요건이 있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좋은 소설은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던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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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1.

 

당연한 말이지만, 태국에 와서도 독서를 게을리할 수 없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현학적인 책과 씨름할 순 없다(한국에서 추운 날씨와 씨름하는 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나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떠올려 보시길). 어쩌면, 책장을 붙잡고 있는 손에도 땀이 날지 모른다. 때로는 책장 위에 땀방울이 떨어져 책이 젖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여, 재미있게 쉭쉭 넘길 수 있는 소설책을 한 권 들고 왔다. 김성한이라는 신인 작가의 첫 소설 『달콤한 인생』이다. 책 띠지에는 “카카오 페이지 동시구독자 3만명, 모두가 손꼽아 출간을 기다렸다!”라고 호기롭게 광고하고 있다. 커버 뒷장에는 이런 카피가 쓰여 있다.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 

 

 

12. 22.


프롤로그를 포함해 앞부분을 조금 읽었다. 일단, 신인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판단을 항상 유보하려는 것이 독서가의 자세다. 그런데, 앞부분에 등장한 인물들의 예의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넘어선다. 소설을 불과 두 장 넘기면 이 대목을 맞이한다. 주인공의 아내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신이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책상 위에 두고 간 휴대폰에는 일곱 통의 부재중 전화와 네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상우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고 차례대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10쪽)


이후, 소설은 아내가 메시지를 보낸 전문을 공개한다. 6시 23분에 ‘바쁘냐?’고 문자가 오고, 3분 뒤 ‘뭐 하느라 아직도 전화를 안 받느냐?’고 다시 문자가 오고, 2분 뒤 ‘주인공이 전화를 안 받아서 자신이 점점 지쳐 간다’고 연락이 온다. 이때, 이미 독자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 아내가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을까.’ 물론, 그러고 다시 4분 뒤 ‘나 임신했어’라는 메시지가 온다.

물론, 임신을 한 것은 부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불과 10분 사이에 일곱 통의 부재 전화와 책망하는 듯한 문자를 접한 독자는 ‘이 인물이 굉장히 짜증을 내는 사람’이란 걸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이 말은 ‘그 짜증이 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임신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여기까지 읽고 아내가 굉장히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좀 더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 말은 소설 초반부에 작가가 캐릭터 묘사를 오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비록, 책장을 덮지는 않았지만, 소설에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작가에게 불리한 것이다.

 

 

12. 23.


초반의 인상과 달리, 이 소설은 흡인력이 굉장히 강하다. 간만에 밤늦게까지 잔뜩 몰입하여 소설을 읽었다. 작가는 왜 초반에 등장인물을 짜증 나게 묘사했을까.

 

 

12. 24.


성탄 이브다. 숙소에서 수영을 한 뒤, 거의 종일 썬 베드에 누워 『달콤한 인생』을 계속 읽었다. 변호사인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이웃인 다운증후군 청년에게 뒤집어 씌었다. 한데, 영문을 모르는 이 청년의 부모가 주인공에게 사건 변호를 맡겼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증거를 은폐하고, 사건을 조작한다. 이 와중에 아내의 외도 사실이 밝혀졌다. 사랑이 가득해야 할 성탄 이브에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읽고 있는가. 이유는 자명하다. 이 소설은 한 번 몰입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12. 26.


오랜만에 절도할 기술을 하나 발견했다. 작가가 왜 초반에 캐릭터 형성을 짜증 나게 했는지 알겠다. 작가는 일부러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비록, 성미 급한 일부 독자들은 떠났겠지만, 끝까지 참고 읽은 독자들은 적어도 이 작가의 이름과 소설 제목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83년생의 젊은 작가에게 하나 배웠다. 하지만, 위험한 방법이다.

 

 

12. 28.


『달콤한 인생』을 완독했다. 이 소설의 장점은 몰입도다. 책장이 자석처럼 시선을 붙잡아두고, 진공청소기처럼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단지 책장을 넘기는 것, 그리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두 명을 직접 살해하고, 한 명을 살인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저한 악인의 행동을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선택과 그 그릇된 선택을 감당하기 위해, 추가로 저지르게 되는 범죄를 묘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묘한 심정인데, 심판하고 싶은 마음인지, 용서하고 싶은 마음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심판자의 심리로, 그 후에는 관찰자의 심리로, 어느 순간부터는 심판자도 관찰자도, 그렇다고 구원자도 아닌, 나조차 알 수 없는 기묘한 삼각지대에 선 채 주인공을 지켜보았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은 선도 악도 없는 회색지대로 끌어당겨 급기야 질문을 던진다. 내가 만일 실수로 저지른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다면? 홧김에 휘두른 흉기에 사람이 죽어버린다면? 그리고 누군가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목격하고, 나를 협박하고, 일상을 죄고,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면?

늘 품고 있는 의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요건이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좋은 소설은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던진다’는 것이다. 좋은 소설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든지 『달콤한 인생』을 읽는다면 꽤 어려운 질문을 하나 받을 것이다. 간만에 아주 흥미로운 소설을 한 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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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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