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여섯 번째 소설집 『중국식 룰렛』 펴내
작년 여름에 책장 정리를 했는데 「별의 동굴」의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을 느낀 거예요. 책장에 책이 정말 많은데 ‘다 읽을 것도 아닌데,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소설집 『중국식 룰렛』에서 은희경의 손끝은 일상의 사물들을 더듬는다. 술, 옷, 신발, 가방, 책 , 음악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들춰낸다. 그 속에는 행운과 불운이 교차했던 순간이 있고,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풍경이 있다. 낯설지 않은 소재만큼이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이 빼곡하다. 은희경 작가와 나눈 이야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술과 책에서 시작된 대화는 바뀌지 않는 세상과 바람과 달리 흘러가는 삶, 고독한 존재에 대한 것으로 가지를 뻗어갔다. 『중국식 룰렛』이 그러하듯.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소설집에 실린 여섯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말하나 마나 술”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하셨어요(웃음). 표제작인 「중국식 룰렛」에 위스키가 등장하는데, 평소에도 좋아하신다고요(웃음).
네, 좋아하는데 바에 가서 마신 경험은 별로 없고요. 그냥 가끔 면세점에서 사와서 마시는 정도인데 그래도 좋아해요. 「중국식 룰렛」에 위스키 종류가 많이 나오니까 다 맛보고 쓴 줄 아시는데 상상하면서 쓰는 게 재밌어요. ‘아, 맛있겠다’ 하고(웃음).
2008년부터 올해 봄까지 발표하신 작품이 실려 있는데요. 오래 전 작품을 다시 만나는 기분은 어떠셨어요?
진짜 재밌더라고요. 저는 한 번 쓰고 나서는 절대 안 읽어보거든요. 쓸 때 지겨울 만큼 그 사람이 되어봤고, 결별을 해야 또 다른 작품을 쓸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는 건 사랑이 식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다시 안 보는데, 이번에 소설집으로 묶으면서 8년 전에 썼던 걸 다시 보니까 재밌었어요. 그 사이에 제가 변했다는 것도 느꼈고요. 「중국식 룰렛」이랑 마지막 작품(「정화된 밤」) 사이에 8년이라는 차이가 있으니까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했어요.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만 엮으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술에 관심이 있으니까 술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쓰고 나니까 재밌더라고요. 저는 이야기를 넓은 데에서부터 좁혀가기 때문에 시작할 때 많이 힘들거든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런데 이건 좁은 데서 넓혀가는 이야기라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어떤 물건을 정해서 쓰는 것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잡지사에서 수트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아서 쓰게 됐고요. 아예 이 컨셉으로 책을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신발, 가방에 대한 이야기도 청탁을 받고 쓴 거예요.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이니까, 각각의 작품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드세요?
그렇게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근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상상해 내는 거니까 독자 분들이 ‘나도 가방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도 신발 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는 식으로 서로 생각을 떠올리면서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중국식 룰렛」은 책 전체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았어요. 선택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주잖아요.
맞아요. 우연, 행운, 불운, 그런 것들을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그것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른 거고, 그런 상황에서 게임처럼 ‘이게 나한테 행운일까 불운일까’를 시험해보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별의 동굴」의 인물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는데, 절체절명의 시기에 만나게 되죠.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더라고요.
그 전의 장편에서도 여러 번 썼지만, 우리가 너무 커다란 틀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인생이 이렇게 다 정해져 있는 건가, 이런 일만 죽도록 하면서 끝나는 건가, 이런 걸 원하게 되어 있는 건가,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건 없나’ 이런 식의 생각을 소설에 많이 썼는데요. 그렇지만 조그만 우연 같은 것들이 우리 인생에 조금씩 길을 내주고, 바꿔주고, 위로를 주기도 하고, 같이 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별의 동굴」에서 주인공이 책장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굉장히 긴박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데, 작가님께서도 감정 이입이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제가 작년 여름에 책장 정리를 했는데, 그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을 느낀 거예요. 책장에 책이 정말 많은데 ‘다 읽을 것도 아닌데,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의 권위에 의지해서 나를 어떤 식으로 보이고자 했던 불안함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내 스스로가 별 볼일 없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마음 같은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왈칵 하는 거예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심리가 너무 안쓰러운 거예요. 모르겠어요, 더 젊을 때 썼으면 그런 나를 비판하는 식으로 썼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인생에 대한 연민 같은 걸 많이 쓴 걸 보니까, 제가 힘들었던 것에 대해서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별의 동굴」을 읽을 때 주인공이 책을 던져버리고 짓밟고 하는 장면에서 저도 자기 파괴적인 충동 같은 게 생기면서 스스로 시원한 감정이 조금 느껴졌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책의 권위에 기대려 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어요(웃음).
이 소설에서는 책이 나오지만, SNS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자꾸 어떤 걸 연출하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그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갇혀 있는 거잖아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었어요.
아직도 책상에 앉으면 도망가고 싶어요
작가의 말에서 “책상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번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조금 변했다고도 덧붙이셨고요.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 건가요?
항상 도망가고 싶죠. 첫 책, 둘째 책 정도가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첫 장편은 공모에 응모했던 작품이었으니까, 정말 읽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뿜어져 나오듯이 썼거든요. 그때는 진짜 재밌었어요. 이후에는 너무 자기검열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일단 직업으로 글을 쓰는 건 다르죠. 일기 쓸 때는 도망가고 싶지 않잖아요.
자기 검열이 심해졌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작가는 새로운 걸 써야 되잖아요. 그런데 경력이 많이 될수록 이미 쓴 작품이 있기 때문에 ‘이게 새로운 이야기인가’에 대한 검열이 많고요. ‘다른 사람이 다 했던 이야기 아닌가’, ‘다른 사람이 충분히 한 이야기인데 무엇 때문에 또 하나’ 싶기도 하죠. 그리고 ‘이게 지금 동시대인들에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나만의 독백이 아닌가’ 이런 검열도 심하고요. 타인의 것, 다른 세계하고 비교해서 ‘이건 다른 사람이 하면 훨씬 잘 하고, 다른 사람이 이미 한 이야기인데 또 할 필요가 있나’ 이런 검열도 있죠.
2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셨잖아요. 거기에서 비롯되는 부담감이 자기 검열을 부추기지는 않나요?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소설을 쓸 때 ‘내가 중견 작가니까 이런 정도는 써야 되는데’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완성할 수 있을까, 완성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쓰기도 해요(웃음). 후배 작가들하고도 동료라고 생각하지 ‘나는 선배작가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되는 후배들도 많고요. 그래서 경력에 걸맞은 작품을 써야 된다는 부담은 별로 없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이 작품은 처음 써보는 거니까 초보잖아요. 그리고 예전에 썼다고 해서 지금 또 쓸 수 있다는 건 절대 보장되는 게 아니기도 하고요(웃음).
일부에서는 이번 작품과 함께 작가님의 변화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이전의 작품들을 위악이나 불편한 소설로 설명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달라졌다는 건데요. 어떤 영향을 받으신 것 같으세요?
지금 새로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있는데, 그게 30년 전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예요. 그런데 최근에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 여성 이슈를 봤을 때 그때의 그 이야기를 왜 지금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세대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 하게 됐고요. 지금까지 제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물들은 이런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세상이 바뀔 수 없으니 나라도 바뀌겠다, 나만 잘하면 돼’ 하는 식으로 자기 안에서 해결하려는 태도였는데, 그런 게 너무 안이한 선택이었나 생각되는 거예요.
앞으로의 소설에서는 달라질까요?
아직 소설이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쓰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소설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쓰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쓰는 거랑 어차피 연대해도 소용없으니까 나나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는 거랑은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런 변화가 소설 속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변화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썼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가 하루아침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해서 소설이 달라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인간이 무슨 일을 겪어서 바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 삶 속에 녹아 든 영향이 있고 제 소설 속에도 그런 것들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1970년대 후반의 여자대학 기숙사를 배경으로 집필 중이시라면,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이 되나요?
제가 기숙사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 사회를 묘사할 때 디테일에는 들어가 있겠지만, 전하고 싶은 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니까 새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겠죠. 마치 『새의 선물』이 시대적 배경이나 디테일은 1969년이지만 작품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제가 1995년에 느꼈던 문제의식인 것처럼요.
「별의 동굴」과 「불연속선」은 개인적 경험이 영향을 미친 작품인데요. 일상의 이야기를 소설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작업을 경계할 때는 없으세요?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조금 소심해서 누구랑 관련된 일을 소설로 잘 못 써요. 누구한테 들었다든지 누군가의 사생활에 해당되는 일들을 글로 쓰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어쨌든 발상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시작되는 것이지만,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사건을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거라서 시작이 너무 어렵긴 해요. 가령 제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소설을 썼는데 뚱뚱한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에 뚱뚱한 사람이 없어요. 그렇지만 뚱뚱한 사람이 겪을 만한 불편 같은 걸 끊임없이 상상을 해요. 사람들도 관찰하고요. 만약에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는 그 사람 이야기는 못 쓰는 거예요. 지금은 기숙사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옛날 기숙사 친구를 못 만나겠어요. 자기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까 봐요. 그래서 저는 앨리스 먼로 같이 자기 고향이나 살고 있는 곳 주변의 이웃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쓴 사람을 보면 정말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이웃들하고 사이 좋게 지내냐고요(웃음).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식 룰렛』의 해설을 쓴 황정아 평론가는 “이런 삶이 아니어야 했는데 결국 이런 삶이 되어버렸어, 라는 희미한 탄식이 어울릴 인물”이 많다고 썼더라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별의 동굴」 인물이 조금 그렇죠. 「장미의 왕자」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미움 받는 아이야 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나오고요. 「불연속선」의 남자는 자기 한계를 정해 놓은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약간 「대용품」의 주인공과 비슷하죠. ‘결국 이런 삶이 되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하는 건 「별의 동굴」의 회한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인생의 회한이라기보다 삶이, 각자의 지선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따라서 흘러갔다가 만났다가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자기가 생각했던 인생이 아니라는 건 다른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정화된 밤」의 여성도 자기가 좋아했던 남자가 아닌 사람하고 결혼해 버리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인물이니까요.
어차피 누구의 삶도 생각했던 바와는 다르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진실이라서 서글픈 이야기 같아요.
「중국식 룰렛」에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더 필요할 뿐인 것처럼”이라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인생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다는 이야기 같아요. 그런데 왜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못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라고, 어차피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는 말을 기어코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같은 말을 하고 나면 불안해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금방 실망할까 봐요. 그래서 이렇게 행운을 받아들이고 불운에 대해서 경계하자고 말하고 싶은가 봐요. 그게 예전부터 일관된 태도 같아요. 어떤 소설에서는 비관주의라는 건 너무 좋은 거라고, 나쁘게 생각해 보면 그보다는 다 좋아질 것 아니냐고, 그런 식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이게 소심한 사람의 자기 관리법 같아요. 「정화된 밤」의 인물 같죠. 누구랑 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나쁜 점을 너무 많이 예상해서 그룹에서 환영 받지 못하잖아요. 그게 어쩌면 저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요(웃음). 그렇게 예상해 놓고 나면 행동력이 없잖아요. 이 소설집에서는 「불연속선」의 여성이 행동력 있는 사람인데요. 그 여성은 자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는 경솔한 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한 가지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해요. 그런 인물에 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그러지 못하니까.
2014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하셨을 때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여쭤봤어요. 작가님께서는 “아무도 잘못이 없는데, 서로 다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고독할까? 서로의 고독에 대해 왜 해줄 게 없을까?”라는 문제를 생각한다고 하셨고요.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은 찾으셨나요?
고독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썼어요. 사실은 그 문장 자체가 『소년을 위로해줘』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엄마하고 아들이 각자 자기 방에 있는데 엄마는 혼자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나는 내 방에서 거울을 보면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상대의 고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부분인데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서는 그 사람의 고독을 존중해야 된다고, 저 사람이 고독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독한 사람끼리 서로 연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답은 알 수 없는 거겠지만, 저의 중간 결론은 인간은 육신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육신은 공유할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이 아플 때 나는 안 아프잖아요. 육신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고, 그래서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부분이 있는 거고, 그래서 고독은 타고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고독은 싫으니까 어떻게든 서로 해소하려고 하는데, 고독을 해소하는 방식이나 시간이 서로 딱 맞을 수가 없어요. 저 사람이 고독할 때 나도 고독할 수는 없는 것이고, 서로 각자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어차피 맞춰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독을 받아들이고, 고독한 채로 저 사람의 고독을 존중해 주자는 거죠. ‘내가 있는데 왜 고독해, 내가 있는데 뭐가 고독해’라고 하는 순간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우린 어차피 고독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라는 태도는 아니겠지만, 저 사람한테도 고독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연대의 시작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개인을 존중하자는 이야기일 거예요. 그런데 개인들이 가장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 고독이 아닐까 싶은 거죠.
최근에 붙들고 계신 화두는 무엇인가요?
요즘 안 좋게 보는 일들이 많아요. SNS에서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에 불편한 일들이 많은데요. 제가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그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요새 말로 아재라고 하는 아저씨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하고 있게 됐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게 옳은 거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잘못된 옷인 줄 알지만 피부처럼 돼서 벗을 수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편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요. 예전에는 모든 사람의 안에는 자기 개인이 있는데 입혀진 옷 때문에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옷을 벗어버리면 자기는 너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저렇게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저런 사람한테까지 그렇게 개인이라는 것을 적용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극단적인 경우들을 보게 돼요. 그래도 저는 휴머니스트로서의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분노를 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많죠.
그리고 저는 뉴스 댓글 같은 걸 많이 보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겪고 상대하는 세계 안에서만 생각할 수가 있는데, 저는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동시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써야 하는 소설가잖아요. 그래서 ‘나랑 정반대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생각하면서 뉴스 댓글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데요. 너무너무 놀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인간을 이해하는 게 나의 직업인데 이런 사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아직 세상을 완전히 못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요즘 저의 질문이에요.
중국식 룰렛 은희경 저 | 창비
꾸준히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며 작품활동을 이어온 은희경은 빛나는 문장들로 독자들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이번 소설집 역시 각기 다른 성광과 매력을 뽐내며 일상의 우연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날들이 얼마나 공교롭게 우리를 이끄는지를 은희경 특유의 섬세하고 정련된 필치로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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