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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시인의 밥상』 북콘서트 현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행복한 밥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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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직접 담근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여줬어요. 제가 철이 없어서 먹기 전엔 해장거리로 맵거나 얼큰한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형이 끓인 순한 된장찌개를 맛보고 생각이 달라졌죠. 이후로 박남준 시인의 밥상을 참 좋아하게 됐어요.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높고 푸른 사다리』, 딸에게 주는 레시피 등을 펴낸 공지영 작가가 이번에는 신간 에세이 『시인의 밥상』으로 독자들을 찾았다. 지난 11월 29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북콘서트를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한겨레출판사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가 사회자로 나섰고 박남준 시인과 가수 진진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공지영 작가가 직접 전하는 맛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0여 명의 청중이 객석을 채웠다. 근황을 묻는 최재봉 기자의 질문으로 행사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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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맛있는 이야기

 

최재봉: 요즘 시국에 시간 내어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두 분은 책이 나오고 어떻게 지내셨나요?

 

박남준: 책이 나오고 나서 여기저기 다닐 줄 알았는데 이와 상관없이 토요일 날 주로 광화문을 찾았고 감기에 걸려서 집으로 갔다가, 나을만하면 다시 토요일 날 서울로 와서 또 감기에 걸린 상황입니다. 저를 감기 걸리게 한 박근혜 대통령, 빨리 물러나야 합니다(웃음).

 

공지영: 안녕하세요. 공지영입니다. 신간이고 뭐고 분기탱천해서 TV를 온종일 틀어놓고 3주를 지내고 있네요. 지난 토요일에 버들치(박남준) 시인이 올라왔다는데 엇갈려서 만나지 못하고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됐네요. 이따가 밥이라도 사야겠어요.

 

최재봉: 『시인의 밥상』은 <한겨레>에 작년 초가을부터 연재한 내용을 엮어낸 책입니다. 처음 연재를 위해 지리산으로 갔고 일 년 반 정도 밥상을 찾아서 전주, 거제도, 거문도 등을 다녔죠. 1년 동안 두 분이 밥을 먹으러 다니셨는데 그게 보통 일은 아니죠.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요?

 

공지영: 솔직히 말해서 버스로 세시간 반을 오가며 2주에 한 번 음식을 하는 일이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이 자리에 있는 네 명을 포함해 ‘J’와 ‘최도사’ 형까지, 동행한 사람들과 지낸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이 친구들하고 밥해 먹고 술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연재가 끝났을 때는 오히려 허전한 마음이 들었죠. 특별한 목적 없이 모여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1년을 함께 지냈다는 것은 저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네요

 

박남준: 그동안 만나온 인연들을 보면 이토록 공동 관심사를 가지고 지속해서 만났던 사람들은 없었어요. 보통 여섯 명이 모였는데 다들 요리를 좋아해 주고 감탄도 잘해줬죠. 분란 한 번 없이 잘 지낸 것 같아요. 이 팀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공지영: 저희는 만날 때마다 각자 자기 고장의 제철 음식을 가지고 왔어요. 지난해에 시작할 무렵이 기억나네요. 자칭 연봉 20만 원 되시는 최도사 형께서 지리산 동네에서 갓 딴 천연 송이버섯을 따오고 J는 거제도에서 맛있는 회를 가져왔어요. 그렇게 모여서 함께 요리를 해 먹고 술잔도 기울이고, 다 좋은 기억들이죠.

 

최재봉: 진진 씨가 모임에 합류하게 된 스토리도 있다고요.

 

공지영: 지리산으로 가던 중이었어요. 날씨가 험했던 적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섬진강에서 푸른 용이 승천할 듯 사납게 돌풍이 불더라고요. J가 “언니야 눈이 올 것 같지 않나”라고 물었고 지리산에 올라가는 도중에 실제로 눈이 내렸어요. 이때 들었던 노래가 진진 씨의 ‘당신이 첫눈으로 오시면’ 이란 노래였어요. 차를 타고 계곡으로 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동안 계속 들었죠. 그날로 진진 씨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이 모임까지 초대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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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시인, 가수의 목소리가 울렸던 공간

 

공지영 작가의 설명이 끝나자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그 노래가 청중들에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 특별한 경험을 다 같이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행사는 진진 씨의 노래 외에도 공지영 작가와 박남준 시인의 낭독이 이어지며 객석은 감성으로 물들었다. 작가와 시인, 가수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들을 거리’ 많은 북콘서트였다.

 

최재봉: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바로 올 봄이죠.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서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으며 박남준 시인이 했던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공지영: 그럼요. 벚꽃이 쭉 피어있고, 여섯 명이 둘러앉아 고도리를 칠 수 있는 바위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었죠. 버들치 시인의 동네 계곡이었는데 저희밖에 없었어요. 화전을 먹고 있으니 기분이 최곤데 최 도사 형이 저를 주려고 ‘만사형통주’를 들고 오신 거예요. 110년 된 담쟁이 넝쿨로 담근 술이었는데요. 그때 박남준 시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아, 정말 행복하다.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화전을 부쳐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 차비가 없어도 못 오고 시간이 없어도 못 오지.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못 오고 버리지 못할게 있어서도 못 오지. 그걸 다 넘어서 여길 온 사람들이니까 우린 즐길 자격이 있어.”

 

공 작가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운 듯한 표정을 지었을 때 진진 씨의 다음 곡인 ‘진달래’가 흘러나왔다.

 

최재봉: 시인의 밥상, 이런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요. 처음 박남준 시인의 밥을 먹었던 기억은 언제인가요?

 

공지영: 14년 전에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쓰던 시절, 친구들과 지리산에 갔죠. 그때는 밥보다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주를 마셨어요. 냉장고에서 매화를 꺼내어 술잔에 넣으면 새끼손톱만 한 매화가 술잔에서 피어났는데요. 그걸 마신다는 상상만 해도 좋지 않나요? 그리고 그날, 시인이 직접 담근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여줬어요. 제가 철이 없어서 먹기 전엔 해장거리로 맵거나 얼큰한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형이 끓인 순한 된장찌개를 맛보고 생각이 달라졌죠. 이후로 박남준 시인의 밥상을 참 좋아하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하는 요리에도 많은 영향을 주셨네요. 밥 먹을 때 순하게 해서 반찬 하나 둘만 놓고 먹는 소박한 밥상이 좋아지더라고요.

 

최재봉: 주로 지리산에 가서 시인의 음식을 먹었습니다만, 장소를 이곳 저곳 옮겨 다니기도 했는데요. 그 중엔 거문도도 포함돼 있어요. 소설가 한창훈 씨가 살고 계신 곳이기도 하죠. 그곳에서 느낀 점에 대해 공지영 작가가 쓰신 글이 있다고 들었어요.

 

공지영: 다른 것은 아니고 음식을 먹고 나서 생각난 것에 관해 쓴 글이에요.

 

실은 서울을 떠나오기 전에 나는 아팠다. 많이 아팠다.  
인간이 싫었고 모든 관계가 허망하고 혐오스러웠었다
그런데 어느새 이 친구들과 함께 웃고 까불고 배려 받으며 나는 또 회복되고 있었다.
나는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라는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배는 전복되거나 떠밀린다
떠밀림의 끝은 좌초이다
배가 그냥 있으면 훨씬 심하게 파도를 탄다.
그러니 가야 한다. 울어도 가야 한다
바다가 늘 그러하듯이 세상이 우리를 내보낸 이유는 이렇게 흔들리라는 것이다.
나도 그 구절에 응답하듯 중얼거렸다.
그렇지 한 작가. 배가 가만히 있으면 가장 많이 바람을 탄다고,
그러니 가라고 울어도 가라고.
그래 그렇겠다. 배가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나 배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게 아닐 테니까.

 

최재봉: 지금까지 좋은 말씀과 노래 들려주신 세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부턴 청중 여러분께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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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 박남준 시인에게 묻다

 

욕심 없이 모이셨다고 했어요. 어떻게 하면 욕심이 없어질까요?

 

박남준: 글쎄요. 그 욕심이라는 게 서로 각기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기준이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고 개인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비교적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지 않았나 싶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내려갔고 어느 날 문득 산속의 삶을 택한 것도 시인의 가치를 가장 크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공지영: 6명이 모여 있을 때 얘기를 하자면 항상 각자의 역할에 대해서 잘 인지한 듯해요. 여럿이 모여 1박 2일, 2박 3일을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서로 이해하고 자기 역할을 잘 해주다 보니 욕심부릴 일이 없었어요.

 

모임에 여러 사람이 모여있을 때 의견 불화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요?

 

박남준: 술을 막 마셔요.

 

공지영: 그러다 보면 한 명이 자요(웃음). 그렇다고 참는 사람은 없죠. 물론 굉장히 큰 소리도 나고 싫은 것은 확실히 표현해요. 그러면서 신뢰도 쌓이는 것 같아요. 사실 먹을게 풍족해서 진정한 싸움이 안 일어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박남준: 오히려 너무 잘하려고 음식 준비를 많이 하다 보니 대강하라는 쪽과 어떻게 대충 준비하냐는 쪽이 티격태격한 적은 많았네요. 기분 나쁜 큰소리가 아니라 즐거운 큰소리가 오가곤 했어요.
 


평소에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고 활용하시나요?

 

박남준: 글쎄요. 전에는 일부러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 내거나 그런 적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주로 기다리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계시처럼 내려오는 영감보다는 기다리고 있으면 들려오는 게 많이 있더라고요. 이순에 나이가 되려는지 아무래도 제가 귀가 순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젠 제가 영감이 다 됐습니다(웃음).

 

공지영: 창작이란 게 참 재미있는 점이 과학적 연구는 오랜 세월 끝에 무언가를 연구하면 결과가 나와요. 창작은 20년간 심혈을 기울였다면 실패작일 가능성이 높아요. 오히려 하룻밤에 완성한 것들이 명작일 가능성이 높죠. 그러한 영감은 365일 기다리는 사람한테 와요. 저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쓰려고 보면 온종일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온 신경을 몰두하는 것 같아요.

 

책을 쓰다 보면 혹평을 듣기도 할 텐데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공지영: 저는 혹평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30년간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이 그 혹평이에요. 저를 그토록 가혹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다면(물론 그들에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저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성공하는 시간만큼 삶에서 우리를 정지시킨 시간은 없었다’는 말이 있어요. 칭찬만 들었으면 교만해졌을 거예요. 혹평이란 것들이 실은 저를 지탱해주고 싱싱하게 글을 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의 밥상공지영 저 | 한겨레출판
시인이 차려내는 소박하고도 따뜻한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 같은 스물네 가지 음식과 그 음식을 맛보며 써낸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글은 이 책을 읽는 우리를 한껏 충만하게 해준다. 우리는 『시인의 밥상』을 읽으며 우리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깊게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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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상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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