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남인의 직장언어 탐구생활
상사의 ‘뒤에서 딴소리’ 대처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라 출구를 마련한다
직장에서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상사를 만나거든 뒤통수 맞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이들은 (남들 보기에)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욕망과 본인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출처_imagetoday
“제가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가 당분간 술 마시지 말라고...”
입사 첫 해, 건강검진 결과 지방간과 위염 소견을 받아 든 날은 하필 부서 송년회였다. 우물쭈물하며 ‘나 술 안 먹겠다’는 선언에 팀장은 뜻밖의 염화미소로 답했다.
“그래, 몸이 중하지. 와서 물만 마셔.”
송년회가 시작되고 술이 몇 순배 돌자, 구석에서 사이다를 홀짝이는 신입사원을 팀장이 발견했다.
“어이~ 우리 신입께서는 혼자 오백 년은 살겠어? 허허... 여기 지방간. 위염 없는 사람 있나? 그렇다고 마시라는 소리는 아니고.”
퍼뜩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며칠 전 팀장이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랬었다. “이 대리는 참 자기 거 잘 챙기고 산다니까. 팀에 일이 이렇게 많은데 3일이나 휴가를 가네.” 올해 다 못 쓴 연차를 소진할 겸 간만에 휴가를 신청한 이 대리 얘기였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서는 “눈치 보지 말고 휴가 쓰라”더니 해가 진 뒤 회사 밖에서는 말이 바뀌었다. 휴가 전날 이 대리가 후배들에게 남긴 말은 이랬다.
“얘들아. 예측할 수 없는 변덕보다 차라리 일관된 학대가 더 견디기 쉬운 법이란다.”
직장에서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상사를 만나거든 뒤통수 맞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이들은 (남들 보기에)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욕망과 본인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나는 네가 술자리에서 사이다만 마시며 분위기 깨는 거 싫다”라든가 “일이 많으면 휴가는 포기해”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본심을 좀 더 세련되게 말하는 법을 모르거나 ‘내가 꼭 구차하게 말을 해야만 알아듣나? 알아서 좀 잘 하지’ 혼자 구시렁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YES'는 꼭 ‘YES'가 아닐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살피고, 이들에게서 깔끔한 동의나 허락이 필요하다면 추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라
이중언어로 말하는 상사들은 주변을 의식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시원하게 돌직구를 날리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혹은 뒷담화의 형태로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한다. 이제라도 뭐가 옳고 그른지 보여주겠다는 듯 사람들의 동의나 공감을 구하는 것이다. 당하는 쪽이야 “이제 와 왜 딴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상사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뒤늦게 한 것일 뿐이다. 이런 상사에게서 원하는 게 있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되, 모두가 타당하다고 느낄 만큼의 근거를 붙이는 게 좋다. 다수의 증인 확보 차원이다. 또한 곁에서 힘을 실어줄 지원군을 포섭해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출구를 마련한다
당신의 말하기를 점검하자. 통보하는 식으로 말하거나 옵션이나 출구가 없는 상태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상사는 불안과 불쾌함을 느낀다. 상황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슬금슬금 공격성이 발동하는 것이다. 본질은 요구 혹은 요청이지만 최종 결정권은 상사에게 있다는 느낌을 주며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가 당분간은 술 마시면 응급실 실려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제가 오늘 쓰러지더라도 팀장님께 딱 한 잔은 올리겠습니다.“
송년회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도 마실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권을 상사에게 쥐어준 느낌이다. 결국 안 마시겠다는 얘기지만, 최악의 경우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퇴로를 열어 놨다.
“휴가지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다 해서 취소나 변경이 어려운데요. 대신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업무를 모두 마무리하고, 휴가지에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염치없이 주변에 폐를 끼치며 휴가를 강행하는 처지에서 주도적으로 나를 희생하는 모양새로 프레임이 바뀌었다. 비상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휴가지에서 컴퓨터를 켜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팀장은 당신에게 최소한의 미안함은 느낄 것이다.
열정만큼 중요한 무관심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진정성 혹은 기계적 일관성을 요구하지 말자.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 마음은 늘 변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말하기 전략을 세우는 것. 스탠퍼드대 로버트 서튼 교수는 『또라이 제로 조직』과 『굿보스 배드보스』에서 ‘앞에서는 아닌 척하면서 뒤로 공격하기’와 같은 행동에는 무관심과 정서적 격리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조직 생활에서 열정은 과대 평가된 덕목이고, 무관심은 과소 평가됐다. 많은 책들이 마법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을 떠들썩하게 선전한다. 물론 좋은 직장에서 존 중받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한다면 옳은 말이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에 눌리고 자존심에 상처받으며 직장에 얽매여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헛소리다. 자기 보호를 위해 ‘무관심과 정서적 격리’를 실천하라. 다소 떨어져 있을 때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또라이 제로 조직』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경찰기자, 교육 이슈를 다루는 교육기자로 일했으며 문화부에서는 서평을 쓰며 많은 책과 함께했다.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찾아 2013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HR Communication을 담당하다 현재 SK 주식회사에서 브랜드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과장을 시작으로 차장, 부장을 압축적으로 경험했고 그 사이 한 번의 이직까지 겪으며 다양한 장르와 층위의 ‘내부자의 시선’을 장착할 수 있었다. 기자였다면 들을 수 없었던, 급여를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가 일하고 관계 맺고 좌절하고 성취하는 진짜 이야기들을 책『회사의 언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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