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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죽기 전 동생에게 선물한 그림

'꽃피는 아몬드 나무'에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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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평온한 하늘빛 배경 속에서 꿈틀거리면서도 튼튼하게 자라나는 아몬드 나무를 그리며 어쩌면 고흐는 자신에게는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 푸른빛 미래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몸은 아프지만 힘든 마음을 다스리며 조카를 위해 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명화를 보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기분에는 이런 그림이 떠오르고 이런 날씨엔 누구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그림으로 위안받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림으로 위안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에 수많은 명화들이 있지만, 나에게 유독 착 달라붙어 와 닿았던 명화는 무엇이었을까? 계절에 상관없이 자주 마음을 스치는 명화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아몬드나무.jpg
꽃피는 아몬드 나무 Almond Blossom
빈센트 반 고흐 | 1890 | 캔버스에 유채 | 73.5x92.4cm |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 하면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방〉 정도만 아는 신입생이었던 나는 이 작품을 보고 한동안 가슴이 뭉클해서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전엔 아몬드 나무가 있는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그림을 통해 ‘아몬드 나무에도 꽃이 피는구나, 아몬드 나무에 꽃이 피면 이렇게 예쁘구나, 꽃 그림이 푸른색을 만나면 이렇게나 애잔하구나’ 생각했다.


이 그림은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동생 테오 부부를 위해 그린 작품이다.


테오는 고흐의 유일한 지원군이자 그가 화가 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늘 응원해준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테오의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었기에 〈별이 빛나는밤〉과 같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이는 역동적이고 휘몰아치는 듯한 붓 터치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차분하고 정적인 터치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봄의 도착과 조카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 속에서 새로운 생명에게 활짝 핀 꽃나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테오 반 고흐의 초상.jpg
태오 반 고흐의 초상 Portrait of Theo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 1887 | 마분지에 유화| 19 x 14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그리고 눈이 파란 아기에게 테오는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름답고 평온한 하늘빛 배경 속에서 꿈틀거리면서도 튼튼하게 자라나는 아몬드 나무를 그리며 어쩌면 고흐는 자신에게는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 푸른빛 미래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몸은 아프지만 힘든 마음을 다스리며 조카를 위해 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고민하고 못생긴 마음과 다투며 살아간다. 때로는 친구와 비교하고, 때로는 잘 모르는 대단한 사람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고지서가 날아드는 매월 말이 되면 나는 꼭 뾰족해진다. 한 달간 누리고 산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모두 다 세상이 나에게 준 빚인 양 공과금 용지며 각종 청구서를 들고서 한숨을 쉬며 괜한 짜증을 낸다.


이렇게 물질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도 잠시 명화에 마음을 내려놓아 본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상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뜻이 아니라, 잠시 흐름에 맡겨본다는 의미다. 오늘 하루가 너무 바빴던 것 같다면 종일 수고한 나를 인정해주고 토닥거려주며 격앙된 에너지를 차분히 내려놓고 고흐가 그린 아몬드 나무 같은 평온한 명화를 바라보자. 그러면 마음도 금세 평온하고 풍요로워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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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소영(빅쏘)

수많은 구독자에게 명화와 글을 배달하는 아트메신저. 지은 책으로 《출근길 명화 한 점》《엄마로 태어나는 시간》《그림은 위로다》가 있고, 메트로 신문에 미술 칼럼을 쓰고 있다. 자유롭게 출근하며 아낀 에너지를 모아 네이버 포스트에 ‘빅쏘’라는 필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미술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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