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배들이 제안하는 프러포즈 문구 1
사랑을 말하는 책 그리고… ‘사랑해’를 변주하는 문장들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고기떼를 따라 푸른 물살을 헤엄’치는 가슴을 안고,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쁜’ 그/녀에게, 책과 함께 당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건 어떨까.
가끔 남의 말로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시집을 꺼낸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용기가 없어지면 시집을 꺼내자. 사랑은 울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시가 어렵다면 다른 책도 좋다. 특히 프러포즈를 앞둔다면 남의 말을 일단 참조하자. 진심을 전한다면야 남의 말을 빌리는 건 사기가 아니다. 사랑의 선배들이 줄을 서서 독자에게 줄 문구를 준비해 놓았다.
사랑의 말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그 중 순전히 필자의 취향에 따른 프러포즈 구절을 골라서 소개한다. 사랑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책 소개도 주관적이니 골라 듣길 바란다.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고기떼를 따라 푸른 물살을 헤엄’치는 가슴을 안고,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쁜’ 그/녀에게, 책과 함께 당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건 어떨까.
1.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중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저 | 민음사
『김수영 전집』에 수록된 시, 「사랑의 변주곡」을 빌려 왔다. 언제까지나 '사랑의 변주'로, 사랑의 이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라는 첫 번째 구절로 더 유명하다. 사랑은 욕망이고, 김수영은 감히 그 입을 벌려 다시 사랑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썼다. 지식인이자 문학가의 정수를 연인 사이에 공유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 책은 1981년 발간된 전집의 개정판으로, 현대의 독자들이 읽기 쉽게 일부 시어의 띄어쓰기, 한글한자 병기 등을 현대어로 바꾸었다.
2. 진은영, 「첫사랑」 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저 | 문학과지성사
진은영 시인의 첫 시집에 실린 시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옷 안에 물고기가 들어간 느낌으로 표현한다. 순간 몸서리쳐 지다가도, 이내 내가 물고기가 되어 소년과 함께 헤엄친다. 진은영은 젊은 여성 시인을 말하면 자주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인이다.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인 시를 가지고 강의도 하고 시도 쓰고 낭독회도 연다. 『우리는 매일매일』 등 시인의 다른 시집도 추천한다.
3. 김행숙, 「목의 위치」 중
타인의 의미
김행숙 저 | 민음사
목으로 마음의 자취를 알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눈길보다 확실한 건 목이다. 같은 시집에 실린 「포옹」에서도 묻는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애매한 나'와, '당신' 사이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워지는 감각이 뛰어나다. 김행숙의 시는 찰나의 감각 그 자체, 감각의 진행 과정에 주목한다. 그 느낌의 세계 안에서 '나'와 '타인'이 만나는 감각을 그려 낸다.
4. 황인찬, 「유독」 중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저 | 민음사
「유독」이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운 시는 아니다.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면서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필자는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 글을 잘 써서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가끔 어지러워진다. 황인찬은 그만큼 잘 쓴다. 이 시가 실린 『구관조 씻기기』는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5.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 중
이하 배경 이미지 출처_imagetoday
피를 마시는 새
이영도 저 | 황금가지
레콘, 나가, 도깨비, 인간 등 네 종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집보다는 덜 로맨틱하고 어쩌면 덜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사랑만 한 판타지가 어디 있겠냐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비록 이영도는 감 농장을 운영하느라 신간을 내고 있지 않지만, 사랑만은 영원하기를,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드래곤라자』, 아차, 적고 보니 이건 이별의 말이다) 총 8권의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처럼 순식간에 읽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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