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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최고, 최악의 저자였어! (편집자 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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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마음속에서 “나는 위대한 작가”라는 자의식이 샘솟아도 조금은 겸손하시길. 나는 당신의 초고를 보는 사람이라니까. 당신의 진짜 모습, 나만 알아서 아깝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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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today

 

저자가 가장 감사하고 또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편집자’입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고에 숨을 불어주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직하게 피드백을 주는 상대이니까요. 최근 문단이 ‘성폭력’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무척 속상하다”는 편집자도, “이제야 터지는구나”하고 속 시원해하는 편집자도 있습니다. 반응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각자 경험한 저자와의 사연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편집자 여덟 분께 익명을 전제로, “당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저자, 최악의 저자”를 물었습니다. 할 말이 많았다며 선뜻 답장을 보내온 편집자도, “좋은 저자도 많은데, 지금 출판계 상황이 서글프다”는 편집자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책을 내고 있는 저자들도, 앞으로 저자가 될 분들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 <채널예스> 편집자 주

 


1.jpg리엘(15년차)
전사적으로 관리하는 베스트셀러 남성 저자였다. 개정판 작업을 맡게 되어 인사차 지방에 있는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내 얼굴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란다. 대충 전화를 끊었다. 퇴근하는 길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자였고 왜 사진을 안 보내냐고 한다. 내 입에서 “싫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몸서리쳐지도록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일을 하냐고 소리를 높였고 나는 내일이라도 편집장님과 계신 곳으로 출장 가겠다고 응대했다. 저자는 이번 주는 자기가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주말에도 평일에도 같은 내용으로 휴대전화를 몇 차례 더 받았다. 가슴이 졸아들었지만 끝까지 사진은 보내지 않았다. 마침내(?) 이루어진 첫 만남에서 나는 그가 옆 사람 허벅지를 움켜쥐며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임을 알았다. 첫 만남에서는 그 옆 사람이 내가 되었지만 이후에는 그의 옆에 앉지 않았다.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마다 그는 내게 웃으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지만, 그 저자와는 몇 권의 책을 더 출간했다.

 

2.jpgRKO(5년차)
선생님, 제가 불면증에 시달렸던 건 원고 편집을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증 때문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내 불면증은 망할 당신 전화 때문이었어요. 댁이 교수로 있는 LA가 점심시간이면 여기는 새벽 4시거든요. 한 달 내내 새벽 4시에 깨서 한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있으면 삶이 피폐해져요. 그리고 출간기념회를 출판사에서 열어줬으면, 우리 인간적으로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합시다. 50년 전 ‘국민학교’ 동창까지 연단에 세워 소개하면서, 나는 고기 굽고 마케터는 상추 씻어야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제발이지 망할 영국 동요를 예문으로 쓰는 건 그만둡시다. 당신 책은 ‘순우리말 글쓰기’였다고!

 

3.jpg한때 춤 좀 췄던 여성 편집자(15년차)
한 번은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술 안주감을 출판사로 배달시킨 필자가 있었다. 그날은 결국 필자를 모시고 예기치 않은 음주 야근을 해야 했다. 술이 불쾌해진 그는 말했다. “어떤 출판사 송년회에 갔는데 XXX는 나랑 블루스도 안 춰주더라. 지가 뭐라고.” 여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지만, 한 남자 편집자는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 못해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저라도 안 추겠어요. 춤도 사람 봐가면서 춰야죠.”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올 것이다. 김영란법도 시행된 김에 선물도 이제 그만, ‘접대’ 송년회도 이제 그만! 편집자도 연말연시는 제발 살가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자!

 

4.jpg펭귄(4년차)
언론인 상을 받은 기자인 A작가. 초등학생 딸 자랑에 여념이 없던 그가 회식 자리가 끝날 즈음 좌식 테이블 밑으로 실수인 척 손을 겹쳐 잡았을 때의 뜨악함을 잊을 수 없다. 이후 “좋은 사람 같다”는 둥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새벽 4시에 특별한 용무도 없이 ‘자니?’ 같은 메시지를 보내던 B작가. 학창 시절부터, 날카로운 사회 비평으로 이름 높던 그의 팬이었던 지라 실망이 더 컸다. 여성 편집자가 남성 저자와 작업할 때 겪는 최악의 상황(중 하나). 단호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어디선가 조용히 괴로운 상황을 겪고 있을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5.jpg신포도(9년차)
첫 대면부터 출판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주신 한 작가님. 시상식에 자리한 많은 출판 관계자를 보며 작가님의 인품을 짐작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책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이렇게 스무스해도 되나 할 정도로 화기애애. 훈훈함 덕분인지 책은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이유를 그림작가와 출판사 덕분이라고 주장, 떡 파티를 열어주셨는데 종국에는 그마저 성에 안 찬다며 그림작가와 출판사 전 직원을 초대해 멋진 중식당 풀 코스 요리를 선물해주실 정도. 맛있는 음식이 문제가 아니고(!) 작가님의 출판사에 대한 무한 신뢰와 배려를 보자면 늘 응원할 수밖에.

 

6.jpg프로 마감러 (4년차)
그는 소위 '엘리트' 저자다. 동시에 사회를 향해 '이로운 이야기'를 발신한다. 그런 그가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됐다. 설렘과 흥분도 잠시, 나는 금세 저자 P 씨로부터 흥미를 잃고 만다. 그가 도통 원고를 건네지 않았던 까닭이다. 안다. 원고 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그래서 넉넉히 드렸지만, 연락도 없이 번번이 약속은 어겨졌다. 억울한 것은, 막상 연락이 닿으면 엄청난 자기비판이 이어졌다는 것. 그럼 제가 아무 말도 못 하잖아요. 해가 두 번 바뀌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 했다.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오후에 그의 페이스북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메일에 '하여간'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단다.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냐며 분노하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네. 제가 바로 메일에 '하여간'이라는 단어를 적은 사람입니다! '하여간'의 사전적 의미는 '어찌하든지 간에'이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어찌하든지 간에' 당신의 책을 끝까지 출간하고 싶다는 의미의 메일이었다. 도대체 이 문장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던 건지. 끄응. 결국 나는 그 책의 담당자에서 물러났다.

 

7.jpg동등하게 일하고 싶었(7년차)
간혹 편집자가 자신의 비서, 또는 매니저인 줄 착각하는 저자들이 있다. 마감 날짜는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고 맞춤법은 무조건 편집자가 확인해야 하는 일로 착각한다. 이렇게 맞춤법을 모르면서 어떻게 책을 낼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책은 읽고 신문을 읽고 사시는 거죠? 분량이 너무 많아 좀 줄여달라고 하니, 자신의 원고가 너무 소중한 나머지 어렵다 하신다. 웬열! 당신보다 더 잘나가는 훌륭한 저자도 수정해주시거든요? 웬열! 아마 자신이 굉장히 매너 좋은 저자라고 생각할 텐데, 제발 현실을 좀 아시길. 가끔 “선생님,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편하게 불러달라는 초보 작가 분들이 있다. 잘해주고 싶다. 제발 마음속에서 “나는 위대한 작가”라는 자의식이 샘솟아도 조금은 겸손하시길. 당신의 진짜 모습, 나만 알아서 아깝다 정말.

 

8.jpgS출판사 P(16년차)
그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초보 편집자 시절, 인생의 멘토와 같은 분이었다. 그는 기업을 그만두고 1인 기업연구소를 창업했다. 그곳은 수익이 없지만 젊은이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우리 출판사에서 그의 책을 만들 때의 이야기다. “○○야, 이제 곧 60세인데, 향후 10년 동안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아니 선생님. 책을 한창 쓰셔야 할 때 아닌가요?” “70세가 되면 홀로 여행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 몸에 힘이 있을 때 낯선 곳에 더 머물고 싶어.” 안타깝게도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책이 나올 때만 해도 건강했던 그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별세하셨기 때문. 마지막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모험을 선동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이야기했다. 모험은 일상의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 사이로 끊임없는 자극을 남긴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첫 문(門)이다. 40대인 내가 ‘10년 후의 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려 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선동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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