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인이 들려주는 잭 케루악의 모든 것
국내 초역 『다르마 행려』 셰익스피어, 찰리 파커, 불교를 사랑한 ‘비트 세대’의 작가 잭 케루악
비트(beat)라는 뜻은 원래 기진맥진한, 얻어맞아서 망가진, 이런 뜻인데요. ‘beatific(신의 축복을 한껏 받은)’이라는 뜻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잭 케루악이 두 단어를 합쳐서 ‘비트’라는 단어를 만들어요. 케루악에게 비트란 신성한 거예요. 자기 세대가 헐벗고, 굶주리고, 반항적이지만 신성한 느낌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했어요.
‘길 위에서’ 뜨거운 삶을 산 작가 잭 케루악. 그의 작품 『다르마 행려』를 국내에 초역한 뮤지션 김목인을 만났다. 눈 내리는 지난 12월 3일 빨간책방에서 『다르마 행려』의 번역자로 선 그는 뮤지션답게 노래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개인의 순간>이라는 곡이었다. 이어 <지망생>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전, 그는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고민하다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목인은 “잭 케루악을 생각하며 쓴 곡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곡”이라며 “노래를 『다르마 행려』의 주인공 레이 스미스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가사가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도시에 오면 아직 모든 것들은 가려져 있고 마음은 어찌 그리 두근대던지
작은 방들엔 온통 신기한 것들뿐 한쪽에 깔린 담요에서 대화를 듣네
돈은 없지만 찾아가볼 스케줄은 많았고 어렵기만 한 대화들도 밤새 귀 기울였네
나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모든 것의 뒷면은 아직 가려져 있고
잭 케루악 ‘마니아’를 자처하는 김목인. 그는 잭 케루악을 ‘번역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로 표현했다. 잭 케루악의 대표작 『길 위에서』를 무턱대고 번역하던 일화가 있을 만큼 그에게는 특별한 작가다.
“원서로 읽은 첫 작품이었어요. 당연히 끝까지 못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읽게 되었고, 읽고 나니 한국어로 옮기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2년쯤이었는데요. 집에서 번역을 하게 됐어요. 물론 힘들었죠. 몇 달에 걸쳐 했어요. 다 하고 나니 책으로 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출판사를 알아보다 이미 다른 데서 하기로 한 책이라고, 알아보고 번역을 했어야 하는 거라고(웃음) 얘기를 들었어요. 다른 곳에서 하기로 했는데 아직 안 나오고 있었거든요. 무산되나보다, 혹시 안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딱 날짜 맞춰 서점에 나와 있더라고요. 반갑고도 씁쓸했습니다.”
『다르마 행려』는 『길 위에서』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길 위에서』에 잭 케루악의 ‘세련되고 멋있는’ 이미지가 있다면 『다르마 행려』는 ‘아기자기’했다. 『다르마 행려』를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김목인은 잭 케루악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의 말투, 평소 습관 등을 번역하는 데 참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잭 케루악, 그의 역사
“케루악은 프랑스 혈통이 있는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때까지 프랑스어를 썼어요. 영어를 못하고요. 자연히 말을 잘 못했겠죠. 끊임없이 영어를 잘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미국인에 비해 영어를 좀 더 음악처럼 들을 줄 알았던 사람이에요. 잘 모르는 언어를 들으면 뜻이 아니라 사운드가 들리잖아요. 케루악은 사운드에 민감하게 발달한 작가 중 하나죠.”
1922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한 잭 케루악, 그가 살았던 시기는 세계가 전쟁과 혼란으로 가득했던 때다.
“항간에는 케루악이 2차 대전에 나갔던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전쟁에 나갔던 사람은 아니고요. 2차 대전이 끝날 즈음 배를 타고 가다가 독일 나치가 쏜 어뢰에 잠깐 죽을 뻔하기는 했어요. 실제 전투에 나간 사람은 아니에요. 어릴 때 친구들이 많이 전쟁에 나가 죽은 세대죠.”
잭 케루악은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로웰이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뉴욕으로 간 그는 가장 첨단의 커뮤니티를 만나게 된다. 뉴욕에는 가장 지적인 사람들과 가장 희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순진한 시골 총각’이었던 잭 케루악은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물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길 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동부 사람에게 서부는 너무나 먼 곳이었죠. 케루악이 닐 카사디라는 서부에서 온 친구 때문에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통해 서부에 가보게 되는데요. 그 다음부터 거의 평생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멕시코라는 엄청난 거리를 무임승차 같은 걸 하면서 떠돌며 글을 썼어요. 무명작가 생활을 이렇게 한 거죠.”
닐 카사디는 잭 케루악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외모마저 흡사한 닐 카사디는 부랑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동차를 훔치는 데 선수기도 했던 닐 카사디가 뉴욕에 온 건 소년원 수감 생활 도중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배우기 위해 도착한 뉴욕에서 잭 케루악과 만나게 되었던 것. 잭 케루악을 비롯한 친구들이 보기에 닐 카사디는 서부의 상징이자 그들이 잃어버린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잭 케루악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닐 카사디를 따라 다니며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쓴 것만 보아도 그의 존재감을 알기에 충분하다.
“닐 카사디를 처음 만났을 때 형제를 만난 것 같았다고 해요. 보면 아주 터프하고,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았죠. 철도나 자동차 일을 하며 살았어요.”
작가의 인생에서 또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형의 죽음이다. 어렸을 때 형의 죽음을 경험한 잭 케루악은 평생 형의 그늘에서 힘들어했다. 형의 자리가 그토록 컸다. 잭 케루악은 죽을 때까지 형을 무척 그리워하고, 형의 부재로 방황했다. 그는 형에 대한 작품을 하나 쓰기도 했는데 바로 『Visions of Gerard』다.
“형이 죽은 사람이 케루악뿐은 아닐 텐데 이 사람은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의 형은 동네에서 어린이 성자라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였어요. 항상 천국에 대해 증언하고, 어른을 꾸짖고,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동물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그랬던 거예요. 케루악은 3~4살 때였는데 형을 따라 다니며 세계관을 형성했죠. 형이 9살에 오랫동안 앓던 병으로 죽었어요. 케루악은 이때 형은 인생의 주인공이고, 형은 그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 성자가 드디어 천국에 갔다고 했으니까요.”
잭 케루악, 그의 문학
잭 케루악은 평생 ‘비트 세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답하며 살았다.
“비트(beat)라는 뜻은 원래 기진맥진한, 얻어맞아서 망가진, 이런 뜻인데요. ‘beatific(신의 축복을 한껏 받은)’이라는 뜻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잭 케루악이 두 단어를 합쳐서 ‘비트’라는 단어를 만들어요. 케루악에게 비트란 신성한 거예요. 자기 세대가 헐벗고, 굶주리고, 반항적이지만 신성한 느낌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비트세대의 모습을 정형화시켜요. 난교 파티를 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비트닉 키트라는 것도 나와서 이 키트를 사면 비트족처럼(웃음) 될 수 있다는 식의 상품도 등장하고요. 케루악은 이런 것을 보며 너무 피곤했겠죠.”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앨런 긴즈버그, 루시엔 카,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이들은 무명 시절 랭보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랭보의 주장을 크게 따랐다.
“케루악도 얼마나 재미있느냐면요. 촛불을 켜놓고, 손가락을 베어서 피로 글을 썼대요.(웃음) 훌륭한 작가가 되려고요. 그런 그에게 윌리엄 버로스가 지침을 주기도 했죠. 이런 책도 읽어보라고 추천도 하고요.”
이후 잭 케루악은 토마스 울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는 첫 작품을 울프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으로 내기도 했다. 첫 작품이 실패하고, 잭 케루악은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하게 된다. 독특한 것은 닐 카사디의 존재, 그리고 그의 글이 잭 케루악에게 끼친 영향이다.
“케루악은 닐 카사디가 쓴 글을 보고 미국 문학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감동을 해요. 그 글은 카사디가 한 여자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글이었어요. 그 편지가 너무 신선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쓰였던 거예요. 카사디는 문학으로 쓴 글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저도 읽어봤는데요.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어머니가 들어와서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치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화장실에 있는 샴푸 하나까지도 다 묘사를 하고 있어요. 그 글을 보고 케루악이 토마스 울프 흉내 내던 것을 버리고 이 친구처럼 쓰기 시작해요.”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케루악이 보기에 셰익스피어는 별 것 아닌 이야기도 풍성한 언어로 써내는 놀라운 작가였던 거예요. ‘퀵 헤드’라는 용어를 썼는데요. 단어를 빨리 떠올릴 줄 아는 머리를 뜻해요. 케루악은 스스로를 퀵 헤드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불교를 공부하고 나서는 자기가 전생에 셰익스피어였다고 많이 얘기하고 다녔어요.(웃음) 재미있죠?”
잭 케루악의 혁명적인 글쓰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의도적인 글쓰기를 경계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생각들을 써야 한다고 했다. 바로 ‘spontaneous(즉흥적인)’글쓰기다. 그의 많은 즉흥적인 문체는 이렇게 시작돼 찰리 파커에게 큰 영향을 받음으로써 점점 자리를 잡는다.
“찰리 파커는 케루악이 너무나 숭배한 사람이에요. 심지어 나중에 불교를 배운 후에는 찰리 파커가 부처가 아니겠느냐, 이런 시까지 남길 정도였어요. 그 당시 젊은이들한테 ‘진짜 이 사람 멋있다’는 느낌을 줬던 뮤지션이기도 하고요. 케루악의 많은 문체가 비밥 재즈의 즉흥적인 것들을 문학 작품에 구현하려고 노력한 것들이에요.”
잭 케루악은 『길 위에서』를 한 페이지에 썼다. 종이를 이어 붙여서 끊김없이 써내려갔다. 두루마리 형태가 된 이 작품의 원고는 거의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후 케루악은 모든 작품을 두루마리에 쓴다. 『다르마 행려』 역시 그랬다.
“작가가 굳이 이 방법을 썼던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보다 두루마리가 더 유명해져서 트루먼 카포티라는 작가는 ‘그건 글쓰기가 아니라 타이핑이다’라고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해요. 그런 비판을 해서 케루악이 무척 속상해했다고 해요.(웃음)”
잭 케루악, 불교
“케루악의 꿈은 자기 평생을 다 작품으로 쓰고 그것을 한 권을 묶는 거였어요. 그랬는데 그 전에 죽었죠. 후대 사람들이 인생 순서대로 배열해놓은 목록이 있어요. 책 마다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는 지인들을 분석해놓기도 하고요. 이 작품의 이 사람이 저 작품의 어떤 사람인지 찾을 수 있어요.”
잭 케루악은 말년에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평생 불교에 천착하며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말년은 비극적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잭 케루악에게 불교, 명상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실제 인생과 작품 속 인생은 다른 건데요. 케루악은 자기 인생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바람에 스스로도 혼동하기 시작했어요. 대중은 모두 작품 속 인물이 실제 케루악이라고 생각했고요. 실제로는 케루악은 불교를 통해 평정을 얻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죠. 실패하고 원래 종교였던 카톨릭으로 돌아왔고,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가 친구도 못 만나고 지내죠. 자기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혼자 살다 죽었죠.
케루악 작품에 불교 관련된 것이 많거든요. 『다르마 행려』도 그 중 하나고요. 친구가 ‘너도 이제 경전을 쓸 때가 됐다’(웃음)고 해서 스스로 경전을 하나 쓴 게 있어요. 그걸 보면 이 사람이 지독히 불교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다르마 행려잭 케루악 저/김목인 역 | 시공사 | 원서 : The Dharma Bums
《길 위에서》의 성공 이후 출판사로부터 차기작을 의뢰받은 케루악은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안은 채 그해 겨울 어머니의 집 부엌에 앉아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시절의 이야기를 빠르게 써내려갔고, 그렇게 또 하나의 걸작 《다르마 행려》가 탄생했다. 케루악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했던 문학적?종교적 고민들과, 훗날 전설처럼 남은 그의 문체와 집필 방식, 자신의 세대와 신과 인생에 대해 느낀 경외감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간 이 작품은, 삶의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하는 작가가 남긴 눈부신 시절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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