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아침을 구원하리라
하루한상 – 네 번째 상 : 빵으로 차린 아침상
빵순이와 빵돌이, 흔히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빵순이’ 정도는 아니지만 바쁘고 귀찮은 아침에 식사로써의 빵은 진실로 너무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 번째 상은 빵으로 차린 아침상.
빵 아침식사의 효용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아침을 먹기 힘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훗. 나는 아니다. 밥이 너무도 잘 넘어간다. 이런 나를 보며 매번 엄마는 “너는 어쩜 그러니?”라며 신기해하셨고 한때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도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되려 무언가를 씹으며 잠을 깨는 나에게 ‘일어나자마자 먹기’는 당연한 것이며 어찌보면 ‘효용’일 수도 있겠다.
결혼 전 부모님과 살 적엔 차려주시는 대로 아침을 먹었지만 결혼 후에는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고 전날 저녁엔 무얼 먹었는지 지금 몸이 무얼 원하는지에 따라 ‘밥을 먹을 것인가, 빵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한다. 밥, 국,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리는 일은 번잡하므로 정말 밥이 간절하지 않은 이상 대체로 아침은 빵으로 차려진다.
사시사철 빵 아침상
지난여름은 결혼하고 보낸 첫 계절이었다. 냉장고에 항상 있던 야채를 꺼내서 샐러드를 만들고 빵도 조금 팬에 구워 나눠 담으면 아침 한 접시가 완성되곤 했다. 거기에 요거트와 남편님이 미리 내려두신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참으로 훌륭한 아침이 된다. 가을이 되고 냉장고의 한기가 싫어지면서 샐러드는 제철 과일로 대신하게 되었다. 아침은 대체로 93.1 라디오를 들으며 느긋이 즐기는데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오늘은 어떤 일정이 있는지 등등을 나눈다. 겨울이 되면 아침 차리기는 더욱 귀찮아질 테니 빵이 있다는 건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인 것이다. 결국 사계절 내내 아침은 빵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직접 만든 감자베이컨포켓과 남편님 표 드립 커피로 아침상
내 머릿속의 빵지도
우리는 달지 않은 빵을 선호해서 깜빠뉴나 바게트, 식빵을 주로 사 먹는 편이다. 우리밀이나 유기농 밀, 발효종을 사용한다는 빵집도 좋아한다.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밍밍한 빵 가게 지도’가 생기고 있다. 외출을 할 때면 이 근처 어디서 빵을 살지 머릿속 지도를 작동시켜본다. 안국역/발효종깜빠뉴/ㅇ빵집, 이대역/식빵/ㅅ베이커리, 광흥창역/치아바타/ㅍ빵집 등등 지역, 종류, 가게 이름이 키워드 별로 지도를 메꾸고 있다. 우연히 지나가다 괜찮아 보이는 빵집에 들러 먹어보는 걸 즐겨 하는데 맛있는 빵집을 찾게 되면 왠지 모르게 ‘보물 찾기’를 한 기분이 든다.
베이킹 클래스의 명과 암
7월 초. 지인이 집 근처에서 베이킹 클래스를 했었다는 말이 문득 떠올라 찾아보니 다음 주가 개강이었다! 남편도 참여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11주간의 베이킹 클래스, 빵 굽기 강좌는 우리에게 명과 암을 안겨주었다.
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11주 동안 일부러 빵을 사지 않아도 되었단 거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한 사람당 4인 가족이 한 끼 즐길 수 있는 빵을 가져가게 되는데 우리는 2인 가족인데 두 사람의 몫을 가져가게 되어 항상 빵이 넉넉했다. 일주일 먹을 분량을 따로 떼어내도 많아서 여기저기 나눠주기 일쑤였다.(덕분에 인심을 많이 얻었다) 암이라고 하면 3시간 동안 서서 빵만들다 보면 뻐근하기 일쑤고 케잌이나 쿠키 등 달달한 것들을 만들게 되는 날이면 버터와 설탕에 취해 끝나고 나서 무조건 냉면 같은 시원 칼칼한 것을 먹으러 가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빵 굽기를 배우면서 ‘소형 오븐을 장만 후 홈베이킹’이라는 꿈은 잠깐 미뤄두게 되었다. 선생님께 “집에서 빵 자주 구우세요?”라고 누군가가 물어봤는데 “주방이랑 다르게 집에서는 밀가루도 많이 날리고 치우기가 번거로워서 몇 년 전에 오븐을 사놓고 3번 정도 쓴 것 같다”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서이다. 언젠가 마음을 굳게 먹게 되는 날이 오면 오븐을 사게 되겠지!?
11주 동안 만든 빵들 중 일부. 마블 케이크, 먹물 치아바타, 초코 컵케이크, 잉글리시 머핀과 베이글, 포카치아 피자, 브로트와 햄 치즈롤 그리고 치아바타 (첫째 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는’ 다루마리
9월 말 베이킹 클래스가 끝난 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10월 1일에 한국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바로 신청했다. 마침 늦은 추석 상경일이었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홍대로 향했다. 조금 늦어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었고 피곤해서 인지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프로젝터로 띄워진 문장 하나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손과 발을 움직여서 하는 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발효종 빵을 굽기 시작했다는 와타나베 이타루 씨와 부인 마리코씨. ‘좋은 인생이란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는 두 분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도 ‘하루 한 상’을 잘 차려보겠다.
강연회에서 찰칵!
(부록) 남편의 상
안녕하세요. 제주소년 아니 커피소년 아니 그냥 커피남편입니다. 빵을 먹는 날, 빵을 굽는 날 모두 저의 임무는 커피를 내리는 것입니다. 주로 동네의 유명 카페에서 직접 볶은 원두를 사다가 핸드밀로 갈아서 내려 마시는 이른 바 ‘핸드드립’ 커피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저의 커피사를 돌아보면 별다방과 콩다방처럼 별다를 게 없습니다.
고3 야자시간에 잠 깨 보겠다고 마시던 자판기 커피, 대학교 시험기간 385번 여학생에게 건네주려다 도로 내 목으로 넘어가던 캔커피와 복학생들과 당당하게 들어가던 다방 커피, 출근길에 뉴요커 코스프레 하겠다고 종종걸음으로 사 먹는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회사 근처의 김OO 아저씨가 운영하는 김OO커피에서 더치커피란 걸 알게 되었고 이렇게 직접 원두를 사서 내려 마시는 게 맛도 좋고 가정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깔고 팔이 부서져라, 여편님아 일어나라 원두를 갈아대는 것이 일상의 시작입니다.
이런 빠듯한 개인의 커피사를 돌아보고 나니 짙어지는 가을 아침에 한가로이 커피 한잔 내려놓고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를 뒤적거리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저/정문주 역 | 더숲
기존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활도 지켜나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출간 후 일본 아마존 사회?정치, 경제 분야에서 단숨에 1위를 차지하였고,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격려,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심 있는 자본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불안정하고 모순 가득한 현실을 애써 피하며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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