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아이들이 타고난 본성대로 살 수 있었으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펴내
아이들을 자기 본성대로 살게 했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년 소설을 쓸 때도 항상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쓰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내게 하고, 어른들도 ‘내 아이도 이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만 되더라도 좋을 것 같아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이금이 작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
『너도 하늘말나리야』,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유진과 유진』의 이금이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청소년 문학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작가는 최근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통해 첫 역사 장편소설을 선보였다. <채널예스>를 통해 사전 연재되며 독자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수남과 채령, 두 소녀의 성장기와 그 시절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반도에서 시작돼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으로 이어지는 녹록치 않은 여정은 혼란의 시기 격변하던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교토, 요코하마,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을 직접 답사하며 역사의 흔적을 되짚었다.
지난 23일, 이금이 작가와 만나기 위해 광화문의 한 카페를 찾은 독자들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작품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책을 출간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듣기까지가 가장 설레면서도 두려운 것 같아요. 독자 분들이 이번 작품을 어떻게 읽어 주실까, 이전 작품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이번 작품 속에서 작가의 성장을 보셨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저도 오늘처럼 독자 분들과 오붓하게 만나는 자리는 처음인데요. 저에게 굉장히 힘이 되고 앞으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이 날의 만남에 초대된 독자들은 모두 오랫동안 이금이 작가의 작품을 사랑해 온 이들이었다. 아이와 함께 『너도 하늘말나리야』, 『벼랑』을 읽으며 팬이 되었다는 부부, 유년 시절 ‘이금이 선생님 같은 작가가 되어야지’라는 꿈을 꾸며 자랐다는 앳된 선생님, 한 지역의 좋은 아빠 모임을 통해 작가와 인연을 맺었다는 젊은 아빠들, 그리고 동료 작가이자 애정 어린 독자로 곁을 지키고 있는 윤혜숙 작가가 함께했다.
특히 윤혜숙 작가는 “지금까지 이금이 선생님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시길 독자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성장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성장하신 게 맞는 것 같다”는 말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의 출간을 축하했다. 『뽀이들이 온다』, 『밤의 화사들』, 『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 역사를 들려주었던 그녀는 “청소년 역사 소설은 단순히 머리로 상상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자료 조사도 많이 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선생님의 취재 노트를 보고 ‘역시 쉽게 나온 소설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핍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이금이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의 집필 과정과 그 안에 담긴 고민까지 솔직하게 들려줬다. “이야기가 가슴 속에서 어느 정도 숙성이 되면 ‘이제는 꺼낼 때가 됐다’는 게 감으로 온다”는 작가는 “지금도 내 가슴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마치 빵 반죽이 부풀듯이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역시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이야기라고 밝혔다.
“몇 년 전부터 신문의 책 리뷰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글자만 나오면 사서 모았어요. 그렇게 읽은 책이 100권도 넘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서 완성하기까지 햇수로는 3년 정도 걸린 것 같고요. 집필하고 수정하는 데에는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이어서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쓰도록 동기부여를 한 건 등장인물들의 행로였다’고 말하며 집필 계기를 들려줬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해서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쓰자는 생각보다, 수남이라는 인물이 먼저 가슴 속에 들어온 거예요. 수남은 한반도를 지나서 중국과 유럽 대륙을 지나는 여정을 이어가잖아요. 그런 인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공간을 확장시킨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거든요. 여성 3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제가 이사벨 아옌데라는 작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분이 쓴 여성 3부작이 있어요.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 그 분은 이미 하고 계셨던 거죠. 그 중에 『운명의 딸』이라는 작품을 봤는데, 제가 쓰고 싶었던 내용이었어요. 한국 소설에서도, 특히 청소년 소설에서도 그런 인물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하고,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당시의 시공간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그리는 건 사실 어렵지 않았어요. 그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일 힘들었던 건 당시의 구체적인 배경을 묘사하는 거였어요.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이고, 현지에 취재를 간다고 해도 그 시대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잖아요. 그래서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찾아서 봤어요. 그 공간을 익숙하게 그려야 하니까요. 저는 항상 작가가 인물이나 시간이나 공간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은 살아보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그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기까지가 힘들었고, 역사 소설을 쓰시는 다른 작가 분들이 존경스러웠어요.”
이야기 중간 중간, 독자들은 이금이 작가의 지난 작품들에 대해 물었다. 한 독자는 ‘가정 안에서 결핍을 경험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는 이유’를 묻기도 했다.
“저는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을 굉장히 재밌게 읽으면서 자랐어요. 그 안에 있는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 『작은 아씨들』 같은 이야기들이 저에게 ‘동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모델이 되어주었는데요. 그 작품들이 모두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역경을 헤치고 나가서 행복을 얻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려고 생각했을 때 그렇게 쓰는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제가 재밌게 읽었던 책들을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제가 결혼한 후에 10년 동안 시골에 살았었는데, 농촌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았어요.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소희처럼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많았고,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같은 경우도 실제 상황은 달랐지만 모델이 있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결핍으로 인해서 성장하고 결핍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어릴 때는 가난보다는 부모의 부재가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결핍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마음과 시선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편 이금이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한국 작가로 박경리 선생을 꼽기도 했다.
“저로 하여금 ‘작가는 이런 거로구나’를 알게 해준 작품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예요. 제가 중학교 때 토지가 2부까지 나오고 나서 문예지에 연재되고 있었는데, 2부를 책으로 읽고 너무 재밌어서 달마다 연재를 기다리면서 읽었던 생각이 나요. 그 이야기가 묶여서 나오면 1권부터 다시 읽고, 그렇게 토지를 몇 번을 읽었는지 몰라요. 전집으로 나왔을 때 너무 행복해 하면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다시 처음부터 보기도 했어요. 저한테 영향을 준 국내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박경리 선생님이세요. 그 분의 소설을 보면서 제가 작가 수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해 윤혜숙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고 나서 ‘청소년판 토지 같다’는 이야기를 SNS에 쓴 적이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토지』가 생각났다. 긴 시간 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닮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쓸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거였다”고 밝힌 이금이 작가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사실은 강휘라는 인물을 굉장히 찌질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지금 작품에 그려진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지식인 같은 인물로 만들 생각을 했었어요. 만약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썼으면 그렇게 그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청소년 소설이고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 강휘가 지금 같은 인물로 변화된 건데요. 작품에서 강휘가 완전한 인물은 아니잖아요. 저는 청소년들이 한 번쯤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스러져 간 인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바랐어요.”
그 결과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게 되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사람들은 다들 독립투사이거나, 아니면 일제의 압제에 신음하면서 인생의 낙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암흑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까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 싶더라고요. 작품 속에서 채령과 사귀는 정규도 독립 운동을 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청년인데 연애도 하고 싶을 거잖아요.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제가 이 작품을 쓸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거였어요. 단순하거나 이분법적으로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요. 작품에서 김구 선생의 입을 빌어서 말했듯이, 모든 사람은 오욕칠정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런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단순히 악인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이유를 주고 싶었고요.”
채령과 함께 작품의 주인공인 수남은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를 오가며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 있는 소녀다. 그녀를 통해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은 어떤 삶을 그리게 될까. 독자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이금이 작가가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자기 본성대로 살게 했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년 소설을 쓸 때도 항상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쓰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내게 하고, 어른들도 ‘내 아이도 이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만 되더라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누군가를 변화시킨다기보다, 조금 다른 마음과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계기만 돼도 좋겠어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이금이 저 | 사계절
“언제든 자신의 길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소녀의 매혹적인 인생 여행”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이 말 한마디로 당시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인생을 살아 낸 사람이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일곱 살 소녀 수남은 논 서 마지기에 자작의 딸 생일 선물로 팔려 경성으로 온다. 그리고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땅에 다다랐다 돌아오는 인생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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