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예술, 현대음악
이희경 작가와 함께 보는 20세기 음악예술사의 키워드
현대음악은 지극히 비대중적인 장르이다. 사람의 눈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만, 귀는 늘 익숙한 것을 원한다. 하지만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의 저자 이희경과 함께 20세기 현대음악의 키워드를 짚어본다면, 어느새 당신은 현대음악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을 것이다.
휴머니스트 겨울학기 특강 'Must Read Art Books!' 두 번째 강의가 열렸다. 강단 앞에 선 이희경 작가는 현대음악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현대음악은 지극히 비대중적인 예술이에요. 사람들을 음악을 들을 때 아름다운 선율과 리듬을 기대하는데, 현대음악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이희경 작가는 이러한 현대음악의 '불편함'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20세기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냉전 체제가 20세기 전체를 규정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시기는 19세기처럼 아름다운 시대가 아니었어요. 따라서 그 시기의 음악도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었죠."
이희경 작가는 이어 "그런 20세기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아보라고 얘기한다면, 저는 '탈근대'를 꼽고 싶습니다. 20세기는 18세기, 19세기의 감성의 체계, 혹은 양식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기존의 것을 어떻게 부수고, 이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시대를 어떻게 소리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 20세기 음악의 가장 큰 화두였던 것이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희경 작가는 현대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들로 아놀드 쇤베르크, 올리비아 메시앙, 존 케이지를 꼽으면서 함께 그들의 음악 세계,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음악의 핵심을 짚고 넘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예술적 원칙을 지켰던 음악가, 아놀드 쇤베르크
이희경 작가는 화면에 쇤베르크의 사진을 크게 띄우고는 입을 열었다. "쇤베르크의 사진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오시지 않나요? 그는 매우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쇤베르크는 초기에 비엔나에서 활동했었으나, 당시 비엔나에서 혹평을 받았다. "쇤베르크에 대한 혹평은 1907년경에 극에 달합니다. 그런 와중에 쇤베르크에게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찾아와요. 당시 쇤베르크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혹평에 지쳐 곡 쓰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었던 스승이 아내와 눈이 맞아 아내가 도망가 버립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쇤베르크는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곡' 2악장을 보면, 'Oh River Augustin'이라고 비엔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중적인 곡의 선율을 살짝 비틀어서 사용합니다. 이렇게 대중적인 선율을 삽입하면 대중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한 거죠. 근데 사람들은 그런 쇤베르크의 기대와 달리 야유를 보내요. 이런 사건들을 계속 겪으면서, 쇤베르크는 점차 청중과 자신을 대립시키기 시작합니다."
이런 대중적 반응 속에서 쇤베르크는 '현악 4중주'를 기점으로 무조음악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악 4중주곡'의 4악장을 보면, 굉장히 특이하게도 소프라노가 등장합니다.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 가사 도입부를 보면 '나는 다른 행성의 공기를 느낀다'고 말해요. 쇤베르크 자신이 근대적인 조성의 세계가 아니라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조의 세계를 느낀다는 것을 마치 천명하듯이 노래하게 만든 겁니다." 하지만 계속에서 찾아오는 개인적 어려움으로 인해 쇤베르크는 1911년 베를린으로 자신의 활동무대를 옮긴다. "근데 베를린은 분위기가 비엔나와 굉장히 달랐어요. 베를린에 와서 쓰게 된 '달에 홀린 피에로'가 매우 성공적인 초연을 하면서, 그간 맛보지 못했던 대중적 호응과 함께, 그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동시대의 작곡가들에게 호평을 받게 됩니다."
이희경 작가는 무조음악이 분명 파격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한계가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무조음악은 상당히 직관적으로 작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곡들 안에 굉장한 파워가 있지만, 그 안에 논리가 내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곡들이 아주 짧아요. 사실 쇤베르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음악가 중에서도 무조음악을 시도한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표현성에만 집중하는데 그칩니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달랐다. "오스트리아나 독일 쪽 사람들은 구조와 논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에서 더 나아가 12음 기법을 고안해 내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희경 작가는 쇤베르크가 정말 유명해진 이유는 그가 무조음악을 시도하거나, 12음 기법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쇤베르크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그의 예술가적 태도입니다. 당시 비엔나는 특히 환락을 추구하는 대중을 위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던 과도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쇤베르크는 대중의 취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내적인 예술적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상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쇤베르크의 태도가 후배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음악에 색채와 영성을 담다, 올리비아 메시앙
"20세기에는 그 이전 세기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음색이 핵심으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 올리비아 메시앙의 음악에서는 이런 음색이 잘 드러나요." 이희경 작가는 메시앙이 음악과 색채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렸을 적 성당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얻었다고 설명했다. "메시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거의 60년간 한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래서 메시앙은 어려서부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서 연주를 했는데, 그렇게 연주를 하고 있다 보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들어오잖아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공감각적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메시앙은 이처럼 공감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동시에 자신의 영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새소리를 채보하여 음악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메시앙의 새에 대한 관심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오타쿠' 였어요. 왜냐하면, 메시앙은 새가 영성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새라는 동물이 하늘과 땅을 오가잖아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새는 신의 목소리를 전한다고 생각되는 존재입니다. 메시앙 역시 신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오가는 새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얻고자 했던 것이죠."
메시앙은 개인적으로 활발한 음악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자신의 음악적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메시앙은 전후 현대음악의 멘토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세계 2차 대전 직후, 많은 예술가가 망명해 공동화가 일어났던 유럽에 남아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메시앙은 리듬에 많은 관심을 가져요. 서양 음악은 화성적인 음악이기 때문에 리듬이 지나치게 복잡하면 음악이 정신이 없어집니다. 근데 비서구권에서 주로 나타나는 선적인 음악들은 리듬이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메시앙은 이런 새로운 종류의 리듬을 연구해서 전후에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젊은 서양 예술가들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모든 소리가 음악이다, 존 케이지
이희경 작가는 마지막으로 존 케이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마 이름은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존 케이지는 '음악'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뒤집어엎은 사람입니다. 존 케이지가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미국 서부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타문화를 많이 접하면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작가는 존 케이지의 저서 『사일런스』를 언급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존 케이지는 책의 첫 부분에서, 우리가 소음을 들을 때 귀찮게 생각하면 소음이 자꾸 귓속으로 파고들지만, 들으려고 하면 소음 안에도 많은 매력이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존 케이지는 우리가 흔히 구분하는 음악적 소리와 비음악적 소리, 그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했어요." 존 케이지의 대표적인 작품 '4분 33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이희경 작가는 설명했다. "우리는 정적이 소리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근데 소리가 아예 없는 환경이란 없죠. 그래서 존 케이지는 침묵을 통해서 우리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했던 주변의 소리, 그리고 더 나아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기존의 음악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존 케이지는 '주역 음악'을 시도한다. "사실 작곡가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도, 그게 쉽지가 않아요. 자신이 학습을 통해 습득한 것, 축적된 기억,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관습과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거든요. 존 케이지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연에 기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주역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잖아요? 그것처럼 작곡할 때 주사위와 동전을 던져서 임의로 리듬과 선율을 정해요. 전통적으로 작곡가는 절대적입니다. 작곡가가 정해놓은 음 하나를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존 케이지는 이런 절대적인 작곡가, 그리고 그의 완전한 작품이라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입니다."
작가는 존 케이지에 대한 평가가 양가적이라고 말했다. "존 케이지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유명합니다. 아마 현대음악가 중에서 가장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근데 유럽권 동료 작곡가들에게는 사이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아요.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가, 존 케이지의 음악은 동종업계 사람들이 발 딛고 있는 그 지반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에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다만 존 케이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음악사의 중요한 인물인 것은,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생각하든 다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그리고 희망을 전해준 것이죠."
이희경 작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지금 이 순간의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전후, 음악계는 굉장히 추상화된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현대음악을 들을 때 듣기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근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음악계에 대한 지원이 끊깁니다. 그러면 작곡가들도 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옛날처럼 실험적인 음악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오늘날 정말 실험적인 것을 하고 싶은 예술가들은 점점 자신을 주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모를 뿐이지, 여전히 현대음악의 계보를 이어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도 한 번쯤은 그들에게도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이희경 저 | 휴머니스트
이 책은 쇤베르크.아이슬러.거슈윈.케이지 등 음악과 소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20세기의 사회.정치.문화 흐름 속에서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빈.파리.베를린.뉴욕 등 당대 역동적인 도시 공간은 그야말로 새로운 음악과 소리를 위한 실험의 장이었다. 작곡가와 연주자 들은 지식 사회와 깊이 교류하며 대도시의 삶과 고뇌를 음악으로 숨김없이 드러냈고, 낯선 지역의 문화와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전에 없던 소리를 창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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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본 20세기 문화사 격동의 20세기를 가로지르는 음악과 소리의 모험! 1913년 쇤베르크의 음악회장, 귀를 긁는 불협화음과 도전적인 리듬과 엇나가는 템포에 청중들은 야유를 보내다가 급기야 주먹다짐을 벌였다. 때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거칠고 꼴사나운 소음’을 일으키는 말썽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