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글쓰기도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인 것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 강창래
최고의 보상은 공부 그 자체가 내게 행복함을 주는 것이다. 칭찬이 공부의 보상이 되면 칭찬이 떨어지면 공부가 재미없어진다. 공부 자체가 재밌으면 공부를 놓을 리가 없다. 독서가 좋아지려면 책이 나의 사랑하는 대상이 돼야 한다.
창의성은 지금 한국에서 ‘만능열쇠’의 다른 말이다. 대통령이 지난 8월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강조했다. 교육부는 이에 맞춰 ‘2015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며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재의 조건에는 창의성 혹은 창의력이 반드시 들어간다. 창의성은 바야흐로 ‘세상 거의 모든 것의 해결사’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창의성이 없어서 ‘헬조선’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일까.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 교육과정의 목표로 ‘창의’를 내세우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교육 선진국인 핀란드가 최근 개정한 교육과정의 7가지 핵심 역량에 창의성은 없다. 또 창의성이나 창의력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도 그닥 없다. ‘창의적 사고’ 등과 같이 수식어로 쓰일 뿐이다. 창의력에 관한 연구를 봐도 협업 능력, 도전 정신, 관용적인 문화 등이 두루 갖춰질 때 발현되는 것이 창의력이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이 앵무새처럼 내세우고 쥐어짜내려고 하는 직원들의 창의성도 허세에 가깝다. 미국에서 ‘기업이 직원에게 요구하는 역량’을 조사했더니 19개가 나왔는데 창의성은 이 가운데 1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한국은) 창의력에 열등감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결론은 이렇다. 정부나 교육, 기업이 부르짖는 창의성에 목매달 필요는 없다.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의 저자 강창래는 이렇게도 말한다. “창의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학교(체제교육)는 창의적인 인물의 인생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창의적인 인물의 관심과 호기심을 억누르기만 한다.” 책은 그 이유를 흥미롭게 알려준다. 아무렴, 지들도 모르는 창의성을 키우라고 윽박지르는 대통령, 교육부, 기업 등은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부터 읽고 볼 일이다. 기회가 닿았다면 지난 12월 15일, 서울 상암동의 술 먹는 동네 책방 북바이북에서 맥주 마시면서 강창래 저자를 만났다면 더욱 좋았을 테고. ‘재능과 창의성, 독서에 대한 뒷담화’라는 주제로 열린 강창래 작가와 함께하는 ‘동네책방 톡’이 열렸던 이날, 독자들은 창의성이라는 유령과 만났다.
자신을 손에서 책이 떨어지면 불안한 ‘종book坐파’라고 소개한 강창래는 아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육아와 관련한 생각부터 풀었다. 대부분 어른과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입장이나 시선과는 무관하다.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해보란다. 당신보다 3배 큰 사람이 앉아서 충고나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들릴까? 아이 입장에서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면 아마도 두려움일 것이다. 육아와 관련한 첫 출발점!
이렇게 말의 몸을 푼 강창래는 책을 쓴 계기에 대해 이어나갔다. 그는 처음에는 이 책을 쓸 계획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이 맡고 있는 대학 강의(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창의적인 작품전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다. 강창래는 학생들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전의 콘셉트와 비슷하고 진부하며 유명한 작품을 보여 달라고 했다. 왜 그런 작품부터 찾는지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작품이 창의적인지 아닌지를 이해하려면 진부한 작품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진부함을 이해할 수 없으면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모른다는 것.
“창의성을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거대한 진부함을 넘어서지 않고는 진실한 창의성을 찾기는 어렵다. 나는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살았는데, 출판사가 책을 내기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알아야 무엇을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출판사가 해온 맥락과 이야기가 있는데, 한 순간에 뒤집을 수는 없다. 문학, 예술 등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통이라는 진부함을 섭렵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학생 시절이란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는 여정이어야 하고요.”(102쪽)
그는 중국화가 쩡판즈(zeng fanzhi)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패러디한 ‘최후의 만찬’(2001)을 보여주면서 모방과 패러디에 대해 언급했다.(참고로 이 그림은 2013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326만 달러(약 256억 원)에 팔렸다.) 그는 이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한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쓰고 켤 수 있다면’이라는 詩도 예로 들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 패러디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는 것.
“창의성에 대한 큰 오해가 있다. 창의성을 별난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사회적인 의미가 없으면 창의적이라는 의미가 없다. 남이 관심을 가져줄 때 의미를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의미로 넘어가기 전에 그만두거나 주저앉는다. 이 책을 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누구나 어떤 재능이든 갖고 있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제시한) 목록에 자신의 재능이 없으니까 그렇다. 주변에서는 어떤 일이 좋은 일인지 목록을 제시한다. 돌을 생각해봐라. 연필을 잡으면 글쟁이가 되겠다고 말한다. 연필 깎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나! 우리는 그렇게 자라면서 몇 가지 틀에 가둬지곤 한다.”
강창래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는 문화적인 것이 전혀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다행스럽게도 집 밖으로만 나서면 모든 것이 문화였다. 시내 한 가운데 집이 있었고, 음반 가게, 극장, 만화방, 서점 등이 지척에 있었던 덕분에 그는 모든 것을 섭렵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한때 음악에 푹 빠져서 집에 오면 음악을 흥얼거렸다. 음치인줄 모르고 열심히 노래를 했다. 그러다 주변의 억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기타나 피아노를 쳐볼까도 했지만 잘 안 됐다. 재능이 없어서 안 되나 보다, 라고 당시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어느 날, 폴 매카트니가 기타를 잡고 있는 사진을 봤다. 그의 눈에 띤 것은 폴 매카트니의 손이었다. 그 손이 무지하게 큰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음악을 해볼 거라고 클래식 기타를 쳐봤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깨달음이 왔다. 아, 내 작은 손으로는 할 수가 없구나!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재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기타의 신 지미 핸드릭스의 손도 무척 컸다. 그는 또 다른 곳을 바라봤다.
“내가 책을 쓰고 강의를 한 것은 대략 2005년부터인데, 오늘처럼 이렇게 강연을 하고 독자를 만날 줄은 몰랐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 만나서 강의하고 대화 나누는 것이 다른 것에 비해서 힘이 덜 들었다. 나는 책이 없으면 불안하나 기타가 없으면 불안하지 않다. 좋아하는 것 중 하나를 따라다니며 내 삶을 만들어 나갔던 것 같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우리는 빨리 죽지 않는다. 올해 내가 57인데, 걱정스러운 것이 이러다 언제 죽겠나 싶다(웃음). 사실 삼십대가 될 때까지도 자기 의지로 살아온 시간은 별로 없다. 대략 삼십대 말부터 자기 의지가 적용되는 삶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산 것은 20년 정도 됐다. 시스템이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는 각자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한다. 살아가는 진부한 상태에서 자기 삶을 창의적으로 발견해내긴 어렵다.”
그는 이제는 대부분 은퇴한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른바 서열 높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친구들은 우울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대체로 권위적이었고 자신이 살아온 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 세상과 소통은 안 되고 얼른 죽을 것 같지도 않으니 우울해한다는 것. 변호사를 하다가 은퇴한 친구는 남는 시간에 산에 가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소일한다고 했다. 머리가 좋은 이 친구에게 무슨 책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외우고 익히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물었다. 공인회계사가 되면 뭐할 건데? 답은 간단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좋은 거 아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익숙한 것만 물고 늘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는 사유의 스위치를 켰다.
“재능을 생각할 때 고려해볼 것이 있다. 재밌고 흥미로운 것이라도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데, 계속 들어야 익숙해진다. 모든 문명은 훈련되고 주입된다. 그러면서 즐거워진다. 즐거움은 내 몸에서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즐겁고 좋아하는 취향도 주입시켜주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 알 수 있다. 나는 1년에 한 번씩 단식을 한다.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도 않다. (몸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도 즐길 수 있게 됐다. 단식을 하면서 내 입맛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단식이 끝난 뒤 머릿속 생각만 조절하면 이탈리아 음식도 모국 음식처럼 변할 수 있다. 잘못된 식습관을 고치는데 단식만한 것이 없다. 단식을 3주 정도 하면 몸이 포맷되면서 식성을 바꾸기 쉬워진다. 우리가 아는 즐거움도 그렇게 주입된 것이다. 즐거움의 종류도 문명을 통해 주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떨까. 책도 포맷이 가능할까. 강창래는 독서 취향은 사랑을 하면 변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어떤 책을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권했다. 읽어야 하는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도 없다는 것! 다만 내가 좋아하는 책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재밌는 책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재미가 있으려면 관심이 있어야 하고 관심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 되는, 자신도 모르게 생긴 촉수다. 독서는 그야말로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중요한 것인데, 이 또한 즐겁고 재밌지 않으면 창의성이 돋아나지 않는다. 내가 즐겁고 행복할 때 온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사명감을 갖고 읽으면 메시지 사냥을 떠나게 될 뿐이다.
독서는 그렇게 나의 재미를 흩뜨려서 해야 할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 강창래의 설명이다. 다만 독서 취향이 바뀌는 계기는 사랑임을 다시 강조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이리 해야 돼, 저리 해야 돼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생길 때 변한다. 사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진 않는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하는 과정을 겪어야 변화가 시작된다. 독서(취향)도 그런 과정이 아니면 변하지 않는다. 독서 목록을 만들어봐라. 대개의 사람은 한 종류,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는다. 좋은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마지막에 토론하는 과정까지 포함돼야 한다. 토론이 힘든 과정이라 생각하지 마라. SNS에 내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런 것의 하나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패러디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처음 말과 글을 배울 때를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부모의 진부한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배웠고 따라했다. 강창래에 의하면, 창의성의 시작은 명료했다. 매우 진부한 것에서 출발한다. 다들 모방하면서 배운다. 다만, 모방만 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패러디! 뭔가 일이 주어진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패러디할 것.
그러나 패러디도 쉽지 않다. 강창래의 표현에 의하면, 패러디는 좋은 스승이 내게 해주는 극단적인 방식이다. 즉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창의성으로 가는 좋은 방법이다. 애정과 사랑은 학습과 기본적으로 관련이 있는데, 나만을 위한 특별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제는 과거보다 정보 양도 어마어마하고 삶의 다양성도 훨씬 커졌다. 좋은 스승은 그런 현실에서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 깨닫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재능과 나다움, 즉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 스승이다.
“최고의 보상은 공부 그 자체가 내게 행복함을 주는 것이다. 칭찬이 공부의 보상이 되면 칭찬이 떨어지면 공부가 재미없어진다. 공부 자체가 재밌으면 공부를 놓을 리가 없다. 독서가 좋아지려면 책이 나의 사랑하는 대상이 돼야 한다. 책을 제대로 읽는 과정의 마지막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가 책이다. 그래서 북바이북 같은 곳은 중요한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강창래는 글쓰기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글쓰기에 있어서 그는 『고종석의 문장』의 고종석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은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쓰는 것이라는 것.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쓰는 것 자체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중요하단다. 자신은 글 쓰면서 힘들고 괴로웠던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잠을 못자는 경우도 있었지만 과정 자체는 좋다는 것.
“나는 글 쓰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예전 책보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글 쓸 때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과 분노가 글을 쓰게 만든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고통 받는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부족하면 글쓰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글 쓰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작정 많이 쓴다고 글쓰기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글 자체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중요하다. 이렇게 작은 동네서점에 와 보고 싶었다. 사람들을 동네서점에서 만나 책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이 말은 하고 싶다. 글쓰기는 사회적인 것이다.”
“창의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임을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69쪽)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 강창래 저 | 알마
이 책은 점점 공허한 수사가 되어가는 ‘창의성’을 원점부터 검토한다. 학생과 선생의 대화라는 소크라테스적인 문답 형식을 통해, 상투화된 개념을 그 뿌리부터 재再사유하는 것이다. 저자는 흔히 뭉뚱그려 쓰여 혼란을 초래하는 ‘재능’과 ‘창의성’을 예리하게 구분하고, 각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능이란 무엇인가’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이 과정에서 재능이 자연스레 ‘발견’되기보다는 억지로 ‘발명’되는 오늘날의 문제적 현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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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과연 재능이 있을까?” ‘창의성’이라는 말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린,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 단어의 울림만으로도 격하게 매혹되었고, 삶의 어떤 거대하고 모호한 지향점을 부여받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말의 운명이란 얄궂은 것이어서, 이제 누구도 창의성이란 단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