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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쇼 미 더 개판'

방송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연출한 <쇼미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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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발전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에 부합하는 훌륭한 모습을 과연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극을 중요시하는 연출, 경쟁을 비상식적으로 부추기는 포맷, 프로듀서들은 물론 제작진조차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확립하지 못한 룰 등 엉망의 연속인데? 심지어 이 부정적인 부분들을 검수하려는 노력도 행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개판 5분 전은 결국 개판으로 나타났다. < 쇼미더머니 >는 지난 7월 10일 방송에서 참가자들이 사이퍼(cypher, 힙합에서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를 치르는 모습을 예고했다. 귀띔한 영상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자기의 랩을 보여 주기 위해 난잡하게 마이크 쟁탈전을 벌였다. 예고한 대로 7월 17일 4회 방송에서 사이퍼가 펼쳐졌고, 전파를 탄 그 화면처럼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의 우악스러운 생존경쟁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좋게 포장할 수 없는 진정한 개판이었다.

 

문제의 예고 영상 때문에 이미 인터넷에서는 '힙합 문화에 대한 모욕', '부끄러운 쇼' 등의 비판 의견이 수없이 일었다. 방송 덕분에 힙합은 존중과 배려 없는 자기과시 놀음으로 비쳐졌으며, 방송 덕분에 경연에 참가한 래퍼들은 성공을 위해 아귀다툼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보이게 됐다. 서바이벌을 위한 너저분한 몸부림이란 이런 것임을 말하는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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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안 좋은 그림을 완성한 주역은 < 쇼미더머니 >에 참가한 래퍼들이다. 자의로 컴피티션에 참가했으며, 프로그램이 설정한 룰에 동의한 이들이다. 모두 이름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또는 더 괜찮은 활동을 위해 우승을 노린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규칙 안에서 사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 쇼미더머니 >는 이러한 상황과 권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수성을 이용해 방송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연출했다. 어차피 경쟁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재미있게 놀려나 보자고 사이퍼 시퀀스를 기획한 것이다. 래퍼들은 자극적인 화면으로 관심을 끌려는 프로그램의 소비재로 충실히 이용됐다.

 

애초부터 사이퍼는 참가자들의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미션이었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의 버스(verse)처럼 하나의 래핑은 대체로 열여섯 마디가 기본이 된다. 보통 BPM이 90에서 100 사이의 비트는 열여섯 마디가 진행되는 데 40초 정도 걸리고 120가량 될 때 30초 초반대의 시간이 소요된다. (120BPM은 무척 빠른 편이다) 사이퍼에 참가한 래퍼는 스물여덟 명, 이들이 저마다 30초의 비트를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순수하게 필요한 시간은 14분이다. 그것도 1초의 틈도 없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제작진은 제한시간 10분을 줬으니 참가자들의 마이크 소유욕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퍼를 시작하기 전에라도 여덟 마디 이하로 랩을 하라고 고지를 했다면 저런 꼴불견은 어느 정도 방지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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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은 상식적으로 불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랩을 행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생겼고 프로듀서들은 추가 시간 5분을 줬다. 사이퍼가 마무리되자 프로듀서 션은 추가 시간 5분에 랩을 한 사람들에게는 페널티를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15분을 줬다고 해도 모든 래퍼가 안정적으로 랩을 선보이기는 어렵다. 때문에 션의 말은 이 게임에 참여한 이상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경쟁을 부추기고 성공만 한다면 모든 과정이 정당화되는 한국 사회의 비참하고 상스러운 단면을 < 쇼미더머니 >에서 또 한 번 경험한다.

 

세밀하지 못한 조건, 무한 경쟁을 종용하는 틀과 더불어 노이즈 마케팅으로 일관하는 태도도 문제다. 예고편이 그렇게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는데도 < 쇼미더머니 >는 녹화된 사이퍼 장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보냈다. 이 모습에서 자극을 우선 가치로 두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시청률 제일주의의 천박한 본성이 이번 화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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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가 시작되기 전 제작진은 "논란을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예고편에서 보인 사이퍼에서의 래퍼들의 추한 경쟁, 이에 대한 대중의 열띤 비판을 인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과는 마지못해 하는 말로만 느껴진다. 진정한 사과의 기본은 잘못한 점을 명확히 언급하는 것이다. 무엇에 의해 야기된 논란인지 확실히 말하지 않는 것은 어영부영 대충 넘어가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자막에 이어 프로그램은 "Show & Prove 한국 힙합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 쇼미더머니 >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러나 < 쇼미더머니 >가 한국 힙합의 발전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에 부합하는 훌륭한 모습을 과연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극을 중요시하는 연출, 경쟁을 비상식적으로 부추기는 포맷, 프로듀서들은 물론 제작진조차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확립하지 못한 룰 등 엉망의 연속인데? 심지어 이 부정적인 부분들을 검수하려는 노력도 행하지 않았다. '쇼 미 더 개판'은 예정된 일이었다.

 

2015/07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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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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