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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SF의 미학적 중심은 ‘경이감’”

『예술과 중력 가속도』 출간 기념 이 책은 넣고 싶은 작품으로 엮은 첫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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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지 추천해달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러면 저는 아마 단편집 중에는 이 책을 소개해드릴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굉장히 엄선된 단편집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글들이 되게 많이 들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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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저녁 합정 비플러스 카페에서 배명훈 작가와의 ‘책맥토크’ 행사가 열렸다. 소규모로 진행된 이 행사는 『예술과 중력 가속도』 출간을 기념한 것으로 독자와 작가가 맥주를 마시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묻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예술과 중력 가속도』는 배명훈 작가의 세 번째 단편집이다. 데뷔작인 「스마트 D」가 수록되어 팬들의 기대를 받았던 단편집이기도 하다. 배명훈 작가는 「스마트 D」를 수록하는 것이 “사실 엄청 부담스러웠”다면서도 좋아하는 단편들을 묶어 출간한 이번 책 『예술과 중력 가속도』를 자신의 추천 단편집으로 꼽기도 했다.


배명훈 작가의 작품을 시작부터 꾸준히 따라온 독자와 친구의 소개를 받기도, 소개를 하기도 한 독자들, 이제 막 작가를 알고 찾아온 독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책맥토크는 꽤나 다정하고 친밀한 마음이 가득한 자리였다. 1부는 담당 편집자가 배명훈 작가에게 질의하는 순서로, 2부는 독자의 질의에 작가가 응답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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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중에는 이 책


배명훈 작가는 출간 소감을 묻자 상기된 목소리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목록”이었다고 말했다.

 

“열한 번 째 책이에요. 처음부터 따라오신 분들은 금방 따라오셨겠지만 작년쯤 저를 아신 분들은 따라오는 시도를 안 하시거든요.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지 추천해달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러면 저는 아마 단편집 중에는 이 책을 소개해드릴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굉장히 엄선된 단편집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글들이 되게 많이 들어가 있어요. 「예비군 로봇」을 드디어(웃음) 단편집에 넣었고요. 이전 단편집들은 『총통각하』도 그렇고, 주제가 있는 책들이어서 주제에 맞춰 단편을 뽑았던 면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그런 것 없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뽑아서 만든 책이라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목록이었고요. 아마 계속 보아오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예비군 로봇」이나 「예언자의 겨울」 같은, 오래 됐지만 제가 좋아하는 작품도 들어가 있고요. 「스마트 D」도 들어갔으니까요.”

 

「스마트 D」는 배명훈 작가의 등단작이다.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된 작품이자 단편집에 최초로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프로필마다 「스마트 D」로 등단했다고 했는데 제대로 기억하는 분이 별로 없어요. 상 이름도 수상자들만 정확한 명칭을 기억하죠.(웃음) 「스마트 D」를 읽어본 분은 사실 그렇게 많진 않거든요. 이 작품도 드디어 넣게 되었는데요. 사실 엄청 부담스러웠어요. 너무 오래된 글이라 지금 보니 고칠 게 많은 거예요. 지나간 원고를 고치는 작업 중에서 「스마트 D」작업을 제일 먼저 했는데요. 너무 오래 걸렸어요. 어쨌든 정말 좋고요. 이번 단편집은 제가 넣고 싶은 작품을 막 넣어서 엮은 첫 단편집일지도 모르겠어요.”

 

“넣고 싶은 작품을 막 넣어서” 엮었다는 이번 책 중에서도 특별히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이 있을지 몰랐다. 어떤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예비군 로봇」과 「조개를 읽어요」가 언급되었다.

 

“「예비군 로봇」이 가장 폭넓게 오랫동안 사랑 받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저도 좋아하는 글이에요. 그래서 표제작이 될 수도 있었는데요. 제목이 ‘예비군 로봇’이면 아마 이상하게 읽혔을 거예요. 그런 느낌은 아니니까 제목에서 빠지게 됐어요. 다 그렇지만 「조개를 읽어요」 같은 작품은 구체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인도 한 작은 해변에서 일주일 정도 묵었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막 흘러갔어요. 희한하게 제 발 밑에 개들이 와서 자고 그랬어요. 그때 기억이 담겨 있는 글이에요. 빠르게 파도가 모래를 벗어나면 조개들이 드러났다가 재빨리 사라지는 모습을 진짜 봤거든요. 거기서 받은 인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어요. 그런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또한 그 외에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티켓팅 & 타겟팅」을 꼽은 배명훈 작가는 “제가 티켓팅을 굉장히 잘해요.(웃음) 티켓팅 한 시간 전부터 긴장이 되면서 밥을 먹을 수가 없는, 그런 경험을 정말 생생하게 살린 글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희한한 곳에서 만나는 굉장히 치열한 전장”을 쓰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했다.

 

배명훈 작가가 변함없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면 “김은경은 누구인가요?”일 것이다. 여러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의 이름으로 이를 둘러싼 웃지 못 할 말들도 많았다. 작가는 김은경을 “나를 투영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제 글을 읽기 전부터 저는 계속 쓰고 있었으니까요. 습작할 때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이거 네/내 이야기지?’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별을 바꾸면 그 이야기가 안 나와요. 되게 단순하죠. 제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를 쓰지만 성별을 바꿔 ‘나는 아니다’, ‘내가 창작한 인물이다’라고 하기 위해 시작한 것 같아요. 또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 이름을 안 지어놓으면 막히거든요. 이름 짓느라 막히는 게 싫어서 전에 지었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초기에는 좀 있었어요. 은경이는 그런 인물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기본 인간이 여성이라는 게 굉장히 좋은 길을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 기본 인간이 남성인 경향이 있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듣고 있는데 저는 그걸 안 했다는 게 굉장히 행운이죠. 그것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에요. 그 뒤에도 주인공이 필요한데 이 사람이 꼭 남자여야 할 필요가 없으면 그냥 은경이가 나오니까 당연히 여자가 나오게 되는 거죠.”

 

내 소설 속에서 김은경이 삼십대, 사십대를 살아갈 수 없다면 나 또한 삼십대, 사십대 작가로서 경력을 이어갈 수 없다. 이제 김은경은 내가 느낀 그 어색함을 정면으로 돌파해나갈 것이고, 나와 함께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318쪽,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작가는 어느 순간 김은경을 더 쓰지 않았다. “여배우가 안 좋은 소문이 생겨 사라지는 과정과 비슷한 게 제 머릿속에서 일어났”다는 배명훈 작가는 그러나 “정말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분명히 처음 시작할 때 나랑 같은 나이에 나와 비슷한 경험치를 쌓고 있는 인물로 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나이의 여자는 주인공이 안 돼,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쓴 단편에는 은경이가 계속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쓰니까 어색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점점 쓰다 보니 좋아지고 있어요. 이번 책은 제가 좋아하는 글을 뽑았기 때문에 은경이가 많이 언급되고 있죠. 은경이를 계속 쓰겠다고 선언한 해에 은경이가 많이 나오는 책이 나와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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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대화


고래와 잠수함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고래 이야기를 종종 쓰는 이유가 있나요?


배명훈: <판타스틱>에 처음 실었던 글이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라고, 차원 이동을 하는 고래가 나와요. 우주에 떠다니는 고래예요. 공간을 넘어 다니죠. 고래를 계속 쓰고 있는데요. 제 머릿속에 이상한 신화처럼 뭔가 들어 있는 것 같긴 해요. 우주에서 온 고래들이 바다를 통해 다른 행성으로 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뉘앙스를 자꾸 풍기고 있는 거고요.


고래를 다룬 이유 중 하나가 노래 때문이에요. 노래로 소통을 하고, 노래에도 유행이 있고, 남극에 모였다가 헤어지면 유행이 또 전 세계로 퍼지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거대한 생물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고래는 저도 모르는 은경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수록 단편 순서는 누가 정한 건가요?


배명훈: 제가 정해서 알려 드렸고요. 상의해서 조금 바뀐 것들이 있어요. 「스마트 D」는 안 넣고 싶었는데 결국 들어갔고요. 「물고기자리」라는 소설은 꼭 넣고 싶었는데 빠졌어요. 이 단편은 『익명소설』에 발표를 해서 아마 팬 분들도 제가 쓴 건지 모르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저는 작품을 문예지에도 내고 <과학동아> 같은 곳에도 내서 제 작품을 다 읽으신 분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면은 다르지만 마음에 쏙 들어서 꼭 알리고 싶다는 글들을 이번에 다 넣어서 마음에 드는 건데요. 읽는 호흡 같은 걸 신경 써서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SF를 쓰면서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는 장벽 같은 게 있었는지 궁금해요.


배명훈: 요즘 보기에는 SF에 가까운 것 내지는 그냥 SF라고 해도 좋을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SF를 쓸 때 분명히 부딪치게 되는 과제가 있어요. 주인공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분명히 걸려요. 저는 책을 여러 권을 냈어도 또 걸려요. 한국 지명, 한국사람,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걸 해도 되나 늘 고민하는데요. 답은 당연히 한국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외국 사람을 등장시켜서 잘 쓸 방법이 없죠. 어색해도 계속 쓰다 보니 점점 덜 어색해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한국 사람이 SF를 쓰는 데 제약 요소가 있어요.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창작자 입장에서도 고민을 하게 돼요. 하지만 그냥 쓰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것들이 계속 나오면 안 어색하게 돼요. 그런 과정이 진행 중인 것 같아요.

 

작가님이 영향 받은 SF가 뭔가요?


배명훈: SF소설을 많이 읽었던 마니아는 아니었어요. 저는 중학교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어요. 더웠던 여름 방학 때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에 누워서 한 달 걸려 읽었던 기억이 나요. 감명 깊었다고 생각해놓고 내용은 잊어버렸는데요. 나중에 제가 좋아했던 내용들, 제가 제 머리로 생각했다고 착각했던 내용들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별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그 이야기는 그 책에서 처음 봤어요.

 

SF 작품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배명훈: 중요한 부분을 짚으셨는데요. 미국 SF 평론에서 이야기하는 SF의 미학적 중심을 ‘경이감’이라고 해요. ‘sense of wonder’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것을 담아내려고 애쓰고 있죠. 보통 SF가 뭘까요, 라고 했을 때 보통 생각하시는 건 ‘상상력’인 것 같아요. 유쾌함, 발칙함, 그런 건데요. 실제로 SF작가들은 어두운 이야기 굉장히 많이 쓰거든요. 디스토피아도 굉장히 많잖아요. 저도 초기 작품에서는 엄청 많이 죽였거든요.(웃음) 그렇지만 지향점은 경이감이죠.


 

 

예술과 중력가속도배명훈 저 | 북하우스
장르문학과 문단문학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배명훈이 세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 프로필에 제목으로만 잠깐 언급되곤 하던 전설 속의 단편소설”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스마트 D」가 최초로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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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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