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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 정원에서 노장의 황야로

『여신』 고승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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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궁극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큰 화두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로 운명이 과연 작동되는 것일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품고 그걸 소설을 통해 풀어 나가려고 상상력을 넓히는 한편 관련 서적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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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가, 허구인가. 작가 고승철은 그 경계를 가벼이 넘나들다 어느새 그것을 지워버린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읽을 때는 참으로 현실적이다가도, 자수성가한 노인의 발칙한 프로젝트와 마주하다 보면 그 도발적 상상력에 절로 아연실색하고 만다. 그 와중에 독자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경계 지우기. ‘공맹(孔孟)의 정원’(언론계)을 버리고 ‘노장(老莊)의 황야’(창작판)를 떠도는 어느 방랑자의 소명 아닐는지. 『여신』은 고승철이라는 방랑자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여신』은 어떤 책인가요? 무엇을 가장 말씀하고 싶으셨나요?

 

동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시대정신을 다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치열한 고민의 대상이라면 갈등과 분쟁일 것입니다. 갈등이라면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갈등, 사회계급 간 갈등이 있을 것이고요. 분쟁이라면 요즘 우리가 체감할 수 있듯 준전시상황에 가까운 남북한의 대립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 시대정신을 의식하면서 소설을 통해 갈등을 치유하고 분쟁을 완화하자는 것이 사유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플롯을 보면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립이 주축을 이루고, 남북 분쟁 상황도 간간이 등장합니다. 이 갈등을 풀어 헤쳐 나가는 방법이 장중하거나 심각하면 독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블랙코미디 방식이랄까, 주제는 무겁되 전개 방식은 좀 가볍게, 재밌게 하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선 이니셜 처리되어 있던 인물들이 출간되면서는 이름이 부여되었습니다. 애초에 이니셜 처리하셨던 이유와 생각이 바뀌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자 서문에서도 밝혔듯 실제 인물을 작중 인물로 변형하면서 혹시 당사자가 오해를 할까 하는 우려에서 이니셜 처리했었습니다. 그런데 작품 전부를 이니셜로 기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싶어 출간을 준비하면서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집필 중에 실제 인물들을 의식하긴 했지만 여러 인물의 조합을 통해 소설의 전형 인물이 탄생하는 거니까요. 꼭 들어맞는 대체 인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탁종팔, 장다희, 민자영 등.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흙수저 출신입니다. 이들이 반란의 주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란의 수단은 결국 자본과 권력일 수밖에 없었던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한 체험, 자신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행운 등이 겹쳐서 신분 상승을 이루어 냅니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사회랄까, 그런 것을 작품에 투영시키면서 현존하는 여러 흙수저 계층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제 목적이었습니다. 이들이 구조 변혁을 일으키려고 도모하긴 하는데, 이 책에서는 개혁과 반란의 단초만 보여줬을 뿐 완결을 낸 것은 아니에요. 전체 스토리로 보면 이게 시작이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향후 전개되는 개혁 추진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메워 나가야 할 각자의 몫이죠.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현실적인 수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자본과 권력을 향유하는 지배층으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변혁에는 물적 토대도 필요한 거니까, 갖고 있는 사람이 조금 내려놓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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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젊은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든데요.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글로벌 시대라 하지만 의외로 요즘 젊은이들은 국제적 시각이 좁은 것 같습니다. 해외연수도 가고, 배낭여행도 가고, 여러 매체를 통해 해외소식을 접하기도 하지만 표피적인 해외풍물을 훑어보는 정도이지 인류애적인 바탕을 통해서 외국인을 과연 바라보는가 의문입니다. 한국에 와 있는 여러 다문화 가족들을 인류애적,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하고 살피면 미흡한 것 같아요. 광고학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포지셔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기 삶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지를 너무 모르는 채 외부 탓만 많이 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한국에 살지만 좀 담대한 마음을 갖고 전 세계를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통 크게 보면서 자기 포지셔닝을 해야 해요.

 

너무 배부른 처방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그래도 가족이 있잖아요.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가요. 외국에서는 취업이 안 되거나 실직하면 바로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은데, 부모가 얼마나 큰 안전판입니까. 그런데 헬조선이라느니, 전부 사회 구조 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구조 탓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주도적으로 타파할 용기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정부에 어떤 사항을 요구할 때도 지금은 너무 얌전합니다. 1960년 4ㆍ19혁명 때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그 강고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는데 말이죠. 요즘에는 너무 협소한 주제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있었던 오큐파이 운동처럼 우리도 국가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 직접 민주정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어요. 사회적 이슈를 공격적으로 외칠 시점이지요. 너무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면서도 당당하게. 우리 같은 노년 세대의 앞날엔 젊은 세대가 기백이 있어야 희망이 있는 겁니다. 작중에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역시 생활밀착형 정치 혁명이니까 앞으로 한국에서도 지향할 정치모델이 될 수 있겠지요, 한국 청년들도 선거 때 일당 받는 알바만 하지 말고 누가 진정한 정치 리더인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 소개란에 ‘공맹(孔孟)의 정원에서 벗어나 노장(老莊)의 황야로 뛰어들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정원이 갑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혹시 황야에서 지치고 힘드시면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있을까요.

 

기자의 업무는 팩트파인딩(fact finding)이죠. 사실을 확인하고 논평해야 하는데 우선 사실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논평할 때 의문이 들었어요. 다원화된 가치관들 속에서 과연 내 가치관이 옳은 것인가. 가령 경제문제에 대해 칼럼을 쓸 때 제일 쉬운 게 ‘재벌 조지기’(재벌 비판)인데요. 글은 쉽게 쓰는데 과연 그게 전체 맥락으로 보면 옳은 지적인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들어요. 재벌을 오너 개인 것으로 보면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소액 주주를 염두에 두면 오너는 대표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뿐이거든요. 예를 들어 삼성은 이씨 패밀리 것이라기보단 국민 기업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논평 쓰는 게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반면 창작이란 것은 이상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어 논평보다 훨씬 자유롭지요. 정원보다 거친 황야가 더 좋습니다.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 저널리스틱한 글쓰기도 당분간 계획에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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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독서가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궁극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큰 화두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로 운명이 과연 작동되는 것일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품고 그걸 소설을 통해 풀어 나가려고 상상력을 넓히는 한편 관련 서적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그런 답변은 고전을 통해 선현들이 많이 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노자〉,〈장자〉,〈주역〉 같은. 서양 고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책을 한 권씩 읽어 내기가 쉽지는 않아요. 뜻을 음미하면서 오늘날 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지요.

 

한편으로는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 머리에서 나온 지식이 우주의 지식에 비해서는 너무나 적은 양이거든요. 우주의 진리에 비하면 인문학 지식은 티끌만큼도 안 될 거예요. 그에 비해 자연과학의 지식은 진리의 바다에서 거의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과학을 더 공부해서 균형을 맞추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주 탄생의 비밀, 생명의 기원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사람들은 안방에 앉아 머리만 굴려서 얻은 인문학적 사유의 결론이 진리인 것처럼 주장을 하거든요. 요즘 자연과학의 가치를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은빛 까마귀』, 『개마고원』, 『소설 서재필』 등 역사와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을 집필하셨습니다. 『여신』도 그렇고요. 향후 집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상설 선생 서거 100주년이 되는 내년 발간을 목표로 소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1907년 헤이그 밀사로 파견된 분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만 주목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선생은 일제에 잠깐 저항하다 그친 여러 지식인들과 달리 구체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만주,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세밀한 무장 투쟁 중장기 플랜을 세웠어요. “이토 저격은 테러 행위가 아니라 전쟁 행위”라는 안중근 선생의 사상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당시 독립군과 지식인 사이에서 존경받던 선생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이승만보다 먼저 민족지도자로 추대됐을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작가적 사명감으로서 이분을 부각시켜야 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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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고승철 저 | 나남
현실인가, 허구인가. 작가 고승철은 그 경계를 가벼이 넘나들다 어느새 그것을 지워버린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읽을 때는 참으로 현실적이다가도, 자수성가한 노인의 발칙한 프로젝트와 마주하다 보면 그 도발적 상상력에 절로 아연실색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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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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