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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으로 돌아온 김지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저희 딸이 나중에 ‘엄마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살고 싶어요. 저도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희 딸이 저를 보면서 ‘저런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초 국내 초연됐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1월 13일부터 샤롯데씨어터에서 재연에 들어갑니다. 마거릿 미첼이 1936년에 출간한 원작 소설은 6개월 만에 백만 부가 팔렸고, 1939년 개봉한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수상한 대작이죠. 책과 영화는 미국에서 제작됐지만 뮤지컬은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003년 9월 초연됐는데요. 국내 초연 당시 영화를 보듯 화려한 무대 세트와 의상, 호화 캐스팅까지 볼거리 가득한 무대였지만,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같은 해에 동일 작품이 재연되기도 쉽지 않은 일. 지적됐던 문제점들을 보완해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확실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데요. 관객 입장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캐스팅. 스칼렛 오하라 역에 김소현, 바다, 김지우, 레드 버틀러 역에 남경주, 신성우, 김법래, 윤형렬, 그리고 애슐리 윌크스 역에 에녹, 정상윤, 손준호 씨가 이름을 올렸군요. 특히 김지우 씨는 출산 후 첫 무대인데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2년 만에 무대에 서는 김지우 씨를 연습실이 있는 약수역 인근 카페에서 먼저 만나봤습니다.
“아기가 아직 돌이 안 됐거든요. 저도 이렇게 일찍 복귀할 생각은 없었는데, 스칼렛 오하라잖아요! 욕심이 나더라고요(웃음). 복귀를 이렇게 좋은 역할로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사람 일이 재밌는 게 제가 예전에 책 낭독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때 1인 9역을 하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었어요. 이번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연습량이 많을 텐데, 아기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졌나요?
“저희 아기가 좀 늦게 자는 편인데, 밤 10시쯤 연습 끝나고 집에 가면 안 떨어져요. 머리카락을 한 번 감아서 잡아요(웃음).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막 우는데, 미안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죠.”
여배우라면 탐낼 역할이지만, 초연 당시 평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출산 직후라 영상으로 접했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장면마다 보완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요. 사실 후반 전개가 너무 빠른데, 딸 보니와 애슐리의 아내 멜라니의 죽음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긴박하게 진행되거든요. 그 때문에 스칼렛이 레트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데, 저희가 이해한 걸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이번 공연 때는 아역 배우가 보니로 직접 등장하고, 레트가 보니와 스칼렛을 생각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자장가도 불러요. 초연을 봤던 분들은 이번에 다른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거예요.”
노래 비중이 굉장히 높은데 평이한 멜로디가 아니잖아요. 가사 전달력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맞아요, 저희도 노래 연습을 하면서 ‘응?’ 하는 부분이 있어요. 코드 진행이 이렇게 갈 것 같은데 다르게 가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음악적인 부분은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겠죠. 그래도 초연 때는 MR이라서 언더스코어 안에 다 맞춰야 했는데, 이번에는 라이브 연주로 대사에 맞춰주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가는 거죠.”
의상은 굉장히 화려하고 예뻐서 여자들이라면 모두 탐낼 것 같아요.
“저희 공연 의상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뮤지컬 하는 후배가 대기실에 놀러 가면 입어볼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스칼렛은 상복마저도 정말 예뻐요(웃음). 조문수 선생님은 <베르테르>, <닥터 지바고> 때도 의상을 맡아 주셨는데, 아름다운 의상으로 유명하세요.”
그나저나 캐스팅이 정말 화려하네요. 또 다른 스칼렛들은 어떤가요?
“그렇죠. 스칼렛에 바다 언니가 캐스팅된 건 알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이 (김)소현 언니라는 거예요. ‘와, 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번에 욕 엄청 먹는 거 아냐(웃음)?’ 너무 걱정됐어요. 소현 언니는 같이 공연하기는 처음인데,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몰랐어요. 보고 있으면 저도 같이 웃게 돼요. 우리가 생각하는 틀의 스칼렛 오하라가 있잖아요. 언니는 그 틀 안에서 또 다른 스칼렛을 만들어요. 1막의 스칼렛은 18살인데, 언니가 매번 ‘나 18살 어떻게 해, 내 나이가 몇인데!’ 말하지만, 저보다 더 어리고 훨씬 귀여워요. 바다 언니는 초연 때 워낙 잘했잖아요. 18살은 정말 통통 튀게, 후반의 스칼렛은 무게감 있게 하니까 잘 어울리더라고요. 다들 정말 잘하는 분이라, 저는 언니들과 오빠들의 등에 업혀 가야 돼요.”
김지우 씨가 스칼렛 이미지와는 가장 거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착한 스칼렛이랄까.
“그런데 오늘 캐릭터 컷 나왔는데 셋 중에 제일 못되게 나왔어요(웃음). 주위에서 2막의 스칼렛은 괜찮을 것 같은데, 1막의 18살은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도 큰 숙제예요. 첫 대사를 내뱉기 이렇게 어려운 공연은 처음이에요. 그 대사에 스칼렛의 캐릭터가 다 보이니까요.”
레트 버틀러도 연령대부터 캐릭터까지 굉장히 다양하네요. 애슐리까지 하면 상대배우가 계속 바뀌어서 정신 없겠어요.
“연습하면서 정말 재밌어요. 네 명의 레트가 다 다르고, 어쩜 그렇게 다들 레트스러운지. (남)경주 선배님은 완전히 소설과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아요. 클라크 게이블한테 한국어 연습시켜 놓은 것처럼. 경주 선배님이나 (김)법래 선배님은 레트 특유의 능글맞으면서도 뒤에서 스칼렛을 귀엽게 봐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요. 신성우 선배님은 무척 강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부드러운 면이 있더라고요. 연습 때도 스키니 진에 오토바이 타고 오시는데, 남자다움 뒤에 묻어나는 부드러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윤형렬 씨는 저랑 동갑이라서 왠지 어린 느낌이 날 줄 알았는데 상남자스러워요. ‘레트의 저런 면은 굉장히 설렌다!’고 느끼실 거예요(웃음).”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접하면 스칼렛이라는 여자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죠. 도대체 그녀가 바라보는 애슐리와 레트는 어떤 남자일까도 궁금하고.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홧김에 결혼하는 것도 그렇고, 딸이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도 그렇고. 그런데 연출님이 ‘스칼렛을 김지우화’ 하려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라고. 스칼렛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고, 신여성이라는 말을 듣는 거라고 하셨어요. 연습하면서 조금씩 이해되고 있어요. 그리고 스칼렛은 레트를 사랑하고 있지만 모르는 것 같아요. 애슐리를 사랑한다는 생각에, 또 자기가 원하면 모든 남자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애슐리는 심지어 다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까요.”
공백기가 있었던 만큼 연습이 쉽지는 않을 텐데, 요즘 대세라는 셰프 남편(레이먼 킴)을 두셨잖아요. 댁에서도 요리를 잘 해주시나요?
“저희 남편은 집에서도 많이 해줘요. 오늘도 아침은 물론이고 도시락까지 싸 주더라고요. 제가 요즘 요리하는 건 아기 이유식 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가장 고마운 건 제 일을 존중해주고 좋아해 준다는 거고요.”
몇 년 사이 누군가의 아내, 엄마 등 수식어가 많이 생겼는데, 다시 무대에 선 만큼 김지우 씨의 이름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죠? 당찬 스칼렛처럼 꿈꾸는 내일이 있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후회 없이 살자!’가 목표였어요. 그래서 남들이 가지 말라는 길도 다 경험해야 직성이 풀려서인지 지금까지 후회는 없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목표가 생겼어요. 저희 딸이 나중에 ‘엄마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살고 싶어요. 저도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희 딸이 저를 보면서 ‘저런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4년 전쯤 밝고 통통 튀는 역할로 김지우 씨를 만났던 기억이 있는데, 인터뷰는 하는 동안 문득 결혼과 출산이, 그리고 시간이 그녀를 이렇게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부지 숙녀 스칼렛 오하라가 전쟁을 겪고 세월을 지나오며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한 것처럼요. 초호화 캐스팅에 이른바 ‘한국화’로 재무장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번에는 소설과 영화에 이은 저력을 제대로 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무엇보다 어떤 페어가 가장 돋보이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로 떠오를지도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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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