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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유혹이란 관계에 반응하는 떨림”

두 번째 에세이 『유혹의 학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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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유혹이라는 건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떨림이거든요. 겹침일 수도 있고, 어긋남일 수도 있고, 헤어짐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그것에 응답할 수 있는 감각을 만드는 것이 유혹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게 유혹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어요.

어느 나라든 유혹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관능적인 삶의 이서희 작가가 두 번째 에세이 『유혹의 학교』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솔직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던 그녀가 다시 한 번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유혹의 학교』가 겨냥하는 대상은 독자만이 아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 사이에서 유혹하고 유혹 당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삶도 예외일 리 없다. 우리는 유혹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상대의 매력을 탐험하고 소통의 폭을 넓혀가기 때문이다.

 

이 관능적인 이야기들은 작가의 페이스북과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연재됐던 동명의 칼럼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이서희 작가는 사랑과 이별, 관계에 대한 솔직한 경험을 털어놓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보편적인 감정들을 발견해 내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 글들은 ‘유혹’이라는 주제에 맞게 다듬어지고 새롭게 살을 덧붙여 가면서 『유혹의 학교』 안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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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학교』 독자들과 이서희 작가의 만남은 지난 30일 저녁, 상암동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곁에는 또 한 명의 매력적인 작가가 자리했다. 『스타일』, 『아주 보통의 연애』, 『애인의 애인에게』의 백영옥 작가가 초대된 것이다. 두 작가는 『관능적인 삶』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백영옥 : 『관능적인 삶』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굉장히 궁금해졌어요. 제가 야마다 에이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야마다 에이미가 에세이를 쓴다면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굉장히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리뷰를 쓰기도 했고, 이서희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서 연락을 드리기도 했어요.

 

이서희 작가는 “이렇게 유명한 작가 분께서 제 책에 대해 긍정적인 리뷰를 써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정말 감사했다”고 말하며 『유혹의 학교』를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서희 : 제가 의도했던 건 그런 거였어요. 껍질을 열어 보면 다른 무언가가 있고, 그걸 또 펼쳐 보면 다른 무언가가 있고,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큼 캐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를 만나가는 과정은 조금씩 조금씩 껍질을 벗겨 나가는 것일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삶을 살아가는 경험 속에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작은 모험들을 사소하게 실천해 보는 게 책을 읽는 일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즐거운 경험 중의 하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관점을 보여주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었는데, 페이스북 친구들이나 백영옥 작가님처럼 그걸 먼저 알아봐 주시고 말을 걸어주신 분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했죠.

 

아울러 이서희 작가는 “관능이나 유혹이라는 코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다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금기시되고 있는 주제를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두 작가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보다 많아지고 자연스러워지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백영옥 : 사실 유혹과 관련된 책이 잘 없고, 한국 문학에서 에로티시즘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잖아요. 전경린 선생님과 같이 90년대에는 매우 관능적인 묘사를 하는 작가들의 무리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소설들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도 하나의 장르로써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특히 이서희 작가는 한국과 미국, 프랑스 사회를 비교하며 유혹과 유혹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갔던 그녀는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미국 할리우드에 거주하며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쓰고 있다.

 

이서희 : 유혹에 대한 편견은 어느 나라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이미 많은 서사에 드러나 있는 것 같아요. 성경에서도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건 뱀과 이브의 유혹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신화에도 세이렌의 유혹에 저항하기 위한 이야기가 나오고요. 유혹이 파멸적이고 나쁘고 사악한 것으로 묘사가 되는 걸 보면, 유혹에 대해 뭔가 불길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밌는 건 많은 경우에 유혹을 했던 사람조차도 자신을 파멸시켜요. 필름 느와르를 봐도 팜므파탈들이 다 죽거든요. 결국 그 서사 안에서 처벌당해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보고 자라면서 유혹 하는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회적으로나 구조적, 문화적으로 조금 더 여성의 위치가 안정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유혹이 조금 더 자유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랑스와 미국에 있으면서 저의 행동 방식이나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 해석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너무나 다른 거예요. 한국에 있을 때와 어마어마하게 다른 평판을 들었거든요. 그 차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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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작가

 

 

유혹, 삶이라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관능이라는 건 성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기능을 총괄하는 형태의 것이다”라고 말한 이서희 작가는 “그런 것들을 풍부하게 만들면 느끼는 것 또한 많아지고 삶을 감각하는 형태 자체도 변화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와 미국에 머물면서 자유로워졌다는 그녀는 한국에서 성장하는 동안 ‘좋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건너가고 난 후에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서희 :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뒤늦게 다시 한국 사회가 보이더라고요. ‘만약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도 하거든요. 그렇게 다시 한국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했던 작업이 제 이야기를 쓰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제가 부당함을 많이 겪었다는 걸 알게 됐고요. 한 번도 거기에 저항해본 적도 없고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 뒤에 다시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건 모든 상황 자체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저는 그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쉽게 다뤄지지 않지만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들을 이야기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관능과 유혹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유혹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혹의 학교』 안에서 사랑과 이별의 경험을 솔직하게 들려줬던 이서희 작가는 “상처를 받는 일도, 상실의 과정도, 결국에는 다 배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를 넓혀보는 과정인 것 같다”며 그런 점에서 이별 안에도 감사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서희 :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그 부분에 있어서 정말 오만하게 살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에는 나의 균형과 삶의 유연성도 유지하게 되는 것 같고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유혹의 이야기가 성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에는 나와 세상과 삶에 대한 학습이고, 삶이라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사실 가장 중요한 과목이죠.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건데, 이걸 얼마나 잘 학습할 수 있는가가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잘 헤어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됐어요. 잘 헤어지는 일은 가장 제대로 배워야 될 일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가장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백영옥 : 어제 제 책의 최종 교정을 보면서 썼던 말이 떠오르는데요. 다가가는 마음보다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관계를 잘 시작하는 능력이랑 시작된 관계를 잘 유지하는 능력은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리고 그런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스스로한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다는 건, 나한테 꼭 필요한 일을 아는 것과도 닿아있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이서희 작가님께서 유혹의 이야기가 삶의 학교라고 이야기하신 것과도 서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이 책이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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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작가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두 작가의 대화가 끝난 후 짧은 시간 동안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유혹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묻자 이서희 작가는 “목적에 대해서는 딱히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삶을 얼마나 자기답게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제대로 내 삶을 유혹하고 유혹 당하는가, 그런 것들이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고 답했다.

 

이서희 : 어떻게 보면 유혹이라는 건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떨림이거든요. 겹침일 수도 있고, 어긋남일 수도 있고, 헤어짐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그것에 응답할 수 있는 감각을 만드는 것이 유혹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게 유혹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어요.

 

이 날의 마지막 질문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이서희와 백영옥, 두 명의 매혹적인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백영옥 :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나에 대해서 잘 아는 거죠. 한국 사회에는 유독 그런 프레임이 강한 것 같아요.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사는 일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서 제일 힘든 건 그냥 나로 사는 것 같아요. 역할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이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살아서 생기는 문제도 많은 것 같거든요.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고, 그러려면 내가 어떤 걸 했을 때 행복하고 어떤 걸 하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고, 그래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와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이서희 :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한테 가혹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뭔가 하나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거든요. 가끔 자책의 힘은 너무 세요.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자기를 잘 돌보고 보살피는 거예요. 그게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가 되면 안 되겠지만요.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예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잘 보살피고 살면 그게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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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학교이서희 저 | 한겨레출판
유혹에 기반을 둔 소통과 배려의 여정이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한 관계 형성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감각적인 문체로 보여준다. 유혹은 상대가 있는 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고, 유혹의 대상은 타인으로만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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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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