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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100% 사심으로 만난 ‘다른’ 남자들

『다른 남자』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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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카페 빨강책방에서는 『다른 남자』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편집자 한수미의 사회로 소설가 백영옥과 변호사 금태섭이 다른 삶에 대해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다른 남자』는 소설가 백영옥이 지난 1년여간 <경향신문>에 연재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그녀는 고루한 기득권층의 삶의 방식에서 살짝 빗겨나 자신의 향기를 품고 사는 꽃중년 남자들을 찾아 나섰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변호사 금태섭, 철학자 강신주, 신부 홍성남, 생활여행자 유성용 등 15명이 그들이다. 책에 달린 부제 ‘세상이 정의한 성공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정주행하는 이들’에 어울리는 남자들과 진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엮었다. 그녀가 조금 다른 각도로 사는 남자들과 소통하며 나눈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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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미 :『다른 남자』는 인터뷰집이라, 소설집이 나왔을 때와 기분이 다를 것 같다. 어떠한가?


백영옥 : 책 서문에도 썼듯이 나이 마흔에 닿으면서 인생의 마디가 매듭 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 ‘나에게 부족한 게 뭘까’ 고민하던 중에 인터뷰 제안을 받게 됐다. 그간 개인적으로 소진된 부분을 ‘다른 남자’들을 만나면서 채울 수 있었다. 보통 책을 내고나면 공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아예 펴보질 않는다. 하지만 이번 책은 달랐다. 읽어본 후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한 분 한 분 긴밀한 시간이었다. 단 한분 빼고 모두 피드백을 받았으니 이만하면 참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수미 : 인터뷰이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백영옥 : 100% 사심에 기반을 뒀다. 과거 잡지사 기자였기에 직업적으로 인터뷰할 일이 많았다. 마감이 촉박하고 분량이 많기에 좋은 인터뷰를 하기에 물리적으로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번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터뷰이의 전작을 다 읽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정말 알고 싶고 궁금 위주로 뽑는다. 또 경향 신문에서 다루었기에 이 지면과 인터뷰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로 선정했다.


한수미 : 실제 인터뷰에 참여하시기도 했는데 어떤 시간이었는가?


금태섭 : 첫 직업이 검사생활 12년이었다. 매일 인터뷰를 하는 생활이었다. 유명한 원로 배우가 한 말이 있다. “인터뷰를 할 때는 반드시 할 말을 두 개내지 세 개를 생각해서 가라. 뭘 묻던 상관 없이 꼭 그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인터뷰 할 때 마다 매번 무슨 질문을 할지 예상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려고 한다. 대답이 곤란할 때는 생각하고 답변한다. 백 작가님과의 인터뷰는 쌍방향 소통에 가까웠다. 정말 대화를 나눈 것이다. 


허수미 : 작년 한 해 인터뷰 하면서 가장 기대한 것이 있다면?


백영옥 : 뭔가 좀 듣고 싶었다. 인생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들이 있었다. 30대를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도 늘 한계가 느껴졌고 그 사이 여러 단어의 정의들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선택하다’가 능동태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르다. ‘선택하다’는 어쩌면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에 대한 돌파구이기도 했다.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소설을 쓰면 행사를 하게 되면서 독자의 질문에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허수미 : 옆에 계신 금태섭 변호사를 만난 후에 든 생각은? 금 변호사님은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백영옥 :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고 느꼈다. 여러 직업을 거쳤기에 다양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세상에 재미있는 분이 많은 세상을 꿈꿔본다. 개인적으로 특히 전문직에 계신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수혈 되어서 재미있는 소설을 집필해주셨으면 좋겠다.

 

금태섭 :『다른 남자』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교과서적인 삶과는 떨어진 분들이 많다. 안정적인 삶의 패턴에서 다들 한 번씩 뛰어내린 분들이다. 공무원 생활하다가 정치판에 잠깐 있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것에 절대적으로 관심이 많다. 나 자신은 상상력 없이 정해진 길을 걸으며 살아온 대단히 평범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허수미 : 인터뷰하면서 만난 다른 남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백영옥 : 한 마디로 하면 카르페디엠 정신이다.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건 거의 동일하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앞에 놓인 시간을 가장 깊게 체험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두 번째는 본질을 향해 달려가는 행동력이다. 누구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움직여지기는 어렵다. 인터뷰이들을 보면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 뛰어내린 분들이다. 인터뷰이 조수용은 최단 시간 네이버 부사장으로 승진했지만 돌연 그만두었다. 정점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는 ‘남을 설득하기가 너무 쉬워진 게 지겨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자 안정가도를 포기했다. 인터뷰로 만난 분들 모두 자신의 리듬과 맥박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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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를 묻는 질문에는 유일한 성직자 홍성남과 정신과전문의 서천석을 꼽았다. 


백영옥 : 홍성남 신부님을 만나면서 ‘분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깊게 하게 됐다. 사실 성직자가 분노한다는 게 잘 맞지 않는다. 신부님이 45살이 되었을 때 정신분석을 받은 뒤 죄의 근원을 따져보니 언제나 아버지의 문제와 얽혀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깨달았다고 한다. 남가좌동에서 신앙생활 하던 이야기들, 재개발하면서 지옥을 보셨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대자는 분노해야 하고 싸워야 한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신앙과 세속의 프레임을 오가며 읽었던 그의 세계들이 각별하다.


몇 번 용서해야 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화나고 욱하는 일이 많아, 성당 방 한구석에 샌드백을 걸어놓고 욕을 하며 마구잡이로 때렸다고 말하는 남자가 멀쩡히 근엄한 신부복을 입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마주 대해야 하는 걸까. 그가 ‘지각 있게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라는 스캇 펙의 말을 눈을 부릅뜬 채 인용하는 신부라면 말이다. 『다른 남자』



백영옥 : 서천석 선생님을 만나기 전 ‘인간에게 위로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하다가 우연히  ‘가장 큰 위로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그의 글을 읽고 꼭 만나 뵙고 싶었다. 


정신과에서는 치유란 말도 잘 안 써요. 치유가 된다기보다는 어떤 것은 시간에 묻고, 어떤 건 가진 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정신과 의사의 일입니다. 상처가 나으면 흉터가 되죠. 사실 흉터는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흔적일 뿐이에요. 흉터에 집착하면 인생이 상처에 얽매이게 됩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 역시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어요. 『다른 남자』


백 작가는 『다른 남자』가 각 세대에게 주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인터뷰 중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이 이야기한 직업관에 덧대어 이야기를 잇는다. 요즘 소위 대세 멘토들이 힘주어 말하는 관점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더욱 더 특별하게 들린다.


백영옥 : 서천석 선생님 인터뷰 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직업은 돈을 받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돈을 받고 내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흔히 꿈과 직업이 일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사실 그건 재미없다.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꿈 착취 사업이 너무 많다. 모두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누구나 두근거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삶도 아니다. 꿈을 꼭 직업으로 이뤄야하는 게 아니다. 


금태섭 : 꿈에 대한 강박도 일종의 사회적 압력이다. 꼭 정체성을 직업으로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직업 이후의 삶에서 정체성을 찾아도 되는데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루저가 되버린다. 내가 월급을 받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남자』는 40대가 다수인 인터뷰이 연령층의 독자들뿐 아니라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15명의 인터뷰들이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볼 수 있다.


백영옥 : 『다른 남자』가 두루 읽혔으면 좋겠다. 20대 청년들에게는 직업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30대는 사랑과 자기만의 사생활 사이에 균형 감각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얻을 수 있다. 40대는 공동체의 책임감에 대한 관점을 보여준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지키면서 연대감을 가꾸어 나가고자 한다.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백 작가는 대담 말미에 『다른 남자』를 펴낸 이후 평소 ‘다른 여자’ 시리즈를 구상하며 만나고 싶은 인터뷰이들을 떠올린다고 밝혔다. 성공이 다양하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색다른 이들과의 또 다른 인터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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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여기 모인 남자들의 특징은 사회의 통념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정의한 삶의 원칙대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밀려들어오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덜 흔들릴 수 있을까? 다소 무겁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들고 백영옥 작가는 특유의 친화력과 집중력으로 열다섯 남자들에게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메시지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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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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