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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서가가 뽑은 ‘올해의 책’

혹시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찾아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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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계에서 부각되는 주제는 ‘연결성’이다. 홍수같이 쏟아져서 별같이 흩뿌려졌다가 휙 하고 사라져버리는 수많은 책과 ‘책은 읽고 싶지만 뭘 읽어야 할지 난감한 독자’들 사이를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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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다 저물어가고 있다.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세상에 나와서 아주 일부는 모두가 알 정도로 성공했고, 그보다 적은 일부는 살아남았고, 더 많은 대부분의 책은 사라져버렸다. 이미 봐야 할 책은 다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책이 자기 자리를 잡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을 섞은 자조적 넋두리를 하는 저자와 출판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출판계에서 부각되는 주제는 ‘연결성’이다. 홍수같이 쏟아져서 별같이 흩뿌려졌다가 휙 하고 사라져버리는 수많은 책과 ‘책은 읽고 싶지만 뭘 읽어야 할지 난감한 독자’들 사이를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성공한 책은 살아남고 실패한 책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독자들의 손에 잡히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채널예스> 콘텐츠도 독자들과 책 사이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마음을 읽는 서가’도 같은 맥락에서 심리에 관심 있는 독자들로 좀더 초점을 맞춰 책을 큐레이션해 소개하려는 코너다. 나는 신간위주로 칼럼을 쓰려고 노력을 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1년에 읽는 책은 150권 남짓인데, 격주로 연재되는 이 코너에서 올 한해 동안 소개된 책은 총 29권이었다. 오늘은 또 다른 한 권을 추가해서 30권을 채우는 강박적 노력보다, 2015년 한 해 동안 읽고 이 코너에서 소개한 책 중에서 1년이 다 지났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어서, 독자 여러분들이 혹시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찾아 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내 마음대로 뽑은 올해의 책 6권을 감히 소개하려고 한다. 3권은 에세이와 만화에서, 3권은 인문사회 분야에서 골라보았다.

 

 

에세이, 만화 분야


『 아이사와 리쿠』

호시 요리코의 두 권짜리 만화책 ‘아이사와 리쿠’는 중2병에 걸린 한 소녀의 성장기를 독특한 필체와 마치 하이쿠를 보는 듯한 짧은 대화 속에서 단숨에 풀어냈다. ‘너무 완벽해서 이상한’ 인공적 천국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사와 리쿠는 세상과 자발적으로 단절된 채 지낸다. 우연히 대도시 동경의 핵가족에서 오사카의 친척집의 대가족체제로 넘어와 친구들, 친척들과 처음으로 깊은 정서적 교감이라는 것을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사와 리쿠에게 도대체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콕 찝으면서 닫혔던 감정의 문을 여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저 한 아이의 성장기를 넘어서서 현대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의 한계와 결핍성을 문학적으로 정곡을 찔러 짚어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어쩌다 어른』
오랜 기간 신문기자로 재직한 저자 이영희의 에세이집. 스마프란 일본의 아이돌 그룹이 좋아 일본어를 배우고, 그들의 공연을 쫓아다니고, 그러다 보니 일본 유학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의식과, 성취욕, 성공에 대한 로드맵을 그려 차근차근 살아온 사람의 자기계발적 성공기가 전혀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저자는 자신이 유난히 잘 빠져드는 성격이지만, 이때만은 가장 활기차고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고백한다. 빠져드는 순간이 주는 몰입감을 알고 나면 매번 다른 대상을 찾아나가게 되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된 덕분이라는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먼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해하기보다 차라리 지금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반복적인 몰입과 자기만의 즐거움을 은밀하게 즐기다 보면 꽤 멀쩡한 ‘어쩌다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공부하는 기계로 커 몸은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인생의 방향을 못 찾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칼럼모음집이다. 한국에서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비트 타케시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대단한 코미디언이자 독설가다. 그는 에둘러 말하거나 은유적으로 비유하지 않는다. 또 교훈을 주려는 아저씨 모드를 단호히 거부한다. 나름 일가를 이룬 중년 남성으로 어찌 보면 매우 보수적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대책 없이 자유로운 자신만의 생각을 필터 없이 적나라하게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순수한 사랑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고, 결혼으로 평생 꿈꿔온 대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 미칠듯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부는 돈이나 자식으로 연결되어있으니 차라리 원양어선의 선원같이 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세상에 좋은 말만 하려는 교훈적 어른들만 많은 세상에서 이런 아저씨의 한 마디를 직접 듣기엔 버겁겠지만 한 권 정도의 책으로 읽어본다면 자기 생각의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읽으면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의 고민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작은 답들이 보이리라 기대한다.

 

 

인문/사회 분야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첫 단추는 ‘무엇이 정상인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게 제대로 안되면 무엇이든 다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다. 정상성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 불편함, 새로운 사회현상을 모두 비정상으로 성급히 판단하려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하버드 대학 정신과 교수인 조던 스몰러(Jordan Smaller)가 쓴 이 책은 마치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듯이 모습을 가리고 있어서 잘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 철학, 심리학, 뇌과학, 영상진단학, 신경생리학에서 밝혀진 수많은 자료와 증거들, 개념들을 총망라 통합해서 ‘정상성’에 대해 정리를 했다.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단일하고 ‘진실한’ 경계를 찾고 확인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고 ‘현실적인’ 구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낮과 밤의 관계와 비슷하게 가변적이고 사회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책은 흔히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정신분석은 기본적으로 개인을 다루는 학문이자 치료법이다. 외부환경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무균실과 같은 정신분석 환경을 만들어 오랫동안 분석을 해나간다. 그런 정신분석가도 사회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성격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분석가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서구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한 새로운 인격유형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했다. 그는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정체성 형성과정에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지 않고, 정체성의 거울로 이용되는 외부세계의 변화로 인한 것이라 평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정신세계는 오롯이 외부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큰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항의 물고기가 아무리 튼튼해도 어항 속의 물이 더러우면 숨쉬기 어려워지고 병이 드는 것과 같다. 서구 역사의 큰 흐름을 중심으로 인간의 정신세계의 기준의 변화를 정신분석적 세계관을 잃지 않으면서 풀어간 역작이다.

 

『그들은 왜 뻔뻔한가』

사회의 변화는 뻔뻔한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다. 도대체 ‘저 사람 왜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고통을 당하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뻔뻔할 뿐이다. 사회의 변화가 이런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알겠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기는 개인의 삶이 너무 힘들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철학자 아론 제임스가 쓴 이 책은 뻔뻔한 사람(asshole)의 특징들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1) 스스로 특전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조직적으로 그렇게 한다. 2) 이러한 행동의 바탕에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3) 이러한 특권 의식으로 다른 사람의 불만에 면역되어 있다고 정의한다. 그들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긴다. 그런 이들을 대할 때에는 평생 피하고만 살 수 없으므로 그들과 맞닥뜨리면 먼저 ‘싸울 자리를 보고 싸울 것’을 권한다. 매번 묵인하고 용인할 수 없으니 때가 오면 권리를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와 같은 식으로 현대사회에 늘고 있는 골칫덩이 인간형인 이들을 대할 구체적인 조언을 하고 있기에 2016년에 행여 당할지 모를 갈등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팁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 세 권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 본다면 가장 기본인 정상성의 정의로 시작해서 사회적 영향의 인정, 그리고 그 변화 속에 새로이 늘고 있는 문제적 인간형에 대한 대처방안까지 일목요연한 흐름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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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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