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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쿨의 잘못된 남발

올드 스쿨 룩은 옳은 이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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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현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힙합이 인기 문화로 자리 잡은 탓에 올드 스쿨이라는 명칭이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편이라 안타깝다. 일련의 경향은 잘못된 정보를 쉽게 퍼뜨린다. 매체든,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든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

와이드 슬랙스가 유행하더니 어느덧 청바지도 통이 넓은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1년 사이에 볼캡(baseball cap, 야구모자)이 인기 아이템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전 힙합 패션의 복귀 현상이 나타났다. 더불어 당시 발목까지 내려오는 것을 덕목으로 했던 기다란 우븐벨트까지 다시 출현해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길거리 패션을 재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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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조선 '볼캡으로 연출하는 올드스쿨룩!' 기사 사진

 

많은 이가 이런 패션을 '올드 스쿨 룩(old school look)'이라고 표현한다. 올드 스쿨이 힙합 음악에서 시기를 규정할 때 사용되는 명칭이라서 이런 힙합(스러운) 의류와 액세서리를 일컫는 데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또한 구식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형용사이기도 해서 올드 스쿨이라는 호칭이 쉽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올드 스쿨 룩은 옳은 이름이 아니다. 힙합에서 올드 스쿨은 랩 음반이 공식적으로 출시되던 1970년대 후반부터 드럼머신의 활용, 록 음악 성분의 추가 등으로 스타일의 전환을 맞이하기 전인 1984년 정도를 가리킨다. 저 시기 래퍼들은 오히려 몸에 딱 붙는 검정색 청바지, 가죽재킷 등을 즐겨 입었다.

 

현재 한국에서 말하는 저런 깔끔하고도 적당히 헐렁한 옷이 힙합 패션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90년대 초반 몹 톱 크루(Mop Top Crew), 미스피츠(Misfits) 같은 뉴욕의 댄서들이 힙합 댄스의 트렌드를 주도했을 때다. 이때 이들은 게스(Guess), 리바이스(Levi's) 같은 청바지의 루즈한 모델을 착용하거나 큰 치수를 입어 여유로운 맵시를 연출했다. 또한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r), 폴로 랠프 로런(Polo Ralph Lauren) 같은 브랜드들이 출시한 스포츠 의류 라인도 힙합 댄서들이 즐겨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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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미국 뉴욕의 힙합 댄서들

 

이 패션이 얼마 후 일본 댄서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이를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댄서,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따라 하면서 국내에 힙합 패션이 정착하게 된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런 패션을 '세미 힙합'이라고 불렀다. 그 반대로 큰 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은 '리얼 힙합'이라고 불렀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없는 작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 일어났던 경향이니 올드 스쿨이라는 단어는 맞다. 하지만 힙합에서는 90년대를 올드 스쿨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 패션을 선도했던 댄서들의 춤은 뉴 스타일 힙합 댄스로 불린다. 만약 매체에서 이 패션에 대한 기사를 쓴다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감안해 올드 스쿨 룩이라는 명칭을 쓰는 일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지만 늘 엉터리인 한국 대중문화의 유감스러운 단면을 패션 경향으로 또 읽는다.

 

몇몇 래퍼도 용어를 잘못 인식하고 있어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새내기 래퍼 트루디는 < 언프리티 랩스타 >의 두 번째 시즌에 출연하면서 "한국에 올드 스쿨을 부활시키고 싶어서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녀의 래핑 스타일은 올드 스쿨이 아니다. 굳이 어떤 파트에 귀속해야 한다면 90년대 초, 중반의 동부 하드코어 힙합풍이라 해야 할 듯하다. 트루디 역시 단순히 그 시절이 지금과 비교해 오래됐기에 그런 음악을 올드 스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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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넷 < 언프리티 랩스타 > 트루디 인터뷰 사진 캡처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길미도 무지함을 드러냈다. 5회에 펼쳐진 트루디와의 배틀에서 그녀는 "올드 스쿨의 부활? 올드 스쿨 알긴 알아?"라며 운을 떼더니 N.W.A,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런 디엠시(Run-D.M.C.) 등을 열거했다. 이들도 올드 스쿨 뮤지션이 아니다. 이처럼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을 이르는 힙합 황금기를 올드 스쿨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뮤지션들이 이들 외에도 많지 않을까 싶다.

 

복고 현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힙합이 인기 문화로 자리 잡은 탓에 올드 스쿨이라는 명칭이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편이라 안타깝다. 일련의 경향은 잘못된 정보를 쉽게 퍼뜨린다. 매체든,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든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


2015/11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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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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