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와 중국어권 장르소설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6
2014년 중국의 출판 시장 규모가 39조 원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었다. 일본 등과 달리 중국의 출판 시장은 쇠퇴가 아닌 성장의 단계에 들어섰다. 단 두 편의 작품이지만, 그 가파른 성장세를 가늠하기 충분하다. 단언컨대 올해는 국내 시장에 중국의 장르소설들이 꽤 많이 출간될 것이다.
‘중국 미스터리’라는 말은 낯설다 못해 어색하다. 이제껏 국내에 번체나 간체로 쓰인 중국 미스터리는 소개된 적도 거의 없었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아예 없었다. 이런저런 연구서에 시조격인 명나라 말기의 ‘공안소설’이나 언급된 정도여서, 독자들은 중국 미스터리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작년 여름 출간된 단 한 편의 작품이 판을 뒤집었다. 조용히 등장한 찬호께이의 『13.67』은 마니아의 입소문으로 서서히 달아오르더니, 작년 한해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장르소설이 되었다. 홍콩을 배경으로 1967년에서 2013년까지의 사건을 되짚어간 이 작품은 홍콩이라는 시공간의 역사적 무게와 수수께끼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걸작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갑작스레 출간된 2013년산(産) 중국 미스터리는 국내 독자들은 물론 출판 관계자들에게도 당혹감을 안겨줬다. 『삼국지』나 『서유기』를 떠올리며 ‘그래, 원래 중국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라였지.’라고 슬쩍 얼버무릴 수는 없는 법. 우리가 알 수 없는 사이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국 미스터리는 크게 본토 중국과 타이완으로 나뉘는데, 19세기 초에는 번안소설과 일본 미스터리의 영향 아래서 발전했다. 복잡한 현대사를 반영하듯 곡절도 많았다. 본토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긴 암흑기였고, 타이완 또한 오랜 계엄시대를 겪으며 문화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양국은 1970년대에 사회적 격변을 맞이하고 나서야 시장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때 에도가와 란포나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은 일본 작품이 활발하게 유입됐다. 이후 창작 시장의 기틀이 마련됐고 중국 미스터리는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하며 급격하게 발전했다.
홍콩에서 태어나 타이완에서 활동 중인 찬호께이의 작품이 국내에서 소개될 수 있었던 건,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신’이라 불리는 시마다 소지의 (간접적인) 노력이 컸다. 미스터리 이론가이기도 한 시마다 소지는 21세기 새로운 본격 미스터리의 발원지로 동아시아를 선택했고, 마침 자국 시장을 키우려는 대만 크라운 퍼블리싱 그룹과 의기투합해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중국어로 쓰인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며 신인 발굴을 목표로 한다.
찬호께이의 첫 장편 미스터리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13.67』 직전에 출간된 작품으로,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 2회 수상작이다. 찬호께이는 응모 당시 ‘독특한 드라마’, ‘전통적 관념을 전복시킬 새로운 방법의 제안’, ‘21세기의 과학 원리’라는 세 가지 요소를 작의(作意)로 밝혔는데, 이는 시마다 소지가 평소 주창하던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범 답안에 감동한 시마다 소지는 심사평에서 ‘무한대의 재능’이 펼쳐질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아파트에서 두 남녀가 함께 살해됐다. 배 속의 태아마저 칼로 찌른 잔혹한 범죄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한다. 곧 이어 장면이 바뀌고, 나는 집 근처에 주차된 차 안에서 깨어난다. 지독한 숙취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는 질투에 사로잡힌 한 남자였다. 광기에 빠져 아내의 불륜 상대뿐 아니라 그 아내와 배 속에 든 아이마저 죽인 것이다.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하던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어제만 해도 2003년에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곳은 2009년이었던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6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걸까? 나는 우연히 만난 여기자와 함께하며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진상과 기억의 공백을 찾아 헤맨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작위적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논리적으로 한 걸음씩 착실하게 발을 내딛는다. 결말 부분에서 거듭해서 뒤집히는 반전도 인상적이지만, 시공간에 대한 찬호께이 특유의 감각은 확실히 탁월하다. 150여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서양 문화를 흠뻑 빨아들였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 시공간의 일그러짐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기억의 위화감을 되짚는다. 이는 일반적인 본격 미스터리와는 차별되는 독특한 감각으로 다음 작품 『13.67』에서는 활짝 피어나 미스터리 구조와 완벽하게 겹쳐진다.
2014년 중국의 출판 시장 규모가 39조 원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었다. 일본 등과 달리 중국의 출판 시장은 쇠퇴가 아닌 성장의 단계에 들어섰다. 단 두 편의 작품이지만, 그 가파른 성장세를 가늠하기 충분하다. 단언컨대 올해는 국내 시장에 중국의 장르소설들이 꽤 많이 출간될 것이다.
사신의 술래잡기
마옌난 저/류정정 역 | 몽실북스
갓 출간된 중국 미스터리. 저자 마옌난은 우연히 방송국 직원과 현직 경찰을 소개 받아 교류하면서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실제 사건들을 참조해 이야기를 직조했다고 한다.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된 천재탐정 모삼과 법의관 무즈선이 'L'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를 쫓는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범죄와 천재 탐정과 천재 범인의 대결 구도가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제3의 사랑
쯔유싱쩌우 저/이지윤 역 | 북폴리오
송승헌과 유역비를 실제 연인으로 만든 영화 '제3의 사랑'의 원작 소설. 2007년에 출간돼 7년 동안 약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당당한 여자가 동생의 자살 시도를 계기로 백마 탄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흔한 연애 공식을 따르는 듯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맞닥뜨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애틋함을 자아낸다.
삼체
류츠신 저/이현아 역 | 단숨
2013년 국내에 출간돼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저자 류츠신이 2015년 아시아인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화제에 오른 중국 SF 소설. <삼체>는 문화대혁명부터 시작해 외계 함대와의 전쟁으로 마무리되는 '지구의 과거' 시리즈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중국에서 30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올해 동명 영화 1부 개봉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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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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