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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환상먹방

하루 한 상 – 열여덟 번째 상 : 안나푸르나 트레킹 먹거리 이야기 (AnnaPurna Trekking Foo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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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시작한 첫 장기 트레킹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말로만 듣던 네팔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라운드 서킷, 3300미터 지점. 이른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를 내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정확히 5416미터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해발 4천 미터가 가까워질수록 숨은 차고 소화는 안됐다. (전형적인 고산증 증상) 하지만 먹어야 걸을 수 있었다. 걷지 못하면 500만 원짜리 헬기를 타거나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야 했다. 심지어 맛있는 것도 너무 많았다. 이번 열여덟 번째 상은 길고도 순식간이었던 2주간의 히말라야 환상먹방.

에필로그, 남편의 상: 달밧 파워 (Dal Baht Power)

 

안녕하세요.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전면으로 나선 남편입니다. 제가 소개할 음식이 너무나 중요해서 부록에 머물지 않고 앞에 나섰습니다.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곳이 안나푸르나 봉우리 주변부입니다. 이 중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해발 4130m)까지 가는 ABC 트레킹과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을 중심부에 두고 최고 해발 5천 미터 중반을 넘어 주변 산간 지역을 2~3주간 돌아보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Annapurna Round Circuit)이 대표적입니다.

 

저희는 시간이 넉넉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이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의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네팔 트레킹 음식과 관련해서 여기저기서 나오는 말은 ‘위로 갈수록 먹을 게 없다.’, ‘어차피 고산지대 가면 소화가 안 된다.’ 이런 암울한 말들뿐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메뉴는 달밧. 포터 겸 가이드에게 이 집에선 뭘 먹으면 좋냐고 물어봐도 열이면 아홉이 ‘달밧’이었습니다. 트레킹 첫날 그 유명한 달밧을 시켜보았습니다. 오! 이 메뉴 구성은 쌀밥과 야채로 만든 커리, 매콤하게 담근 장아찌, 콩과 커리를 묽게 우려낸 국물, 튀긴 과자 한 조각, 우리네 백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모두 무한 리필이라니.

 

달밧의 달은 국물 커리를, 밧은 밥을 뜻한다고 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히말라야 트레킹 구역의 숙소에서 주문하면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이곳 숙소들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잠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가능하면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늘 수요 예측이 가능한 도시와 달리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미리 음식을 만들어 놓는 일도 없고 다음날 아침식사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무얼 몇 시에 먹을지 주문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물자 수송이 어려워 대부분의 재료는 인근에서 자라는 재료들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달밧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제각각입니다. 이런 특징은 앞으로 소개해드릴 음식들 모두가 갖는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싱싱함이 주는 기운을 연료 삼아 매일 저녁 달밧을 국밥처럼 후룩후룩 말아 먹고, 매일 아침 뚜벅뚜벅 걸어 올랐습니다.

 

무엇보다 달밧은 이곳의 포터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뉴입니다. 어떤 포터들은 달밧 그릇을 두 어번 쓱싹 비우고 배낭 두세 개를 합친 짐을 머리에 이고 산비탈을 오릅니다. 밥벌이의 고단함 앞에 여행객의 고난이란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입니다. 앞으로 풀어갈 히말라야 음식 이야기가 산더미인데 글이 자꾸만 산으로 가네요. 끝으로 우리가 너무 좋아한 시골 삼촌 같은 한 포터의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습니다.

 

DAL BAHT POWER 24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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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3일차 탄촉마을에서 먹었던 점심 달밧. 감자, 버섯, 잎채소 모두 직접 기르고 채취한 것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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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에야 농사가 시작이라 소 두 마리로 밭갈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감자, 마늘 등이 특히 잘 된다고 합니다.

 

 

소화 불량 사이에 비춘 한 줄기 빛

 

아침 6시 45분. 휴양도시 포카라(900m)를 출발해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 시작점인 베시사하르까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고갯길을 4시간 넘게 갔다. 버스에서 내려 맛없는 야채 커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지프로 갈아탔다. 이제는 공사 천지로 변해 걸어 올라가면 먼지만 뒤집어쓴다는 길이었다. 여기저기 뜯겨진 산등성이와 ‘중국수자력공사’ 표시가 보였다. 전력 상태가 안 좋아 정전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네팔이기에 어쩔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지프는 비포장도로를 튕기며 달리고 있었고 승객 5명의 몸도 프라이팬 속 팝콘처럼 마구 튀기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려 트레킹 시작점인 참제(1430m)에 도착했다.

 

다음날 본격 트레킹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동화 속 마을 같은 탈(1700m)에 도착해서 감자 야채 커리와 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햇살이 좋아 바깥에서 찬 바람을 맞고 먹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목이 말라 물을 계속 마시지만 그마저 흡수가 안되는 지독한 소화불량에 걸리고 말았다. 2시간 넘게 참고 걷다 먹은 걸 모두 게워내고 나서야 속이 좀 편안해졌다. 빈속이 되어 배가 매우 고팠지만 저녁은 뜨거운 물 한 사발에 남편님의 맨밥을 말아 조금 먹는 걸로 대신했다. 소화불량에 대한 불안감은 고산지역으로 올라가는 내내 쫓아다녔다. 3천 미터 중반대에서 또 한번, 4천 미터 넘자마자는 계속. 커리는 먹고 체해서인지 냄새조차 맡기 싫었다. 산속 숙소에선 거의 모든 음식이 기름에 볶거나 커리로 만들어진다. 나는 메뉴를 고를 수 없었다. 대신 닭이 낳은지 얼마 안된 계란, 사과, 야크 치즈 등 다른 싱싱하고 맛난 것들을 만났다. 이번 산행에 나와 동행한 책은 정유정 작가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 이야기 『히말라야 환상 방황』  이었다. 책에서 작가는 입맛에 안 맞는 음식 때문에 쫄쫄 굶다가 향신료를 뺀 볶음밥을 먹고 겨우 기운을 차린다. 너무나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올라갈수록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공감하며 위안 받는 기분으로 밤마다 읽었다.

 

그러다 4천 미터대로 진입하기 직전 마낭(3540m)이라는 나름 큰 마을에서는 소화 흡수가 활발했다. 그래서 시켜본 야크 스테이크. 우리는 야심 차게 1인 1스테이크에 도전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철판에 나온 고기를 한 점 썰어서 입에 넣은 순간. 한 줄기 빛이 내게 비친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트레킹 7일차에 고기로 기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높은 해발 5416미터의 ‘토롱 라 고개’를 넘고 나서는 닭, 염소 등 그 지역에서 키운 동물들을 저녁 메뉴로 먹었다. 말 빼고 보이는 동물은 모두 먹어본 셈이었다. 자연에서 뛰노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맛도 있었고 소화도 잘되고 힘도 났다. 고마워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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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야크와 야크 스테이크, 멋있는 게 맛도 있다.

 

 

네팔 안의 티베트, 그리고 티베트인 마을

 

네팔은 가로로 긴 모양이다. 아래의 긴 면은 인도, 위의 긴 면은 중국 티베트 지역과 맞닿아 있다. 대국 사이에서 피곤할 법도 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포용의 미덕을 잃지 않았다. 1950년대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했을 당시 발생한 많은 난민을 받아준 것이 네팔이다. 1천 년 넘게 인적, 물적 교류를 이어온 이웃나라 티베트를 도와준 것이다. 현재 2만 명 가까운 티베트인들이 난민 신분으로 네팔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마낭에 있는 흙집으로 만든 영화관에서 7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본 <티벳에서의 7년> 은 티베트 현대사의 비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네팔 안에서 티베트를 찾기란 매우 쉽다. 티베탄 브레드, 칼국수 같은 뚝바, 만두와 똑같은 모모 등 티베트 음식부터 다양한 티베트 수공예품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간중간 티베트인 마을들에선 티베트 사람들의 생활들도 엿볼 수 있었다. 티베트 불교 사원인 곰파,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다는 마니월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돌로 쌓은 지붕으로 만든 집은 지금 생각해도 이국적이다. 특히 나왈(3660m)이라는 마을에서 맞은 아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연거푸 몇 잔씩 들이키는 마을 사람들 따라 시켜본 티베트 차. 야크 버터, 우유, 소금이 절묘하게 맛을 이룬 덕에 속을 뜨근하고 든든하게 만들어 줬다. 지금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루트 중 상당 부분이 티베트 소금 상인이 지나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그 옛날 지프도 비행기도 없을 시절. 나귀에 소금 자루를 싣고 가는 티베트인을 상상하며 길을 걷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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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 마을 묵티나트(3760m)에서 먹은 모모와 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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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왈 숙소 부엌에서 티베트 차를 마시는 풍경

 

 

중독과 풍요의 안나푸르나 

 

10일 넘게 오르락내리락. 하루에 15~20km를 걷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철제 다리는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 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칼처럼 차가운 공기는 내 콧속을 베어 놓아 아직도 코피가 종종 나고 있다. 하루 트레킹을 정리하고 방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할 때마다 “내일 또 걸어야 되잖아. 지겨운 것 같아”라는 식의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고 새로운 길, 새로운 설산과 봉우리를 볼 때마다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하.. 이 마약 같은 안나푸르나. 뭐 이러냐 진짜”라고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고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히말라야에 오는지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안나(음식) 푸르나(아주 큰). 네팔어로 ‘아주 크고 풍부한 먹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많은 동물들이 안나푸르나의 풀을 뜯고 자라고, 사과, 오렌지 등 과일들이 안나푸르나의 바람으로 숨 쉬고 크며, 버섯, 베리 등은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키워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르콧(3550m) 특산품인 시벅토롱 베리 주스와 마르파(2670m)에서 마신 사과와 살구 브랜디 등은 안나푸르나의 맛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계절이 궁금해졌다. 여름 끝자락의 푸르름, 가을의 풍성함을 만나러 다시 오게 될 것 같다. 중독과 풍요의 안나푸르나로! 다시 히말라야 환상 먹방을 찍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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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봄. 여름과 가을의 풍경, 먹거리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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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저 | 은행나무
소설가 정유정의 첫 에세이. 다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생애 처음 떠나기로 한 여행지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소설《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 히말라야다. 그곳에서 펼쳐질 별들의 바다를 보기 위해 든든한 파트너 김혜나 작가와 함께 떠난 안나푸르나 환상종주 17일간의 기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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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윤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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