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이 이혼여행이 되지 않으려면
중국, 홍콩
참, 그 뒤로 이어진 신혼여행 후반부는 재미있게 보내고 왔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그 여자가 준비했거든요.
신혼여행 가서는 다 싸우나요?
자신의 방법대로만 여행을 준비한 저는 그 여자에게 최악의 MD였던 겁니다.
홍콩은 멋진 도시입니다. 서양 중심의 세계관으로 교육받아 온 우리에게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중화의 느낌을 잘 정리해서 보여 주는 ‘편집숍’ 같은 곳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물론 제 의견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요.
오래전에 다녀온 신혼여행으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라고 말해 보니 두 사람이 함께 산 지 꽤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합니다. 결혼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결혼 생활이 늘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두 자아가 만나 살면서 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판타지로 보여질 뿐입니다. ‘대체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정도라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요. 거기에 더해 우리 두 사람에게도 이혼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며 살고 있습니다. 저의 고백에 당황하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솔직한 마음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런 황당하고 어이없는 생각은 신혼여행 첫날부터 생겼습니다.
홍콩을 여행한다면 무얼 준비해야 할까요? 겨우 사흘 머무는 곳을 대하는 마음은 이랬습니다. 중국어를 할 줄 알고, 호텔 이름과 주소를 적어 두었으니 공항에 도착해 적당히 찾아가면 될 일입니다. 완차이Wan Chai, 灣仔 골목을 따라 걷다가 식당에 들어가 로컬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케네디타운Kennedy Town, 堅尼地城 동네 주민에게 그의 단골집을 물어보면 될 일이니 ‘여행 준비라는 게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없었습니다. 좀 더 정보를 찾아서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곳을 볼 수 있을까, 준비하면 할수록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 욕심만 커질 뿐이니 편집숍 마냥 아는 곳을 잘(!) 정리해 소개해 주면 좋겠단 마음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네. 분명히 말하건대 신혼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숙소를 찾았습니다. 과하지 않은 시행착오였으니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고, 그 미로 같은 경험 덕분에 여행의 감각을 되살리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최악이었다 하면서 숙소에 돌아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출발 전에 이렇게 여행할 거라고 얘기했는데 어디에서 그 여자의 심기가 뒤틀린 걸까요? 진정시킨 뒤 물으니 자기가 생각했던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서 어떻게 당신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는지 따져 묻고 있었습니다.
배우자를 손님에 빌어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이건 어디까지 가정이니까 웃으며 들어주세요. 편집숍의 장점은 잇-아이템들을 한 공간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그와 동시에 생기는 단점이 MD와 구매자 간의 성향이 다르다면 최악의 가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족은 손님의 몫이니까요. 다행히 첫날밤, 서로의 니즈를 확인하고 여행 계획을 다시 세웠으니 망정이지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로 여행하다 돌아갈 뻔 했습니다.
이혼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두 자아가 찢어진다는 단순한 결과만 놓고 볼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언제라도 서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의 실체입니다. 우리의 신혼여행처럼 말이죠. 함께 갈 수 없는 지점이 찾아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시작점에서 재빠르게 눈치채야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서로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참, 그 뒤로 이어진 신혼여행 후반부는 재미있게 보내고 왔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그 여자가 준비했거든요.
홍콩 데려다 준다고 했잖아?
그 남자를 따라다녔으니 이런 풍경도 만날 수 있었던 게지.
홍콩은 그 남자의 실체를 만난 곳이다. 순한 양의 탈을 썼던 남자가 신혼여행지의 첫 도시였던 홍콩에서 가면을 집어 던졌다. 어떻게 그 성질머리를 숨기고 용케 결혼까지 했을까? 가이드북도 블로그도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만 믿으라’며 중국어 자신감을 어깨에 장착한 남자와 함께 설렘 가득 홍콩으로 향했다.
도대체, 뭘 준비한 건지. 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방법도 몰라 헤매고 있는 그 남자를 보노라니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이 또한 여행이 아니겠냐’며 허허실실 댄다. 친구들 혹은 식구들과의 여행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해서 즐겁게 여행 계획을 짜는 부류가 있는데 내가 그렇다. 남자는 이런 즐거움도 빼앗아 가더니 여행은 원래 사서 고생하는 재미로 하는 거라며 급기야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의 나태함을 합리화하려 했다.
“홍콩 가서 맛있게 먹은 음식이 한 개도 없어. 굶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그냥 패키지 휴양지나 갈걸. 괜히 배낭여행 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 대로 쓰고. 홍콩 데려다준다더니 여기가 부산이랑 뭐가 달라. 따다다다다다닥.”
결국 우리는 홍콩에서 2박 3일 동안 주구장창 싸우기만 했다. 숙소에 드러누워 엉엉 울며 신혼여행을 망친 남자를 원망했다. 한편으로는 남은 여정이라도 잘 부탁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보냈다. 하지만 남자는 예상과는 달리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난 싫어.”
명절, 징검다리 연휴, 휴가 등을 챙겨 해외에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과 돈을 들여 나온 귀중한 신혼여행이니 누군가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루트와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시행착오를 줄여야 했다. 그동안 내가 다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세상이 궁금해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욕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찰과 삶의 심오한 진실을 알기 위해 떠난 의미심장한 여행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남들만큼만 누리고 오는 여행을 원했을 뿐이다.
이동 집약적으로 돌아다니며 여행지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효과적으로 여행을 포장하는 방법이다. 힘들게 떠나온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곳을 다녀왔다는 증거가 필요할 테니 공원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점심을 먹는 현지인들의 일상 옆에서 머물 여유가 없다. 여행을 사용하는 법을 모르면서 남들이 하는 여행을 따라 하는 게 진짜 여행인 줄 알았다. 이런 내게 그 남자와 함께한 홍콩은 너무나 가혹했다. 우연이 만들어 낸 여행의 기쁨을 즐기라굽쇼? 거 마, 집어치우라.
남자는 블로그나 가이드북을 찾아다니느라 바삐 움직이는 여행자가 되기 싫다고 했다. 정색하는 그 얼굴은 내가 알고 지낸 그이의 얼굴이 아니다. 평소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당장이라도 짐 싸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비장한 표정이었다. 신혼여행 가서 싸우고 갈라서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뒤에도 우리의 여정은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나로서는 연애할 때 화가 나도 꾹 참고 견디는 남자가 내심 불편하고 답답했는데, 그렇게라도 감정을 드러내 주니 이제서야 뭐라도 함께 해 볼 만한 기분이 났다고 하면 변태 같을까?
최악의 여행지였던 ‘홍콩’을 떠올리며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 다시 홍콩 갈래?”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지 ‘No’라는 대답이 짧게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와 다시 한번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때라면 아무리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한들 남들이 하는 여행을 따라 하지 못했다고 징징거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