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냉장고는 세계를 어떻게 바꿨나
차가움과의 전쟁, 『냉장고의 탄생』
냉장고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
냉장고는 '열펌프'다. 이 말로는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게 없겠지만,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면 놀라운 면이 드러난다. 이것은 우주의 순리를 거스르는 작은 반란이다.
냉장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냉장고는 특별한 게 없다. 이미 냉장고는 수억 대나 있다. 산업화된 나라에서는 여느 집에나 하나씩 있고, 미국에만 해도 두 대씩 가진 가구가 4분의 1이나 된다. 게다가 갖고 싶은 가전제품 목록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텔레비전 정도만 냉장고보다 우선순위가 높을 것이다. 차가운 것(아이스크림, 우유, 시원한 맥주)이 생각나면, 바로 냉장고 문을 열면 된다. 오늘날 차가운 것은 언제나 우리 옆에 있기에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문만 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1574년에 스페인의 니콜라스 모나르데스(Nicolas Monardes)가 쓴 글을 보면, 옛날에는 차가움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적당한 값에 얼음을 살 수 있었지만, '냄새와 나쁜 연기… 특히 썩은 식물, 나쁜 나무, 그리고 죽은 아기'가 있는 곳을 지나온 물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이 충고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오늘날에는 냉장고 덕에 사정이 달라졌다.
냉장고는 생활에 중심이 된다. 냉장고를 한 번 써 본 다음에는 냉장고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몇 가지 단순한(식품 포장에 적혀 있는)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갓 수확한 듯 신선한 식품과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신선한 음식이 떨어지면, 그저 슈퍼마켓의 더 큰 냉장고를 찾아가서 채워 넣으면 된다.
워낙 흔하게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냉장고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집 주방에 놓인 냉장고가 식품업계에서 냉장 체인의 끄트머리 덩굴손이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덩굴손은 수백만 개가 넘는다. 냉장 체인은 수많은 마디와 줄기로 이루어진 덩굴로 지구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이 덩굴을 통하면 농장과 어선에서 나오는 산물을 차갑게 해서 모든 식료품 가게의 냉장고까지 싱싱한 채로 배달할 수 있다.
냉장 체인 덕택으로 사막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먹을 수 있고,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얼음 음료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냉장 체인 덕분에 음식을 선택할 범위와 소비할 시간이 늘어났다. 신선한 식품이 상하기 전에 얼른 먹어 치우던 것은 옛날이야기이다. 고층건물, 지하철, 정보고속도로는 잊어라. 현대의 도시를 만드는 것은 냉장고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도시, 일본 수도권에서 하루에 먹어치우는 식사는 1억 끼가 넘는다. 이런 대도시에 냉장 체인 없이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혁신으로 가득한 요즘 세상에 냉장고가 뭐 그리 대단한가? 주방 하나만 봐도 온갖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전기밥솥, 전기오븐, 전자레인지…… 그리고 냉장고가 있다. 그러나 냉장고는 이들 주방 기기와는 다른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주방 기기들은 열을 일으키지만, 냉장고만은 그 반대다.
인류는 적어도 10만 년 전에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그 뒤로 내내 열과 빛을 통제했다. 그리고 우리는 겨우 백 년 전에 차가움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 승리의 혜택을 모든 인류가 골고루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날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쓴 수많은 학자들에게는 전혀 명료한 사실이 아니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던 학자들은 별똥별을 관찰하고 영구 운동 장치를 만들기도 했지만, 요정의 지혜를 빌리고 생쥐를 고문하는 등의 얼핏 보기에 기이한 일도 벌였다.
코르넬리우스 드레벨(Cornelius Drebbel),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제임스 줄(James Joule)같은 사람들이 밝혀낸 지식은 열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열역학은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는 물리학의 분야이다. 이 분야의 저자인 미국의 화학 교수 마틴 골드스타인(Martin Goldstein)은 열역학을 다음 한마디로 매우 적절하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냉장고의 원리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주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열역학과 관련되었다."냉장고는 '열펌프'다. 이 말로는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게 없겠지만,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면 놀라운 면이 드러난다. 이것은 우주의 순리를 거스르는 작은 반란이다.
냉장고의 탄생톰 잭슨 저/김희봉 역 | MID 엠아이디
이 책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차가움을 꿈꾸며 ‘차가움의 궁극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 덩이 얼음을 얼리기 위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라셀수스, 베이컨, 보일, 라부아지에, 돌턴, 아보가드로 등 근엄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물질의 본질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영국 브리스톨에 살고 있는 톰 잭슨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과학과 기술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즐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과 기술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발굴했다. 동물원 사육사, 여행작가, 들소 사냥꾼, 문서 정리원 등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과학을 배우고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톰 잭슨> 저/<김희봉> 역14,400원(10% + 5%)
차가움을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냉장고의 탄생』은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현대를 지나 미래까지 냉장고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가늠한다. 이 책은 냉장고의 역사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보여준다.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가지고 있던 물질과 자연, 그리고 세계에 대한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