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질 같은 외로움 :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의 블랙 앤 화이트 월드
영화는 밝았다 어두웠다, 우울했다 경쾌해졌다를 반복하며 외로움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격정적인 장면은 없지만, 관객들의 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 격랑의 파도를 오가는 순간도 있다.
외로움은 딸꾹질 같다.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게 불쑥, 평온한 호흡을 끊어놓는다. 누구도 제대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 숨을 참거나, 물을 마시거나, 또 누군가가 쿵 심장이 내려앉는 겁을 줘야 한다. 원인도 해법도 모른 체 딸꾹질이 멈추는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살지만 또 언제 요상한 소리를 내며 내 호흡을 흔들며 찾아올지 모른다.
이와이 슌지는 그 지독한 외로움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립반윙클의 신부>를 통해 얼핏 우리와 동떨어진 세상 속 이야기처럼 보이는 기묘한 이야기를 우리의 맨살과 맞닿아있는 까끌까끌한 옷처럼 직조해 낸다. 그리고 그 속에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워 끙끙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와이 슌지라니, 그 이름에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추억이 담겨있다. 마치 오래 전 연애편지를 찾아낸 순간처럼 낭만적이다. 물론 이와이 슌지를 모르는 지금 세대에서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러브레터>를 체험한 세대들에게 그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였던 적이 있다. 이와이 슌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청춘의 감정과 아주 오래된 복고의 감성과 맞닿게 하면서 새로운 감성을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는 아주 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툭 건드렸다.
2011년 미국에서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우리나라에 개봉하지 않아 이와이 슌지를 극장에서 만나는 일은 2004년 <하나와 앨리스> 이후 자그마치 12년만이다. 그러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그 작품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핏 봤을 때는 오래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훨씬 더 성숙해진 것 같은 얼굴을 만났다.
이와이 슌지는 스스로의 작품을 화이트와 블랙으로 나눌 수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와이 월드의 화이트를 담당하고 있는 작품이 잔잔하고 예뻤던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라면, 어둡고 사회비판적인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블랙 계열이다.
제목과 분위기로는 화이트 계열처럼 보이지만 <립반윙클의 신부>는 블랙 이와이 월드에 가깝다. 카메라는 늘 숨죽여 사는 주인공처럼 숨을 멈춘 것처럼 요동 없지만,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잔인하고 냉정하다. 하지만 그 냉정함 속에 맞잡은 손, 껴안은 사람의 체온을 믿는 마음을 녹여낸다. 그래서 SNS 세대를 바라보는 이와이 감독의 시선은 냉정하지 않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여자의 속 깊은 관계와 사랑에 가까운 우정은 그의 전작 <하나와 앨리스>와도 맞닿아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를 보고 있자면 흑과 백으로 나누던 이와이 월드가 그 경계를 없애고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밝았다 어두웠다, 우울했다 경쾌해졌다를 반복하며 외로움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격정적인 장면은 없지만, 관객들의 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 격랑의 파도를 오가는 순간도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 못지않은 긴장감과 반전을 품고 있어 두 시간의 상영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백퍼센트 자연 채광만을 이용해 촬영했다는 영화의 시선은 그래서인지 한결 따스하고 편안하다. 물론 이와이 슌지의 영화 속 반전은 억지스럽지 않고, 훨씬 더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다.
2011년 하반기 이야기를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실제 촬영까지 준비기간은 4년 정도라 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감수성을 늘어놓기에 앞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철학이 녹아 있다. 이야기가 구체화되면서부터 여주인공에 쿠로키 하루를 염두에 뒀다고 하니, 영화의 중심에 쿠로키 하루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2014년 작품 <작은집>으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경력답게 쿠로키 하루의 연기는 매순간 관객을 공감하게 만든다. 손쉽게 이용당하고, 매번 속아 넘어가는 약자이며, 바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번 당하지만 매순간 캐릭터에 설득된다. 비현실적인 일본사회의 단면을 통해 돈을 버는 아무로라는 인물을 맡은 아야노 고의 연기 역시 매력적이다. 도통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끝내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어야 하기에 살짝 어리숙하고, 또 살짝 비열해 보이는 아야노 고의 얼굴이 적격이다.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과 살짝 튜닝이 덜 된 것 같은 심리묘사의 이유에는 이번 개봉작이 축소편집본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179분 감독판이 개봉했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해외 관객들을 위해 이와이 슌지가 직접 커팅한 인터내셔널 버전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인물들의 더욱 내밀한 내면은 이와이 슌지가 직접 쓴 동명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를 통해 확인하고,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몇 가지 이야기의 궁금증은 혹시 감독판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지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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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이와이 슌지 > 저/<박재영> 역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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