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쌍둥이의 힘 <레전드>
혼자는 외로워
그런데, 내가 아는 한국 소설가 K는 사실 쌍둥이다. 꽤나 유명한 여성 작가인데, 과연 그녀가 시상식이나 인터뷰에 동생을 대신 보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레전드>에서 톰하디는 1인 2역을 맡았다. 분장은 전혀 않고서. 이유는 간단하다. 배역이 쌍둥이 형제였기 때문. 형인 레지 크레이와 동생인 로니 크레이를 모두 맡았다. 실제로 그가 쌍둥이여서 같이 연기를 했다면 든든했겠지만, 그는 형제끼리 대화를 나누는 신에서도 혼자 말을 걸고, 듣는 척 했다가 다시 대답을 해야 했다. 그러니, 실제로는 굉장히 외로운 작업을 한 것이다.
나는 종종 쌍둥이 형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원고마감 때문이다. 오늘만 하더라도 7시간 째 무얼 써야 좋을지 끙끙댔다. 이럴 때 쌍둥이가 있다면 ‘뭐, 생각나는 대로 아무 것이나 써보라고’ 하면서 떠넘길 수 있으니, 부러울 수밖에.
그런데, 실제로 이런 형제가 있다. 쌍둥이가 아니라 약간 섭섭하긴 한데, 바로 추리소설 작가 ‘앨러리 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촌 형제다. 사촌 지간인 ‘프레데릭 대니’와 ‘맨프레드 리’는 어느날 추리소설을 함께 쓰기로 합의했다. 한데, 당시 독자들이 소설 속 탐정 이름은 기억하지만, 작가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여, 이들은 자신들이 쓴 소설 속 탐정 이름인 ‘앨러리 퀸’을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하여, 프레데릭 대니와 맨프레드 리는 ‘앨러리 퀸’이라는 하나의 필명을 동시에 사용했다. 마치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이 누가 곡을 쓰건 간에 반드시 ‘작사ㆍ작곡 레논 앤 매카트니’라고 표기한 것처럼.
말이 나온 김에 하자면, 사실 ‘레논앤 매카트니’의 곡은 누가 주도적으로 썼는지 알 수 있다. 알려지다시피, 곡을 부른 사람이 주로 쓴 것이다. 예컨대, ‘렛 잇 비’는 폴 매카트니가 ‘쉬 러브즈 유’는 존 레논이 쓴 것이다. 비틀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필자가 속한) 밴드 ‘시와 바람’ 이야기를 꺼내 미안하지만, 우리도 (향후 발생할 엄청난 수익으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고자) 누가 곡을 쓰건 간에 작곡은 밴드 이름으로 표기한다. 하여, 이에 따른 수익도 멤버들과 나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익을 나눌 일이 없다. 6년 째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단, 누가 주도적으로 곡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원작자의 이름을 작사가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즉, ‘레논 앤 매카트니’가 작곡한 곡의 메인 보컬이 누구인지에 따라 원작자를 추정할 수 있듯, ‘시와 바람’이 작곡한 곡의 작사가가 누구인지에 따라 원작자를 점쳐 볼 수 있다.
그런데, 앨러리 퀸은 이런 게 불가능하다. 예컨대, 누가 36페이지부터 72페이지까지 썼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정사 신이 기가 막혀 침을 꼴깍 삼켜도 그걸 프레데릭이 썼는지 맨 프레드가 썼는지 알 수 없다(얼굴을 보면, 둘 다 엉큼하게 생겼다). 게다가 사전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합의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펜대를 이어 받은 둘 중 한 명이 주인공의 팔을 잘라버리거나, 조연을 성의 없이 죽여 버렸다 하더라도, 다음 타자가 나타나 수습을 해야 한다. “어째서 이따위로 쓴 거야?!”하며 따져 봐도, “글쎄. 나도 모르게 이야기의 신이 강림해 손가락을 움직였단 말이야”라는 식으로 대답을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면, “으음. 그렇군” 하며 수습하는 수밖에 없다.
영화 <레전드>에서도 동생 로니 크레이가 대형 사고를 치자, 형 레지 크레이가 어쩔 수 없이 수습을 한다. 이런 점은 상당히 부럽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작가의 입장에서도 쌍둥이는 부럽다. 나도 쌍둥이 동생이 있다면, 그 존재를 숨긴 채 내가 쓰다 만 원고를 수습 해보라고 던져 보기도 하고, 나가기 싫은 인터뷰도 대신 내보내 아무렇게나 말을 하게 할 텐데. 글을 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철저히 혼자 책임 져야 하기에,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든든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국 소설가 K는 사실 쌍둥이다. 꽤나 유명한 여성 작가인데, 과연 그녀가 시상식이나 인터뷰에 동생을 대신 보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K 작가가 쌍둥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반면, 알려진 쌍둥이 자매 소설가도 있다. 소설가 김희진 씨와 장은진(본명 김은진) 씨 인데, 둘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 가끔씩 이름을 바꿔서 발표하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 말이다.
[추천 기사]
- 에세이 대(對) 소설 <내부자들>
- 내가 사랑한 수다 <한밤의 아이들>
- 영화라는 삶의 미장센 <러브 액추얼리>
- 사랑의 완성에 필요한 세 가지 〈말할 수 없는 비밀〉
- 나의 인턴 시절 이야기 <인턴>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