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길은 좋아요 백만 개, <좋아해줘>
초고속 SNS 시대에 누군가와 연결하고 싶은 소통의 욕망
감독은 연애를 막 시작하는 사람의 그 애절하고 풋풋하고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예전과 하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느낌처럼 충만하고 간절한 것이 있을까? 진심에 이르지 않더라도 엄지 척이 주는 매력은 마약처럼 계속 모니터를 들여다보게 한다.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갈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사람들 곁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매체가 있다. 편지로 설렘을 전하던 시절도 있었고,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PC 통신이 있었고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삐삐가 있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SNS와 인터넷은 24시간 내 손안에서 접속 가능한 소통창구가 되었다. 손쉽게 친구를 맺을 수도 있고, 또 더 쉽게 버릴 수도 있는 곳. 눈 앞에 펼쳐지지만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온라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적극적이지만, 이상하게 그 익명성 때문인지 현실 속에서는 자꾸 주춤대면서 물러서게 된다.
박현진 감독의 <좋아해줘>는 가장 대표적인 SNS 매체인 페이스북을 소재로 사랑이 간절한 남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이스북을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감수성은 오히려 복고 감성과 맞닿아 있는 데다 꾹꾹 눌러쓰지 않고 편안하게 적어가는 이야기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해 오히려 귀에 쏙쏙 들어온다.
<좋아해줘>는 한 마디로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SNS를 다룬 많은 영화가 인간의 단절감을 보여주기 위해 촘촘하게 엮인 SNS 온라인 관계망 사이로 파고들었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 가능한 SNS는 사람들 사이를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전원이 끊어지는 순간 사람들을 각각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좋아해줘>의 박현진 감독은 이런 디지털 세대의 감수성을 문제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 가능한 채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SNS도 좋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마주하고 앉은 눈의 대화와 따뜻하게 마주 잡은 손의 체온이라는 사실을 산뜻한 이야기로 강변하지 않고서도 설득해낸다.
밸런타인데이와 구정 연휴를 지나 어중간한 시기에 개봉하긴 했지만 <좋아해줘>는 봄처럼 따뜻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 생각도 긴장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야기가 상투적인 만큼 감정의 흐름은 안정적이다. 웃어야 할 순간에 웃기고, 울어야 할 순간에 눈물을 보인다.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이지만 흐뭇한 마음을 선물한다. 또한 <좋아해줘>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이 자신의 이미지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연기 스타일에 있다. 마치 배우의 사생활을 보고 대본을 쓴 것처럼 6명의 주인공은 특별히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평소에 각각의 배우에게서 보던 이미지를 그대로 입은 캐릭터는 편안하고 흥겹다. 그래서 이미 결말이 정해진 채 달려가는 이야기의 전형성이 지루해질 틈 사이를 풍성하게 채워준다.
허세 가득하지만 귀여운 유아인과 센 척하지만 속은 여리고 배려심 깊은 이미연은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예쁜 허당 최지우는 가장 큰 웃음을 주고, 다정다감하고 속 깊은 김주혁은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맑고 순수한 강하늘, 귀여운 밀당녀 이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그저 예쁘다. 강하늘은 <좋아해줘>의 눈물과 감동을 전담하고 있는데 또래 배우에게서 보기 힘든 깊고 섬세한 연기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동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현진 감독은 SNS를 통해 사람들이 꾸며내는 이야기 속에 담긴 설렘과 진심에 주목한다. 주란(최지우)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찬(김주혁)과 SNS 페이지에 올리기 위한 사진과 글을 꾸며내고, 나연(이솜)과 연애 숙맥 수호(강하늘) 사이의 댓글 밀당은 풋풋하다. 이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연애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박현진 감독은 연애를 막 시작하는 사람의 그 애절하고 풋풋하고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예전과 하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2008년 오랜 연애에 지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적인 연애담을 끌어들인 박현진 감독은 잔잔한 이야기 속에 설렘 가득한 로맨스를 노련하게 녹여내며, 자칫 소모적일 수도 있는 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각각의 배우들의 이야기 비중도 적절하게 배분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각각 떨어져 있던 인물들을 공항이라는 곳에 모여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엔딩은 같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도를 이해하고 본다 해도 다소 억지스러워 아쉽다.
얼마 전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접속>을 TV에서 우연히 보았다. 당시 가장 트렌드한 영화였던 <접속>의 PC 통신 장면은 낯설었다. 그렇게 <접속>은 동시대의 정서를 모른다면 이해 불가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좋아해줘>는 수년이 지나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는 <러브 액츄얼리>의 감성과 전략을 따른다. SNS를 소재로 하지만 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랑의 시작과 그 풋풋한 설렘으로 소통한다. 초고속 SNS 시대에 살아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결되고 싶은 소통의 욕망을 오프라인 소동을 통해 담아낸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는 허구의 친구들 대신 지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봐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좋아요’ 버튼이 아니라 마주 잡은 손이 전하는 ‘체온’이라는 메시지는 전형적이지만, 또 그래서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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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