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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똑같이 분노할 수 있다면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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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이익이나 강자의 복수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끝내 정의를 외면하면 결코 나도 정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나만 정의를 따르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정의의 보호를 받게 되는 최선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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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부당하고 일방적인 폭력이 일어날 때 다른 친구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나만 정의감에 불타 맞서 싸우거나 비판하는 건 올바른 용기일까요? 그러고 싶지만 그래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건 어른들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동료가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바른말 하면 오히려 그 화살이 나에게까지 날아오는 경우가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남의 불행이나 불공정에 대해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나만 정의를 지키면 손해고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 바보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여기는 순간 정의는 발붙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독일의 저항 목사 마틴 니뮐러는 히틀러의 악행을 비판하고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시 <그들이 왔다>는 왜 우리가 함께 정의를 지키고 실천해야 하는지,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 줍니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가톨릭 신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개신교인이었으므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이제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였습니다. 『목로주점』, 『나나』 같은 뛰어난 소설을 썼습니다. 그는 이미 당대에 성공한 작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흡족한 결실을 누렸습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시대를 연 선구자였습니다. 성공한 문인으로 마음껏 자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그는 한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공개 서한을 썼습니다. 그 편지의 대상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었습니다. 국가의 원수이며 최고통치자인, 가장 힘이 센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내용은 매서운 것이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라고 시작한 이 공개 서한은 그야말로 대담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무모한 편지를 썼을까요? 국가가, 정부가 혹은 대통령이 그에게 불이익을 줬거나 그를 괴롭혀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드레퓌스라는 한 육군 대위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그런 글을 썼습니다. 그는 드레퓌스라는 사람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러니까 완전한 남이었습니다.

 

드레퓌스는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죄로 몰려 군사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종신형에 처해진 사람입니다. 아무도 그 재판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내 일이 아니고, 게다가 그까짓(?) 유대인 하나 희생양으로 삼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거짓 선전에 속아 그가 진짜 적국인 독일을 위해 간첩 행위를 했다고 믿는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어렴풋하게 아는 사람들도 어쩌면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반신반의했습니다. 진실의 실체를 또렷하게 아는 사람들도 공개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자신은 프랑스에서 배신자 혹은 배신자를 옹호한 악당으로 몰릴 게 뻔하고, 자신이 그렇게 해봐야 사태를 바꾸지는 못할 거라고 포기하고 체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아무도 그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프랑스 사람들에게 매국 반역자라고 비난받았고 급기야는 징역형을 선고받아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습니다. 심지어 훈장까지 반납 당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며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투쟁의 결과로 억울한 드레퓌스는 풀려났습니다. 사면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면은 드레퓌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며 그렇게 된다면 정의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에밀 졸라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이라곤 석연치 않은 죽음뿐이었습니다. 가스 중독으로 죽었는데 그를 증오한 세력의 살인일지도 모른다는 평가였습니다.

 

왜 에밀 졸라는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무죄를 위해 많은 것을 잃고 전 국민의 증오를 한 몸에 받으면서까지 싸웠을까요? 그것은 정의가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이며 가치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절대로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에밀 졸라를 미워했고 박해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진실이 밝혀졌고 프랑스는 다시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혁명 정신을 되찾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며 정의로운 국가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의를 훼손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고, 그 점은 국민들에게 한없는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강자의 복수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끝내 정의를 외면하면 결코 나도 정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나만 정의를 따르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정의의 보호를 받게 되는 최선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연대가 없다면 정의도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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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김경집 저 | 샘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정의의 문제부터 함께 짚어보고, 동서양의 시대별, 인물별 정의에 관한 생각과 이론을 살펴본 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연대의 마음가짐과 실행 방법 등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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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집(인문학자)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가르쳤다. 인문학을 대중과 나누는 일과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있으며,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한 그러한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저서로 《책탐》《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고장난 저울》《완보완심》《인문학은 밥이다》《생각의 융합》《엄마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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