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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에 필요한 세 가지 〈말할 수 없는 비밀〉

시각, 장애, 그리고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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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 한 명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고, 없으면 생겼을 때 잘 하자.

우선 이 글을 쓰기 전에 계륜미의 사진을 세 시간 동안 바라 봤음을 고백한다. 아울러, 메르스가 창궐하여 여러 차례 손을 씻었다. 그야말로, 정갈한 몸가짐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런데, 손을 자주 씻으며 흐르는 물 소리를 듣다보니, 기이하게 근심도 흘러가버렸다. 잡념이 배수구를 따라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 고로, 이 글은 매우 청결해진 손과 엉겁결에 정결해진 마음으로 쓰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이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정갈한 상태로 쓰였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말할수없는비밀.jpg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며, 나는 영혼의 주름이 펴지는 걸 느꼈다. 그건 계륜미의 미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주걸륜이 보여준 완벽에 가까운 순수한 사랑때문이었다. 고로, 나는 영화를 본 후, ‘무엇이 완전히 순수한 사랑일까’ 하고 초민했다. 물론, 영화 칼럼이니, 그 단서는 영화에서 찾았다. 나의 소잡한 두뇌와 촉촉이 젖은 심장은 무수한 단서들을 떠올렸으나, 지면상 세 가지만 언급하겠다(이후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각’이다. 영화에서 계륜미는 주걸륜에게만 연애의 대상으로 보인다. 관객에게는 그녀가 매력적일지 몰라도, 주걸륜을 제외한 영화 속 그 누구에게도 그녀는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 2년간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나보다 키가 10cm 나 컸다. 키 때문인지, 어떤 녀석도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물론, 몇 몇 불량 학생들(대부분 중학생들)이 그녀에게 접근하긴 했으나, 보편적 인간의 관점에서 그 중 멀쩡한 생명체는 나 뿐이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아, 진정 순수한 사랑은 단 한 명에게만 빛을 발하는 구나.’ 나는 키가 더욱 크길 약 3년을 기다린 후, 중학생이 되어 그녀와 영화 ‘황비홍’을 보았는데, 애석하게도 그때에도 그녀는 나보다 키가 컸다(내가 크는 동안, 무정하게도 그녀 역시 자라버렸다). 그 때엔 8cm 정도 컸다. 그녀는 ‘우와! 2cm나 따라 잡았잖아’ 하며 격려해주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때에도 멀쩡한 생명체 중에 그녀를 여자로 바라보는 남자는 나밖에 없었다.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오직 남자 주인공에게만 아름답게 보이는 여자 주인공처럼. 
 
둘째는 ‘장애’다. 사랑이 시간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되면, 반드시 암흑이라는 장애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짜 사랑은 이 암흑의 시간 속에서 증발해버리고 만다. 과장하자면, ‘어. 누구시죠?’하는 느낌으로 둘은 과거를 부정하듯, 자기 세계로 돌아가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등 무수한 고전과 실생활의 증인을 통해 장애가 사랑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진실로 순수한 사랑일 경우에 말이다. 영화에서 계륜미와 주걸륜은 애초부터 장애에 부딪혀 관계를 시작한다. 둘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산다. 이 가혹한 장애 앞에 선 풋내기 연인은 무력했다. 하지만 이 아린 장애가 가까스로 조우한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고, 더욱 애절하게 만들었다. 아, 나 역시 장애를 안고 있었다. 무슨 인디밴드 이름 같지만, 10cm의 키 차이 말이다. 비록, 8cm로 줄긴 했지만, 당시에는 키높이 깔창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빛의 싹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간 속에 살았던 것이다. 
 
셋째는 ‘포기’다. 영화에서 온전히 순수한 사랑을 했던 주걸륜은 결국 목숨을 잃을 위험을 안고 과거로 영원히 돌아간다. 그래서 현재의 모든 걸 포기하고, 과거의 시간대에서 계륜미와 함께 지낸다. 심지어, 과거의 계륜미는 주걸륜을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 것이다. 진정 순수한 사랑의 완성은, 이래서 ‘포기’를 요한다. 아, 내 얘기로 돌아오자면, 나 역시 포기했다.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포기했다, 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를 포기해버렸다. 그녀에게 불량배 남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완전히 순수했던 사랑은 그녀를 놓아주기로 포기하며, 완성되었다. “잘 살아. 그 형이랑 다니면, 돈 뺏기는 일은 없을거야.” 이 말이 당시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 여하튼,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나만의 순수한 사랑을 완성시켰다. 
 
돌이켜보니, 격정적인 초,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속 주걸륜은 20년 전에 또래로 살았던 여인을 사랑했다. 만약 그가 살고 있는 영화 속 현재에서 계륜미를 만났다면, 그녀는 무려 스무 살 연상이다. 둘은 서로를 위해 완벽히 빛나는 영혼을 소유 했으나, 남자는 19살, 여자는 39살인 것이다. 이 때문에 감독(인 주걸륜)은 계륜미를 시간여행자로 설정하여, 십대의 모습으로 20년 연하의 남자를 만나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20년 연하의 남자를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것보다, 시간 여행을 해서라도 또래의 모습으로 만나는 게 낫다는 것이 감독인 주걸륜의 주장이다(라며, 나는 이번주에도 나를 향한 비난을 비겁하게 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사람 한 명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고, 없으면 생겼을 때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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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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