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버릴 때, 더 강해지는 삶의 의지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상실과 불행을 극복하는 처연한 삶의 이야기
이미 4번이나 아카데미 수상에서 실패한 디카프리오가 ‘이래도 안 줄래’하는 맘으로 찍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 극한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표현해내면서도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그의 표정과 눈빛 연기는 그저 경이롭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죽어도 좋다, 하는 순간 더 강해지는 인간의 삶과 그 의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죽음을 뛰어넘는 한 남자의 여정은 처연하고, 그것을 묵도하는 2시간 30분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21그램>, <바벨>, <비우티풀>, <버드맨>을 통해 작가주의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는 알레한드로 감독의 영화라면 사전 정보 없이도 극장으로 달려갔을 텐데 솔직히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자꾸 날짜를 미루게 되었다. <히말라야>랑 자꾸 겹쳐 보이는 포스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1,800만 불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기묘한 <버드맨>에서 7배로 뛰어오른 1억3천5백만 불의 제작비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제작비와 캐스팅, 작품의 스케일로 보자면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할리우드의 상업 블록버스터임이 분명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솔직히 대다수 관객을 만족하게 해야 하는 상업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대다수 관객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블록버스터라면 그 또한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으로 탄생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가주의 영화이다. 이 점이 안도가 되면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철학적 사유와 처연한 삶 속 생존과 극복의 아이러니가 취향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그저 광활하고 지루한 영화일 수 있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영화가 취향에 맞는다면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 속에 내 던져진 인간이라는 미물의 삶과 죽음, 그 아이러니를 끝내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유가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어색한 순간도 있다.
영화는 알려진 것처럼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 전설적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글래스는 회색곰의 습격으로 죽음에 직면하고, 돈과 자신의 생존만이 중요한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그를 죽음 속에 버려두고 달아난다. 아들의 죽음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글래스는 이미 아들과 함께 눈밭에서 죽었다. 오직 복수하겠다는 욕망으로 광활하고 거친 야생의 세상 속에서 내달리는 그의 행적은 복수의 망령처럼 보인다. 156분의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은 광활한 자연 속에 남겨진 채 오직 복수만을 위해 400Km의 여정을 달리는 글래스의 행적을 지켜본다. 곰에게 짓밟혀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이끌고 피츠제럴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지키는 글래스의 여정은 너무나 처연하고, 역설적으로 그 처연한 삶의 의지 앞에서 우리는 경건함을 느낀다. 부상 때문에 걸을 수 없어 땅을 기어가고, 먹을 것이 없어 동물의 사체에서 골수를 빼 먹고 날생선과 생소라를 씹으면서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별다른 이야기 거리 하나 없이 글래스의 여정 속으로 파고드는 카메라를 통해 한 남자의 절망, 분노, 슬픔, 생의 의지와 처연한 복수 모두를 그저 눈빛과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적을 쫓는다. 당연히 디카프리오라는 존재는 영화 성패의 열쇠이다. 이미 4번이나 아카데미 수상에서 실패한 디카프리오가 ‘이래도 안 줄래’하는 맘으로 찍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 극한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표현해내면서도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그의 표정과 눈빛 연기는 그저 경이롭다.
영화의 정점을 찍은 곰과의 혈투는 CG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직접 촬영에 참여한 장면은 극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원 테이크로 촬영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스키와 합이 맞아떨어지는 원 테이크 촬영의 진수는 이미 <버드맨>에서 확인한 바 있다. 주인공 리건의 숨통을 조여 오는 삶의 무게와 과거의 환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알레한드로 감독은 웜 홀처럼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켜 버린 롱테이크 장면으로 주목받은 <그래비티>의 엠마누엘 루베스키를 촬영감독으로 택했다. 엠마누엘 촬영감독은 <버드맨>이 마치 원 신 원 테이크로 촬영된 것 같은 기법을 선보였다. 씬과 씬이 자연스럽고 세밀하게 이어져 있어, 언제 컷이 나뉘는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속 곰과의 혈투 역시 엠마누엘 감독의 원 테이크 씬을 통해 곰의 습격을 받는 글래스와 함께 관객들은 숨통을 조이는 삶의 위기와 살고 싶은 욕망을 함께 체험한다. 마치 카메라가 글래스의 호흡을 그대로 이어받아 숨 쉬는 것 같다.
자그마치 5년에 걸쳐 로케이션을 찾아 헤맨 완벽한 대자연의 풍광은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광활한 자연은 이미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며,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투쟁을 벌이는 인간을 묵묵히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상실과 불행,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처연한 삶의 이야기는 알레한드로 감독이 지속해서 보여 온 관심사이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는 생존의 규칙 속에서, 인간이 죽음과 맞서야 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생의 의지를 끝내 불태우는 인간의 의지는 그저 경이롭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장면 복수를 완성하는 순간,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실의 순간이 되고야 마는 순간을 글래스와 함께 경험한다. 공허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빛과 그 긴 한숨이 여운처럼 남아,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아! 이러니…….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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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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